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Quest (1986)
지난해 4월 경부터, 고전 게임에 매력을 느끼고 이런저런 게임들을 해보고 있다. 과거에는 '요즘처럼 재밌는 게임이 많은 시대에 왜 고전게임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하다 보니 고전만의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하드웨어의 사양이 지금처럼 좋은 시절에 나온 게임들이 아니다 보니, 요즘 게임들과 비교하면 텍스트, 그래픽, 음악 등 시청각적인 요소들이 덜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은 플레이하다 보면 막상 금방 익숙해져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드웨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불필요하고 복잡한 요소들을 깔끔하게 배제하며 만든 덕분에 더 몰입감 있는 플레이 경험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받은, 쉽게 말하면 재미있었던 게임들을 앞으로 하나하나 소개해보고자 한다.
처음으로 소개할 게임은 1986년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다.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플레이한 게임이기도 하고, 처음 작성하는 글이니 소개하게 될 게임도 최초의 의미를 가진 게임이면 좋겠다 생각하며 이 게임을 선택했다. 드래곤 퀘스트는 흔히 최초의 JRPG라고 불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40년 가까이 된 매우 오래된 게임이면서도 동시에 인기 시리즈의 시작이다 보니 여러 버전으로 리메이크가 많이 되어있다. 리메이크 버전에 따라 그래픽 혹은 전투 연출에서의 차이 정도만 존재하고 게임의 큰 틀은 다르지 않으니 각자 본인의 취향에 맞는 버전을 플레이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SNES 버전 혹은 최신 모바일 버전을 추천한다. (모바일 버전의 경우 공식 한글화를 지원함) 필자는 출시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경험으로 물리버튼을 조작하며 게임하고 싶어서 SNES 버전을 선택했다.
드래곤 퀘스트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사가 나오는 만화나 게임의 내용을 생각하면 된다. 악의 우두머리로 인해 세계가 위험에 빠졌을 때, 주인공이 용사로서의 능력을 각성하고 이를 물리쳐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이다. 너무 평면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드래곤 퀘스트가 출시한 해가 1986년이고 슈퍼마리오브라더스가 1985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에는 게임에 이 이상의 서사를 담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먼 옛날 세계를 구한 용사 로토의 후손인 주인공이 왕에게 임무를 받는다. 로토의 후손임을 입증하여 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용왕을 물리쳐달라는 임무이다. 임무를 받고 성 밖으로 나오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밝고 명랑한 색감이고 사운드도 대체로 경쾌해서 플레이하다 보면 다소 희망찬(?)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당시 게임들이 다 그렇듯 어디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로토의 후손임을 증명받으라고 했는데, 대체 뭘 해야 입증할 수 있는 건지조차 모르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다 보니 보이는 대로, 손 닿는 대로 아무 데나 들어가 보고, 아무 물건이나 상호작용 해보고, 아무 NPC에게나 말을 걸어보면서 하는 식으로 정보를 스스로 구축해나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 요소는 이 부분이다.
예를 들어 NPC들에게 닥치는 대로 말을 걸다 보면 "마을 남쪽 동굴로 아름다운 여성이 끌려가는 걸 봤다"라는 반쯤 직접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아 공주가 남쪽 동굴에 있구나'라고 어련히 추측하면서 동굴이 나올 때까지 남쪽으로 쭉 진행해 보는 식으로 게임은 주로 진행된다.
물론 그 여성이 공주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남쪽은 정남 쪽이었는데, 실제 게임에서 동굴이 있는 위치는 남서쪽이어서 한참 동안이나 길을 헤맬 때도 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강한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마냥 나아가기는 힘들 때도 있다. 이런 때는 잠시 멈추어 '성장이 부족한 것인지' '재정비가 필요한 것인지' '잘못 추측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온 것은 아닌지' 등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하나 검증해 보며 나아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능동적인 모험"의 과정으로 느껴졌다.
최근 게임들을 보면 볼륨이 크고 콘텐츠가 풍부한 흔히 말하는 AAA급 게임들의 경우, 퀘스트 및 오브젝트에 대한 위치를 모두 지도상에 노출해 주는 경우가 많다. 레벨 디자인도 엄격하게 되어있어서 캐릭터가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는 아예 특정 지역에는 가지 못하도록 시스템 상으로 막아두는 경우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덕분에 게임 진행을 물 흐르듯 할 수는 있지만, 진행하다 보면 콘텐츠가 숙제처럼 느껴지고 숙제들을 연속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의 우연한 발견 등이 주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은 그런 게임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최근에 성공했던 AAA급 게임 중에서도 능동적인 모험을 지향하는 게임들 역시 존재한다. 다만 이런 게임들은 플레이의 템포가 길게 잡혀 있고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확연하게 많다 보니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그것대로 또 다른 부담감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다행히도 드래곤 퀘스트는 그런 경우들에 비하면 템포가 훨씬 빠르고 제공하는 정보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부담감이 확실하게 덜하다.
드래곤 퀘스트의 재미있는 점은 또 하나 있었는데, 나름대로 자유로운(?) 플레이를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의 플레이 방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엔딩을 지원하고 현재 캐릭터의 상황에 따라서 NPC와의 상호작용 대사가 바뀌는 등의 스펙은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 파격적이었을 것 같다.
용왕을 물리쳐달라는 임무와 동시에, 납치당한 공주를 구해달라는 임무를 받게 되는데 공주를 굳이 구하지 않고도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단순한 버그는 아닌 것이, 이런 경우에 대한 별도의 스크립트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 모두 의도된 사항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드래곤 퀘스트는 아무리 고전이라고는 해도 고전 중에서도 고전인, 정말 너무 오래된 게임이다 보니 요즘 시대의 유저에게 어떠한 기대감을 품고 플레이해 보라고 권하기에는 부적합한 게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특유의 명랑함과 경쾌함을 느끼면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모험을 한 번쯤 즐겨보고 싶다면 5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 게임이니 하루쯤 투자해서 드래곤 퀘스트를 한 번쯤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