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의 기지로 보이스피싱 전달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라는 취지의 기사를 가끔 볼 수 있다. 그 기사 속에서 묘사하는 ‘보이스피싱 전달책’은 ‘거대한 사기 집단의 말단에서 범죄현장에 투입된 악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람들, 본인이 보이스피싱 전달책 업무를 한다고 ‘의심’이라도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악인’이라는 점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변호사 업무를 하다 보면, ‘보이스피싱 전달책 역할을 하다가 사기 또는 사기 방조의 죄목으로 법정에 선 피고인들의 삶’이 뉴스에서 묘사하는 ‘악인’과는 다른 경우가 생각보다 흔히 있다. 취업난에 구직활동에 힘쓰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 뮤지션의 꿈을 안고 밤에는 음악을, 낮에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 은퇴와 함께 이민 생활을 마치고 그리운 조국에 돌아와 소일거리를 찾던 어르신.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이들. 이들이 그러했다. 이들은 왜 범행에 가담하게 된 걸까? 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회사의 외근직에 취업했다고 믿고, 회사가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게 범죄자들의 범행을 돕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주변 지인에게 취직 사실을 알리며 기뻐하기까지 한다. 돌이켜보면, 너무도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보이스피싱범들로부터 ‘정상적인 회사’에 취업한 것으로 속게 된 이유는 뭘까? 보이스피싱범들의 기술이 날로 발전하여 갈수록 그럴싸하게 전달책 역할을 할 사람들과 피해자들을 속이지만, 그럼에도 침착하게 이상한 점을 찾으려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의뢰인과 함께 지난 시간을 복기하며 “이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 들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몰랐어요.”
이러한 일이 비단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게 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기범죄 피해자, 계약서를 잘못 적어버린 민사소송 당사자, 잘못된 근로계약으로 적절히 보호받지 못한 근로자. 모두 사정은 똑같다. 모두 몰랐다.
모든 종목의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다. 모든 언어는 문법이 있다. 모든 전자기기는 사용설명서가 있다. 우리의 삶에도 규칙이 있다. 이를 법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도 사용설명서가 있다. 이를 법전 정도로 대응할 수 있겠다. 법에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권한).’, ‘할 수 없는 것(제한).’, ‘이 사회의 절차와 구조(시스템).’가 적혀있다. 나는 이를 통칭하여 ‘나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국가로부터, 또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스포츠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한 경기 퇴장을 당한다. 전자기기의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아서 용법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전자기기가 고장 나거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단지 그뿐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규칙을 알지 못하면 수백, 수천, 수억의 경제적 손실을 보거나, 구치소에 구속되고, 범죄경력(전과)이 남는다. 무지에 대한 대가가 앞선 예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법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그 심각성을 깨닫하지 못한다. AI 시대가 도래하니 코딩을 교육하자는 목소리는 있어도, 심지어 인문학이 중요하니 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있어도, 당장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법을 교육하자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법을 모른다는 건 잠재적 가해자이자, 잠재적 피해자라는 뜻이다. 가해자가 되든, 피해자가 되든 결과적으로 삶이 상당히 고달파질 예정인 것이다.
현대사회의 법은 지나치리만큼 복잡하다. 이 복잡한 법을, 생업이 있는 우리 모두가 구체적으로 알면서 살아가기엔 무리가 있다. 야구 규칙을 총망라하면 그 양이 엄청나게 방대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야구 중계를 이해하는데 그 모든 규칙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도루가 뭔지, 아웃의 기준, 파울의 기준은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규칙인 법도, 모든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모두 기본적인 구조와 기초개념들은 알아야만 한다. 그리 어렵지 않은 기초적인 법 지식만으로 우리 인생의 난이도를 확실하게 낮출 수 있다. 소중한 일상을 위해서, 가벼운 교양서적으로 첫발을 떼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