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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 in the usa Jul 15. 2024

미국의 반딧불이


  여름이 되면 해가 유난스럽게 길어진다. 미국은 썸머 타임이라는 것이 있어서 봄이 되면 원래의 시간보다 한 시간 당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름의 일몰 시간은 밤 9시 가까이 되어야 한다. 처음으로 미국에서 여름을 보낼 때 나는 지겨울 정도로 해가 길다고 생각했었다. 길어진 하루만큼 이곳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하고 온갖 강과 산을 누비며 한껏 여름을 즐긴다. 수박이며 복숭아며 체리까지 맛있는 과일도 넘쳐나고 이런저런 파티도 많아 바베큐 그릴이 쉴 틈이 없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반가운 여름 손님은 반딧불이이다.

내가 사는 곳은 산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모습이라 아침이면 새소리 때문에 눈이 떠질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둑어둑한 저녁이 오기 전 푸른 들판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곧 반짝, 하고 빛나는 초록 불빛을 발견하게 된다. 딱 한 번 반짝이고 사라지는 그 영롱한 불빛은 급하게 다가서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순식간에 주변에서 반짝, 또 반짝이며 순식간에 황홀해지게 한다.


 한국에서 살 적엔 반딧불이를 한 번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선 나무와 들판보다 도로와 건물이 더 많은 도시 살았으니 당연했고, 시골의 조부모님 댁에 가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야생 동물이라곤 고속도로에서 마주친 고라니가 전부였기 때문에 반딧불이라는 것은 아주 깨끗하고 이상적인 자연환경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에선 아주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있는 곳으로 일부러 찾아가야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엔 이젠 볼 수 없는 반딧불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쓴 수필이 실려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날 만큼 반딧불이는 나에게 상상의 존재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반딧불이를 우연히 마주친 건, 여름의 어느 늦은 오후 바로 우리 집 앞이었다. 생전 처음 미국 수박을 덜컥 사고선 왠지 모르게 다르게 생긴 모양에 의심스러워하며 현관문으로 걸어가는데 순간, 눈앞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이었다. 완연한 초록색의 반짝임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섰는데 까만 벌레가 얌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곤충이었다. 곤충이라면 기겁을 하는 나는 애써 외면하며 멀리 돌아가려는데 순간 다시 반짝였다. 아까 보았던 그 예쁜 초록색 불빛이었다. 벌레가 초록색 불빛을 내기도 했던가. 나는 멍해졌다가 이내 깨달았다.

이건 반딧불이였던 것이다.


"우리 집 근처에 반딧불이가 사는 거 알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흥분하며 말하자 남편은 'lightning bug' 를 말하냐며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했다. 모기랑 착각하는 거 아니야? 나는 조금 열받아서 '초록색으로 반짝거리는' bug 라고 다시 설명했다.

그러자 남편은 더 심드렁한 표정이 되어선 이렇게 말했다.

"They probably live everywhere. (반딧불이는 어디에나 있어.)"

미국 어디든 흔히 볼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나에게 그는 다음 날 나무가 우거져 있는 공원으로 데려가 별처럼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내가 사는 곳은 미국에서도 시골이라 공기가 맑고 나무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가 그렇게까지 청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때부터 반딧불이는 정말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차를 몰고 마트에 가고 있는데 도로 옆 풀숲에서 초록색 불빛이 반짝였다.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 옆에 사는 반딧불이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의 반딧불이와는 조금 다른 종의 곤충이지 싶다. 그렇지만 미국의 반딧불이들은 6월 중순에서 7월까지만 볼 수 있고 완전히 캄캄해진 밤이나 뜨거운 낮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들의 반짝이는 초록색이 신기하고 반갑다.


 올해 여름도 그렇게 그럭저럭 지나고 있다. 한국의 여름과 비교하면 습도가 낮아서 이곳 더위는 마치 달궈지는 느낌이다. 지열이 서서히 끓어올라서 2시나 3시쯤 되는 한낮 햇빛 아래에 서 있으면 후덥지근하다기보다는 얼굴이 벌게질 만큼 뜨겁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선선해진다.

그러면 반딧불이는 아지랑이처럼 낮게 날며 반짝, 반짝, 반짝 별처럼 빛난다. 가만히 들판을 보고 있으면 초록색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아름답고 귀엽다. 손을 내밀고 있으면 꼭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가만히 손바닥 위에 앉아 쉬었다가 수선을 떨지도 않고 점잖게 날아간다.  

아마 조금 더 있으면 반딧불이들은 들판 위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반딧불이들이 사라지고 8월의 늦은 더위가 지나면,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집 뒤에 있는 울창한 나무 아래서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놀듯이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을 보자, 아직은 여름이구나 하고 나는 왠지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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