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학점 외에 무언가에 몰입해서 성취해 본 경험이 있는가?
만약 내가 나중에 교수가 된다면,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학부생들을 선발하기 전에 꼭
학부 시절, 학점 외에 무언가에 몰입해서 성취해 본 경험이 있는가?
라고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근에 어떤 CEO분을 만났는데, 해당 CEO님도 이런 '몰입의 경험'에 대해서 집요하게 지원자에게 물어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준비가 되었는지 판별하는 데에 대한 중요한 물음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대학원 생활은,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능동적으로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몰입해서 최종적으로는 해결책을 제안하는, '창조'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행위 자체가 꾸준함과 성실함이 요구된다.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일이 많고, 수년간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내심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 시절에 무언가에 매진했던 경험은 대학원 생활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몰입에 대한 일례로 나와 나의 친구들의 사례를 소개해주고 싶다. 사실 나는 학부 시절 1학년 1학기 때 학점이 2.2대였다. 그 이유는 통기타 동아리 활동에 깊게 빠졌기 때문인데, 심지어 2학년 2학기에는 한 학기 동안 기타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휴학을 하기도 했다(혹시 학점이 낮아 불안한 학부생이라면, 당신에게 큰 위안이 되길...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살았어도 결국 MIT에 올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주변에는 음악 동아리에 학부를 바친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그리고 KAIST의 경우는 학부생 때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새벽까지 연습하고 기숙사로 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다른 학교에 비해 굉장히 수월했다).
그렇게 한 3년이 지나고, 4학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충청권 가요제인 태울가요제라는 가요제에 참가하여, 매해 70여 팀 가운데에서 친구들과 함께 4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태울가요제에서는 창작곡에 대한 가산점이 있어서, 매해 내가 작사·작곡을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매년 참가할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끊임없이 연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4년 동안 연속으로 대상을 받을 수 있었고, 이 경험은 나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 경험을 돌아보면, 단지 가요제에서 수상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값진 경험은,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행위더라도 '몰입을 통한 성취'를 학부생 때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갈고 닦인 태도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생활할 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여기서 '성취'가 몰입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몰입 자체는 더 잘하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데,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자기 피드백(self-feedback)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해 끊임없이 보완해야 하는데, 사실 이 과정이 연구와 다를 바 없다.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태울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친구들 중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악기를 더 잘 연주하기 위해서는(혹은 노래를 더 잘 부르기 위해서) 1)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수 십 시간을 연습하고, 2) 스스로의 연주를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들어보기도 하고, 3) 주변의 다른 음악 동아리 친구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수반하게 되는데, 이 행위들이 각각 1) 스스로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 몰입, 2)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 3)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되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대응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더 나은 '성취'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 과정을 학부생 때 질리도록 하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다들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원은 학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학문적 환경이다. 대학원에서의 연구는 단기적인 시험 준비나 과제와는 다르게, 매우 길고 지치는 과정일 수 있다. 연구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꾸준히 전진하는 과정이기에, 이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매진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 시절에 무엇이든 한 가지에 매진해서, 남들보다 더 노력해 무언가를 달성해 본 경험은 대학원 생활을 적응하는 데에 좀 더 용이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만약 학부 시절에 능동적으로 어떤 활동이나 프로젝트에 매진해서 해당 프로젝트를 잘 완수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는 대학원 생활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비단 대학원 진학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에 크나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