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쉬한 박사가 어줍잖게 생각하는 짧은 인생에 대한 교훈
필자는 올해 여름 유기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파릇파릇한 과학자(?)이다.
아니다, 과학자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부족함이 많으니 과학도 정도로 스스로를 칭하는 게 더 맞는거 같다.
유기화학이라는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만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건만, 여전히 나 스스로는 내가 어쩌다 유기화학이라는 분야의 박사를 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많은 의문이 들곤 한다. 특히, 흔히들 유기화학자에게 기대하는 다양한 가치와 능력으로 내가 과연 가득차 있는가를 질문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과거의 나 스스로를 되돌아본다면, 나는 내 전공인 유기화학보다도, 내가 잘하지도 못하고, 그닥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물리화학에 개인적으로 더 큰 호감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안해봐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지만...) 학부생 때에 내가 과연 뭘 가장 재미있어 하는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물리화학은 항상 그 중심에 있는 학문이었고, 나는 그래서 다양한 물리화학 강의를 찾아 들었던 것 같다. 유기화학이라는 과목은 외려 나에게 있어, 그렇게 재미있어 했던 것도 아니었고,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고, 특출나게 잘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물리화학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기억을 더듬어 학부생 때 들었던 과목 중에 기억에 남는 과목 역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러한 과목이 있다면 그것은 학부 1학년 때 수강하였던 선형대수 과목이었다. 비록 학점을 잘 받았던 못했던 과목이었지만, 선형대수가 알려준 많은 수학적 개념과 생각하는 방법이 공부하는 것 외적으로도 지금 나라는 사람이 생각하고 나만의 세상을 구상해나가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물리화학과 같이 다른 분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과 지식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분야인 유기화학을 하는데 도움을 줄 때가 많더라. (나는 내가 1학년 때 배웠던 코딩이 대학원에서 쓰일 것이라고는, 복잡한 물리화학 수식이 주전공인 유기화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분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장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박사를 하게 된 과정도, 박사가 되기까지 겪었던 과정도, 박사가 되고 난 지금도 어느 것 하나 딱 고정해 놓고 달려온 일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는 게 내 판단이다. 오히려, 어떤 것 하나를 딱 고정해놓지 않고 매 순간 일이 닥쳐왔을 때 해내기 위해 아둥바둥 발버둥 쳤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잘하든 잘하지 못했든 흥미를 가지고 배웠던 모든 것 중 어떤 것 하나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고작 10년밖에 공부하지 않은 햇병아리같은 과학도이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기억들을 잘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