하루 한 줄, 하루 한 대사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명대사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되는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가 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일관성도 중요하고 인내도 중요합니다.
아이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듣지 않지만 듣는 척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제 아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랑도 큰 역할을 하지요."
돌아가신 엄마와 추억이 담긴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다. 추억이라고 해봐야 6살 남짓됐을 때 엄마 손을 잡고 을지로 명보극장을 갔던 것이 전부다. 장면 장면만 기억할 뿐 영화 내용이 뭔지는 기억도 못했다. 수년 전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다시 봤을 때야 '아~ 이런 영화였구나' 했다.
그럼에도 엄마와 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프렌치토스트 때문이다. 바로 더스트 호프만과 저스틴 헨리가 엉망으로 요리해 먹었던 그 프렌치토스트다. 40년이 지나도 그 장면만큼은 잊히지 않고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6남매 중 막내로 자라온 데다 이제 갓 20대 중반이던 엄마는 먹성 좋은 아들을 위해 할 줄 아는 요리가 별로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영화 속에서 본 프렌치토스트는 간단하게 해 줄 수 있는 영양간식으로 보였을 거다(달걀에다 우유까지 듬뿍 들어가니). 영화관을 나온 후 한동안 집에서 거의 매일 프렌치토스트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자주 먹었는데도 한 번도 물리거나 맛이 없다고 느낀 적이 없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두 번째는 아마 어른이 되어서 다시 본 영화의 내용 때문일 거다. 엄마는 영화, 음악,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감수성 풍부한 20대 여성이 홀로 아들을 키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다. 1970년대. 주변 눈초리도 그다지 곱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어딜 가든 나를 끌고 다녔다. 음반사를 가도 서점을 가도 심지어 나이트클럽에 놀러 갈 때도 대여섯 살짜리 아들을 끼고 다녔다. 클럽에서 사이다병에 빨대를 꽂아 놓고 엄마 옆에 앉아있는 어릴 적 사진이 아직 남았다. 어딜 가도 '누나'나 '이모'라고 부르게 하지 않고 당당하게 '엄마'라고 하도록 했다. 주변 사람에게 "우리 아들이에요"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멋진 여성이었다.
물론 극장도 늘 항상 같이 다녔다. 생전에 우스갯소리로 '네 인생 첫 영화는 오멘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오멘이 1977년에 한국에서 개봉했으니 이제 갓 두 살 남짓 된 아이를 안고 공포영화를 보러 가신 거다. 공포영화 엄청 좋아하셨지. 내 성향이 엄마를 많이 닮은 모양이다.
그렇게 6살 남짓된 아들을 데리고 간 극장에서 본 영화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다. 영화 내용이 내용인 만큼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을 듯싶다. 엄마는 이 영화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이를 먹고 영화를 다시 봐도 당시 엄마가 느꼈을 감정은 상상도 못 하겠더라.
영화 속에서는 이혼한 부부가 아이 양육권을 위해 법정까지 가는 모습을 그린다. 엄마, 아빠 모두 결핍되어 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이도 결핍된 가정에서 커야 한다. 그걸 원하는 부모는 없을 거다. 누군가 이 영화의 주제는 '부부는 헤어져도 부모는 헤어지지 않는다'라더라.
나이가 차서 영화를 다시 본 후 '엄마는 정말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최선을 다한다. 다만, 아이가 그걸 제대로 느끼는지는 다른 이야기인 듯하다. 결핍 속에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 건 정말 어렵다. 정말 많은 희생과 포기가 필요하다. 그걸 해낸 세계에 모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사족이지만, 엄마랑 같이 봤던 영화 중에서 일부 장면이 아니라 내용을 기억하는 영화는 9살 때 본 영화 '챔프'가 처음인 것 같다. 그건 어느 극장에서 봤더라.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본 영화가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 먹은 후에도 함께 극장 좀 자주 다닐걸. 나도 아이들이랑 더 많이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싶다. 아이들도 나와 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기억할까? 거기서 아빠를 느끼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