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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Mar 08. 2024

38. 정확한 주소 찾기

당신과 나의 고통




잘못 배송된 물건



누군가를 <통해> 전달하기




할 말이 있거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전해야 내 마음이 닿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하기보다 누군가를 <통해> 말한다. 누군가를 통해 내 마음을 전달하게 되면 왜곡될 가능성이 생긴다. 전달자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가 개입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불안정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통해> 전달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통해서 자기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자기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수용되어 본 경험이 없을 때, 둘째, 거절에 대한 불안, 셋째, 마음을 전하려는 대상에 대한 낮은 신뢰나 낮은 존중.










딸 가진 부모의 말년이 더 행복하다는 말.


누군가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범이 전화를 안 하면 너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이 안부 전화를 해 주었으면 하는 대상은 아들이지 며느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며느리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아들에 대한 낮은 신뢰(아들은 그렇게 살가운 성격이 아니니까, 아들은 내 말을 안 들을 거니까 등)와 거절에 대한 불안(아들은 분명 바쁘다고 할 테니까) 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모든 감정들의 밑바닥에는 결국 자기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수용받아본 경험이 적거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작용한다. 많은 아들이 엄마에게 다정하지 않는 이유는 시어머니 자신이 아들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들은 부모에게 울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더 씩씩하고 독립적 이도록 교육받는다. 그래서 딸 가진 부모의 말년이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아들에게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으므로 그렇게 교육하지 않는다.








잘못된 주소



잘못된 주소


안부전화를 받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 안에는 돌봄에 대한 욕구와 연결에 대한 욕구가 숨어 있다. 그 마음의 발신자는 자기 자신이며 수신자는 남편이나 아들이어야 하지만 며느리에게로 수신이 된다. 시청에 보낼 편지를 우체국에 보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주소가 잘못되었다.


시청과 우체국이 하는 업무는 엄연히 다르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남편에게 요구해야 할 것을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부모에게 해야 할 요구를 남편에게 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 빠진 경우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 된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책임을 지고, 희생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희생을 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을 흘긴다는 말의 기원은 바로 거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소라는 것이 없다면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택배라는 것은 받아볼 수도 없을 것이고 멀리 사는 누군가에게 소식은 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전자 우편에 주소가 없다면 요즘같이 많은 업무 이메일이 오가는 시대가 무척 번거로워질 것이다. 마음을 정확한 주소에 전달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원하는 사람과 연결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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