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아이를 삼켜버렸다.
여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마지막으로 찾은 바닷가.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높았다. 아이들이 놀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올여름 바닷가에서 파도에 몸을 맡겨 노는 재미를 알아버린 첫째는 강경했다. 기어이 물에 들어가야겠단다. 나는 겁을 먹은 둘째와 모래놀이를 하기로 했고, 아빠와 첫째 채니만 들어갔다.
파도가 너무 높았다. 남편이 아이 옆에 있는 데도 불안한 건 처음이었다. 결국 채니가 나오다가 파도에 휩쓸리며 넘어졌다. 지켜보던 나는 너무 놀랐다. 모래가 가득한 파도의 공격을 받아 온 얼굴이 모래투성이가 되었다. 놀란 채니가 황급히 모래사장 쪽으로 다다다다 뛰어가 대피했다.
나는 울면서 달려오는 채니를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달려오는 채니는 웃고 있었다.
우리 쫄보.. 내 딸 맞나..?
괜찮은 거냐고 묻는 내게 채니는 얼굴에 묻은 모래를 쓱 닦아내며 "엄마! 나 또 들어갈래!" 하고 바다로 뛰어갔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채니는 자타공인 쫄보다. 미끄럼틀을 쌩 하고 내려오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8살인데. 어린이집에서 에어바운스 시소 그 하찮은 놀이기구를 태워주던 날 유일하게 안 타던 아이가 채니였다.(3년 후 동생도 똑같았다.)
그런 채니가 거센 파도에 모래를 뒤집어쓰고 넘어졌는데 또 들어간단다. 걱정 어린 눈으로 채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190이 넘는 남편을 뛰어넘는 파도가 왔다 갔다 했다. 결국, 큰 파도가 채니를 제대로 삼켰다. 채니는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나왔다.
이번엔 정말 울 줄 알았다. 오열하는 채니를 안아줄 따뜻한 품을 딱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오지 않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뭐랄까.. 채니가 내 품을 떠나가는 느낌이었다. 당장 엄마 품에 달려와 울고 불고 난리 칠 줄 알았던 우리 아가가 저렇게 스릴을 즐기고 있다니.
더 혼란스러운 건, 그때의 내 감정이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다기보다는 뭔가 공허하고 씁쓸했다. 그랬다. 나는 내심 채니가 당장 내 품에 달려와 울길 바랐던 것이었다. 그렇게, 너는 아직 연약하니 강한 엄마가 너를 안아줄게. 하고 싶었나 보다. 연약한 아이를 따뜻하게 보듬어줌으로써 따뜻한 어른의 모성을 가진 나를 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혼자 어푸어푸 한 번 하고 이겨내고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갔다. 쉽지 않은 파도타기였지만 계속 도전했고, 이내 둥실둥실 파도에 몸을 맡기며 잘 놀았다.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채니를 아직 넌 아가라고 앉혀버리는 건 엄마인 내가 아닌가 싶다. 진정한 쫄보는 채니가 아니라 나였다. 엄마로서 강인함을 좀 더 장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
엄마는, 따뜻하고 세심하기도 해야 하지만 아이가 더 큰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 이 작은 세상에서의 시련을 일부러라도 겪게 할 수 있는 대담함도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미리 조심시켜 넘어질 일을 만들지 않기보다는, 넘어질 걸 알더라도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딸. 엄마는 아직 너를 세상에 내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는 묵묵히 성장하고 있구나. 세상을 향해 그 작은 발로 한 걸음 한걸음을 걸어가고 있구나.
엄마만 준비하면 될 것 같아. 강인함과 대담함을.
아몰랑 엄마 아직 준비 안 됐어.
너무 빨리 크지 마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