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일상의 다짐
판소리가 좋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by
투명한 자유
Nov 24. 2024
아래로
드라마 "정년이"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잊고 있던 판소리에 대한 사랑과 추억도 새록새록!
전통적인 것이 어렵고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하다는
편견을 깨 주고 대중들에게 우리의 소리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정년이"는 목포 출신의 '타고난 소리 천재'인
윤정년을
둘러싼
국극 배우로서의
찬란한 성장을 다룬 드라마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시대상을
보는 재미도 있고
주인공을 둘러싼 경쟁과 연대,
좌절을 극복하는
이야기도
또 주를 이루는 국극을
감상하는 재미 또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 역시 소리 배우는 것만큼
목포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연습을 했다 하니
귀에 척척 감겼다.
요즘 우리나라 K-문화의 위상이 전 세계에서
최고조에 이르러 자존감이 높아진 때라
우리의
전통 소리도 더 각광받고 우리 스스로 더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난 산에 오를 때 조선시대엔 이 산을 짚신을 신고
누군가가 올랐겠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그 시대에도 있었을 산길을 오르며 전생에 대한
생각과 함께 그 시절에 태어났으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소리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러면 양반은 아녔으려나?
그렇게 엉뚱한 상상 끝엔 늘 우리의 소리가 있었다.
우리의 소리에는 대중가요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한과 걸쭉함이 있어
고난도의 가락이 너무나
배우고 싶었다.
전라남도
진도가 첫 직장이었기에
임회면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서
공연을 보고 우리의 소리와
춤이 주는 기품에 푹 빠져 버렸다.
판소리를 배워 보고 싶어
차도 없던 그 시절 버스를
타고 먼 길을 판소리를 배우러 갔다.
기대와 설렘으로 맨 처음 배운 가락은 흥부가의
화초장 대목이었는데 악보라고는 가사와 박자가
적힌 게 다였지만 선생님을 따라 한 소절이라도
제대로
흉내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엊그제
같다.
음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중모리나 중중모리 등의
장단에 의지해 소리를
구전으로만 이어 간 것일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의 소리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매주 국악원에서 수업을 받으며 2학기가 지나고
연말이 되어 발표회를 한다고 너무 설렜던 시간이
기억난다.
발표회 준비를 위해 선생님에게 일대일 레슨을
받은 시간은 정말 뜻깊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단체로 불렀던 대목은 춘향가 쑥대머리
부분이었는데
춘향이의
입장이 되어 서러움과
그리움의 감정을 실어 강하게 꺾어주고 깊게
떠는음을
몇 번이고 함께 부르며 연습했다.
독창으로 하기로 했던 사철가는 원래 오래 다니신
분이 하시기로 했었는데 공연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지셔서 우연찮게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함께하는 쑥대머리 대목은 틀려도 걱정이 안 되고
묻어갈 수 있어 자신이 있었는데
사철가는 남은
시간은 부족하고 가사 외우기만도 어려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가사를 음미하며 정말
사철가에 빠져 살던 그 시절 공연 전까지 시간이
천천히 흐르길 고대했다.
그렇게 발표 전까지 개인 연습을 따로 시켜주셨던
선생님이 고수를 해 주시기로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독창을 준비했다.
발표회 당일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머리를 올리고
한껏 단장한 우리 반 사람들을 보니 너무 멋졌다.
그날의 동영상도 사진도 20대 모든 추억의
저장소인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저장 중인데
현재
열어볼 수가 없어 너무나 아쉽다.
인화한 사진 한 장만 겨우 찾을 수 있어 안타깝지만
오랜만에 고마운 인연들을 떠올리며 올려본다.
뒷줄 오른쪽 맨 끝이 나
공연 당일 쑥대머리 부문이 먼저 시작했고 공연을
성공리에 마칠 때까지 내 머릿속은 사철가로
가득했다.
봄, 여름, 가을 대목까지 무사히 부르다 가을
마지막에서 겨울 부문과 가사가 꼬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정적이 흐른 1~2
초가 어찌가 길게
느껴지던지...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서 무사히 다음 가사가
생각이 나서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창을 한 게 신기할 정도로
큰 무대라서 감회가 새롭다.
진도에서 3년 2개월을 살고 목포로 발령이 나서
판소리를 조금은 잊고 살다가
다시 접할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근무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판소리 선생님께 오후 시간을 이용해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소리를 배우는
시간은
어려웠지만 너무 신났다.
아들이 어렸던 시절이라 따로 길게 시간을 낼 수
없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가르쳐
주시겠다던 선생님이
몇 년 후
돌아가셔서
너무 슬펐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소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집
근처에 남도소리울림터가 개관을 하고 매주
토요일 4시
공연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평생 50퍼센트 입장료 할인을
해 주는 풍류 회원에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
아이와
함께
볼 만한 공연도 자주 열려서 사랑하는
곳이다.
진정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건지 우리의 장단과
소리를 들으면 흥이 절로 난다. 한이 서린 우리의
소리를 들으면 눈물도 나고. 아들들이 조금 더 크고
내 시간이 생기면 다시 판소리를 배우며 우리의
소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
keyword
판소리
추억
22
댓글
8
댓글
8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투명한 자유
직업
강사
시간은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닌 쌓아가는 것!!
구독자
19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글을 쓴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