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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함 변호사 Feb 16. 2024

의료과오의 스펙트럼

사고와 목숨에 관한 이야기 -3

의료소송을 준비하는 가족으로부터 들어온 자문이 있었다.


성 분이 수술 후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이었는데, 수술을 마친 후 혈전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슬관절에 문제가 있어 인공 관절로 치환술을 하는 경우, 내, 외측 관절 등에 문제가 있는 부분만 치환하는 걸 부분치환술, 관절 전체를 치환하는 걸 전치환술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분은 젊은 나이였지만, 무릎에 이상이 있어 전치환술을 받으셨다. 무릎수술을 받게 되면 혈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활을 잘 해야 한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은 수술 중 또는 수술 직후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입원 중이던 3~4일 뒤에 쓰러지셨다. 수술 병원에서 1시간 가량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한계가 있었고, 인근의 큰 병원으로 전원시켰으나 결국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눈을 감게 되셨다. 부검으로 알게 된 사실은 혈전이 발생하여 이것이 문제가 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으레 사망 사건들이 유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제 막 2~3살 아기를 둔 엄마가 허망하게 떠나갔다보니 남편은 물론 친정, 시댁에서도 난리가 났다. 의료인 입장에서는 적절한 모든 조치를 취하더라도 천재지변마냥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가족을 잃은 분들 입장에선, 심지어 입원 중에 사망한 상황이라면 치료 과정 중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유가족들은 즉각 소송을 준비하지 않고 검토부터 요청했다. 자신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으니 당사자 합의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일 듯 하고, 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니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먼저 원만히 해결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건 검토가 시작되었다.




우선 의료인에게는 설명의무가 있으므로 이 부분이 미비하였는지를 검토하였다. 여기서부터 문제점이 보였다. 의료행위에서의 설명의무라는 것은 우리가 보험 가입할 때처럼 어려운 용어들이 쭉 나열된 종이의 마지막에 서명만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수술의 방법, 부작용, 후유증에 대해서 환자가 이를 듣고 이해했다는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애매한 지점이 아니라 수술동의서를 "부동문자"로 인쇄하여 서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의료인으로서는 환자에게 충실한 설명을 해주었는지 증명할 방도가 없다. "부동문자"의 내용 중에는 해당 수술에 관한 내용이 아닌 부분도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를 삭선 처리하는 등 인쇄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다고 주장하기도 어려워보였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수술 후 처치에 관한 부분이었다. 병원 측은 혈전 발생의 위험을 설명하였고, 재활에 대한 꾸준한 지시를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증인들의 증언은 좀 달랐다. 담당 의사 분이 환자에게 재활운동을 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까지는 맞는데, 그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았으며, 딱히 별도의 관리를 하지도 아니하였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설명의무위반 뿐만 아니라 환자 사망에 대한 인과관계가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어느 정도 있었다. 검토 의견을 발송하고 몇 달 뒤,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일정 부분 인정받아 중재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폭풍 같이 왔던 사건은, 생각보다 고요하게 마무리되었다.




다른 손해배상처럼, 의료과오소송 역시 수술이 어느 정도 사망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다만, 의료과오는 "수술(치료)" 자체에 문제가 없어야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설명-검사-수술-간호(수술 후 처치)라는 일련의 흐름에 문제 소지가 없어야 "과오"가 없다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즉, 손해배상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의료 분야는 수학적으로 정확히 예측이 되는 분야는 아니고, 환자의 재산과 신체, 나아가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는 예민하고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인과관계의 존부를 엄격하게 판단하거나, 의료인의 과실을 상당 부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과오 판단은 마치 거미줄과 같았다. 무척 길어서 어딜 잡든 손가락으로 잡아올릴 수 있지만, 또 너무 가늘어서 끓어지기 쉬웠다.


의료소송은 손해배상 사건 중에서 다루기가 가장 어려운 사건인 듯 하다.



*의뢰인 등 사건 관계자 보호를 위해 내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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