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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진 Mar 13. 2024

오펜하이머를 위한 오스카

평범하게 태어나 비범함을 꿈꾸고, 나름의 위대한 항로를 그리고 조각배 위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삶이라고 착각하면서. 하지만 오피는, 오펜하이머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비범함 속에서 평범함을 건지려 했다. 그는 ‘전부’를 알지만 자기 자신은 적확하게 모르는 듯했고, 오만과 편견의 간극 어딘가에서 자꾸만 울부짖었다. 스스로는 그마저 환호로 착각할 만큼, 무척이나 시끄럽게.


<오펜하이머>는 전기 영화로 포장한 오락 영화였다. 놀란 감독 특유의 시공간 배열 방식에 맞춰, 여전히 화려한 사운드에 잘 담가둔 유의미한 모든 장면들이 그만큼 짜릿하다. 관객들의 지적 수준을 ‘굳이’ 판단하지 않고, 어쭙잖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 그의 태도 역시 당찼다. 흑백에서 컬러, 어둠에서 폭발. 논리와 정의, 죽음과 구원. 그리고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오펜하이머 자신과 자신. 양자(兩者)의 대립을 양자(量子)의 형태로, 세 시간 내내.


세 시간 영화는 힘들다고, 적당히 ‘요즘’스러운 핑계를 대며 이제야 본 것을 반성한다. 영화가 끝나고 오피 너머의 머피를, 위태로운 그의 눈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나의 프로메테우스, 킬리언 머피. 그의 벌거벗은 모든 몸짓으로 여운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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