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안 Jan 28. 2024

빛나는 시리즈로의 첫 발돋움

Final Fantasy III (1990)

이전글: 고전에서 느껴보는 모험의 참맛 (brunch.co.kr)


 드래곤 퀘스트 얘기를 했으니 다음 차례로는 파이널 판타지만큼 적절한 게 없을 거라 생각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와 함께 JRPG를 대표하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1987년 발매한 파이널 판타지 1부터 시작해서 2,3,4,5... 을 거치며 아직까지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장수 시리즈이다. 심지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의 최신작인 파이널 판타지 16은 발매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시리즈의 시작(좌)과 현재(우)

 이 시리즈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시리즈라고 칭해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각각의 넘버링 타이틀이 연관 없는 별개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게임을 해보기 전에는 '아니 대체 뭐 하는 게임이길래 시리즈가 16까지 이어지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데, 실상은 세계관을 포함한 각종 설정, 스토리, 등장인물이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 전혀 다른 서사 16개가 놓여있는 것뿐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공유하는 건, 타조처럼 생긴 노란 새 "초코보" 뿐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매번 다 다르게 생겼다.  


 그러다 보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소개해야겠다고 결심한 후에 '시리즈를 통째로 묶어서 소개할 것인지, 하나하나를 따로 소개할지'로 제법 고민했다. 하나로 묶어서 소개하기엔 한 작품, 한 작품이 가지는 각각의 매력과 개성이 다 다르다 보니 아쉬움이 생길 것 같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소개하기에는 한 동안 너무 파이널 판타지에 대한 내용만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결국에는 하나씩 소개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고, 따라서 당분간은 파이널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처음으로 이야기할 게임은 파이널 판타지 3이다. 순서 상으로 말하면 1과 2를 먼저 말하는 것이 맞겠지만  1, 2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건너뛰었다. 1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면 스토리에서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다는 점, 2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라면 스토리텔링은 괜찮았으나 캐릭터의 육성 방식이 다소 이상했다는 점 정도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3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파이널 판타지 3 픽셀리마스터 판의 커버 이미지

 파이널 판타지 3의 스토리는 요약하자면 대략 이런 식이다.

세상이 어둠이 범람하여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놓였다.

주인공(빛의 전사)들은 우연히 크리스탈로부터 세계를 구할 빛의 전사로 선택받는다.

그들은 세계 방방곡곡을 모험을 하며 여러 문제들을 해결한다.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크리스탈들로부터 힘을 받는다.

이 힘을 이용하여 적들을 쓰러뜨리고 끝내 어둠의 범람을 막아낸다.


 사실 플롯의 큰 틀만 보면 이전 작들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파이널 판타지 2의 소재인 '악의 제국으로부터의 혁명'에 비교했을 때 '선택받은 용사의 세계 구하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플레이할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연출이라던지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이전 작들에 비해 훨씬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이전 작들에서는 세상이 위기에 빠지건 말건 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NPC가 세상이 위험하다고 말하니까 어련히 위험하겠거니 생각하는 식이었지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파이널 판타지 3을 처음 할 때도 '이렇게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는 데 뭐가 문제라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게임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사실 처음 게임을 시작한 장소는 하늘에 떠 있는 작은 섬일 뿐이라는 말을 듣고 섬 밖으로 나갔는데, 세상이 전부 다 물에 잠겨버린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진짜 망해가는 세계가맞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었다.

왼쪽이 물에 잠긴 상태, 오른쪽이 물이 빠진 상태의 세계 지도다. 왼쪽의 깨알만 한 1번이 처음에 시작하게 되는 부유섬이다.

 이외에도 게임을 진행하면서 많은 등장인물들 역시 이전과는 달랐다. 등장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다니다 보면 잔정이 생기면서, 그들이 희생하거나 도움을 줄 때 이전 작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동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작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코믹한 요소나 로맨스 요소 등으로 분위기를 한 번씩 환기시켜주기도 했다.


 사실 스토리텔링보다 중요한 파이널 판타지 3의 진정한 매력포인트는 잡(직업)과 잡 체인지 시스템이다. 파이널 판타지 1에도 물론 직업이라는 개념이 있긴 했지만 직업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처음에 고른 직업을 끝까지 플레이해야 했다. 그나마 마법 계열 잡은 뒤로 갈수록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추가되기라도 하지 전사, 몽크와 같은 직업은 게임을 켠 시점의 플레이나 게임을 다 깬 시점의 플레이나 차이가 없어서 꽤 재미가 반감됐었다.


 그러나 파이널 판타지 3은 22개의 잡을 비전투 상황이라면 어느 때나 바꿀 수 있다. 물론 크리스탈의 힘을 얻을 때마다 잡이 추가되는 식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22개인 건 아니고 점점 늘어나는 식이지만, 이를 감안해도 충분히 많은 양이다. 각 잡들이 그저 외형만 달라지는 거기서 거기인 것도 아니고 각 잡만의 특수 행동이 존재하여 확실한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파이널판타지 3의 잡들.

 

 재미있는 점은, 이 수많은 잡들을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서 게임의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었다. 잡 시스템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면 게임 내내 끊임없는 죽음과 패배의 쓴 맛만을 보게 된다. 아무리 도전해 봐도 특정 구간을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면 그건 그냥 그 구간과는 맞지 않는 잡을 억지로 고수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보스 몬스터 중 하나는 특정 잡 4인 파티를 구성하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클리어가 가능한데, 그 잡을 아예 제외한 파티로 클리어하고자 하면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렇듯 잡 시스템 덕분에 파이널 판타지 3을 통해서 일반적인 JRPG의 재미와 더불어 마치 퍼즐게임과도 같은 전략적인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필자의 최종 파티는 다음과 같았다.


  앞서 이야기한 것 이외에도 파이널 판타지 3부터 도입되어 시리즈 내에 안착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요소들이 더 있다.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는 굳이 정복하지 않아도 되는 챌린지용 콘텐츠들이 추가되었다던가, 최종 보스인 줄 알았던 대상이 끝이 아니라거나 하는 등이 그 예이다.

  


결론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3은 굉장히 재미있게 플레이한 게임이었다. 꼭 이전작들에 비해서 재밌다거나 한 것이 아닌 자체로도 굉장히 재밌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으며, 이게 충분히 재미있었던 덕분에 다음 작품은 어떨지를 기대하게 해 주었었다. 2021년에 오리지널 버전을 토대로 그래픽이 보다 깔끔하게 리뉴얼된 픽셀리마스터 버전도 있으니 한번 해볼 것을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고전에서 느껴보는 모험의 참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