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terrissage Feb 18. 2024

프랑스어는 쉽습니다

불어를 배우고 싶다면

제목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랑스어는 쉽습니다. 물론, 발음이(혹은 발음만) 쉽습니다.

영어처럼 같은 철자여도 발음이 여러 형태로 변하지 않고, (약간의 불규칙들을 제외하고는) 쓰여있는 대로 읽으면 되는 언어입니다. 제가 불어를 좋아하게 된 것도 착한 발음 덕이 크다고 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저는 (그 당시 굉장한 어른으로 보였던) 타과 고학번 선배들과 함께 팀플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문과 수업이 아닌 복수 전공하는 다른 전공 수업이었던가 아니면 교양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말에도 만나서 함께 발표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한 선배가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프랑스어 배우기 쉽지 않아? 자격증 좀만 하면 다 딴다던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정말 그런가? 왜 난 안 쉬운 거 같지?'

결국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넘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저 질문을 한 선배는 불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소심하고 해야 할 말도 다 못 하던 시절이었어서 그냥 넘어갔던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저도 (불어를 배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정확한 난이도를 몰랐기 때문에 대답을 해줄 수 없었던 거 같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불어 시험 (DELF, DALF)은 총점 100점 중 50점만 넘으면 합격하기 때문에 쉬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낮은 단계의 시험만 봤기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50점이 받기 어려운 점수란 걸 몰랐던 거죠.





사실 불어가 배우기 매우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https://youtu.be/y8xLKN2TelM?feature=shared


'핀란드어를 조금 배워볼까?' 하는 마음에 찾아본 영상인데,

이 영상을 본 후로 (그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핀란드어에 비하면 '불어는 선녀구나. 정말 배우기 쉬운 언어구나' 란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지금도 불어 공부를 하다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핀란드어 배울래? 불어 배울래?' 생각을 하고 바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어는 까다로운 점이 많은 언어인 것도 분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불어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불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들을 간략하게 적어보고자 합니다.





때는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2학기 초였습니다. 저는 계열제로 들어왔기 들어왔기 때문에 아직 정해진 전공이 없었고, 필수 교양 수업들만 듣고 있는 중이었죠. 때마침 지난 학기에 프랑스어 수업을 재밌게 들었다는 친구의 추천에 '나도 한번 들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들어  기초 프랑스어 수업을 듣게 됐습니다.



첫 수업 날, 교수님이 별 다른 설명 없이 듣기 파일을 재생하셨습니다. 그때가 프랑스어를 제대로 들어보는 첫 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무척 기대를 하며 집중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타과 친구와 함께 들었던 수업인데, 듣기 파일이 끝나자마자 서로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간단한 인사와 일상적 대화 몇 마디였는데, 그 당시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외계어 같았습니다.

수업 시작 10분 만에 과연 이 언어를 배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두 번째 난관은 다음 수업까지 가지도 않고 곧이어 찾아왔습니다.

프랑스어는 단어여성, 남성으로 나누고 그에 맞춰서 관사, 형용사 등 바꿔야 할 것이 참 많더군요.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사도 인칭에 따라서 다 변한다는 겁니다!


기본 중의 기본 동사인 être (있다, 이다)가

1인칭 단수형일 때 suis

2인칭 단수형일 때 es

3인칭 단수형일 때 est

1인칭 복수형일 때 sommes

2인칭 복수형일 때 êtes

3인칭 복수형일 때 sont

으로 변한다는데, 제 머릿속엔 '도대체 왜?'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세상에 이렇게 비효율적인 언어가 다 있구나!'

첫날부터 제게 불어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였습니다.

(물론 être동사가 불규칙형이라 어렵게 변하는 거긴 합니다. 대부분의 동사들은 3가지 규칙으로 변화 형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슬프지만 다른 불규칙형도 꽤 존재합니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être의 변화형을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이 끝나고 진지하게 다른 수업을 들을까 고민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불어를 배워보겠냐는 생각이 들어 결국 드롭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불어의 어려움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어의 숫자는 더한 놈이었습니다.

1부터 69까지는 무난하게 이해가 갑니다. 문제는 70부터입니다.

70이라는 단어를 새로 안 쓰고 60 (+) 10 (soixante-dix)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네?


71도 '60과 11'

72도 '60 (+) 12'

...

80은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4 (x) 20 (quatre-vingts)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81은 '4 (x) 20 (+) 1'

...

90은 '4 (x) 20 (+) 10'

...

99는 '4 (x) 20 (+) 19'



예?


https://youtu.be/CoqOTloh7ds?feature=shared

(위 영상 1분 10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전현무 씨 반응이 저를 포함한 불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어찌어찌 숫자를 외우긴 했는데 시험이나 실생활에서는 숫자들을 절대 천천히 발음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숫자만 나오지 않습니다. 전화번호를 적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배워보니 숫자는 그다지 어려운 부분이 아닙니다.

아직 불어의 시제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아, 까먹을 뻔했습니다. 시제를 살펴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어의 동사에는 대명동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se lever처럼 재귀 대명사를 앞에 갖고 있는 동사를 말하는데 이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제가 바뀔 때 혹은 다른 지시대명사들이 앞에 들어가면서 순서가 굉장히 헷갈리게 됩니다.



과거형복합과거, 반과거, 대과거, 단순과거가 있습니다.

복합과거는 être동사 혹은 avoir 동사에 과거분사를 더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어느 동사로 변하는지는 외워야 합니다. (avoir가 대다수긴 합니다) 대명동사는 être동사를 씁니다. 과거분사도 외워야 합니다. 외우시면 됩니다.


슬프게도, 복합과거는 avoir 동사를 사용하는 경우 직접 목적어가 앞에 오면 성수를 일치시켜 준다는 특이점도 있습니다. 불어도 언어개혁이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언젠가는 변화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한 백 년 뒤에는 없어질지도 모를 규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과거대과거 모두 각각 변하는 규칙이 존재하며 물론 주어의 인칭에 따라서 다르게 변합니다...


단순과거는 변화 형태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대 불어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예전 문학작품에서 사용하는 문법이라 배우실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예전 문학작품을 원서로 보실 게 아니라면요. 그 말은 불문학과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는 계셔야 한다는 거겠죠. (하지만 불문과여도 거의 쓸 일은 없습니다)


미래형근접미래, 단순미래, 전미래가 있습니다.

전미래가 이 중 조금 헷갈릴 순 있으나 과거형에 비하면 할만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법이 이제 끝인 줄 알았으나 더 어려운 애가 남아있더군요.


바로 조건법접속법입니다.


솔직히 조건법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접속법입니다.

저는 접속법을 싫어합니다.

저는 정말 접속법이 싫어요.


더 쓰다간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아서 다음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제 불어 단어, 문법 정도는 어느 정도 배워서 실제 프랑스인과 대화를 해보고자 할 때 큰 문제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바로 'verlan'입니다. 단어의 음절을 뒤집어 말하는 은어의 일종인데 verlan이라는 말 자체도 l'envers(반대)라는 말의 순서를 바꾼 말입니다. 예를 들어 femme를 meuf로 말하거나 café를 féca라고 한다거나 말이죠. (한국 젊은 세대들이 쓰는 줄임말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어를 새로 외우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좌절스러운 것은 프랑스인들의 실생활 발음은 엄청 빠르고 배운 것과 다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Je ne sais pas (난 몰라)(/쥬 느 세 빠/)가 실생활에서는 chais pas (/슈ㅔ 빠/)처럼 짧고 빠르게 발음되는 거죠.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해 줘도 다 못 알아듣는데 발음까지 흘려서 말하면 정말 눈물 납니다.

저는 특히나 전화 통화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던 것 같습니다. 전화를 걸기 전에 항상 대본을 다 적어놓고 몇 번씩 읽어보고 전화를 걸었고, 택배기사 아저씨의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문자로 보내주실 수 있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불어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사라지실까 조금 두렵지만, 불어는 분명 배울만한 언어입니다. 발음 하나로 이 모든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분명 매력적인 언어입니다. (사실 발음에도 연음이 있어서 까다로울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교육자료가 잘 돼있고 음악, 영화와 같이 불어를 재밌게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충분하며, 배우고 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확실히 넓어질 수 있는 좋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