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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Nov 23. 2021

밤산책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

정신없는 월요일 중에도 주말내 옳고 그름, 후회와 개선의 문제들이 머릿속을 파고드는건,

잡생각이 비집고 들어올만한 '덜 바쁜' 하루였다고 나를 다그친다.

별 고민같지 않은 것을 꼬집어 고민이지 않을까 트집을 잡는건,

알량하게도 덜 피곤해서일거라고.

반대로 생각의 책갈피를 꼽아두지 못한채 어떤 맥락인지도 모를 삶의 책을 어영부영 읽어가는게 덜 문제적 인간으로 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민하고 뾰족한 인간으로 살 지언정,

적어도 내가 유의미한 관계로 정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선 맹탕물을 만들기는 싫었다.

좋은게 좋은거지, 참고 넘어가면 별문제 없는거겠지 하며 문제적 발제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서로 싫어할만한 짓거리 정도만 피해주면 아무 문제 없는 사이로 스스로를, 상대방을 속인다.

난 우리의 관계가 촘촘하게 꼬여 매듭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 있길 바란다.

토요일엔 엄마에게 두번의 사과를 했다.

금요일 오후 늦게, 오래 기다린 자동차가 출고 되었고, 다음날 엄마와 같이 차를 받을 수 있었지만 출고 당일 회사로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금전 계산에 착오를 일으킨 바람에 자동차 등록비용을 생각지 않고 카드 청구금액 선결제를 해버렸다.

그래서 엄마에게 다급하게 등록비용을 빌렸고, 물론 갚을 생각이지만 아무튼 빚을 진 꼴이 되었다.

엄마는 필요할때만 자신을 찾고,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상의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했다.

차량인수시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들을 같이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중대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거라는 불신과, 애 취급을 받는것 같아 반항심이 들어,엄마의 감정을 모른채 했다.

야간근무 중인 엄마를 뒤로 하고, 회사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술기운에 아마 내가 오십이 되어도 부모는 자식을 애처럼 바라볼 수 밖에 없겠다는 다정한 감옥이 갑갑하면서도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고 싶었는데 엄마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겼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퇴근을 하고 집에 왔을때도 서먹서먹한 상태였다.

일요일에 함께 가기로 한 박람회가 있었는데 엄마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약속된 일정을 취소할만큼 마음이 상해 있었던 것이다.

한번 더 장문의 문자로 반성하며, 미안함을 전했다.

엄마는 그제서야 그날 차가 나왔고, 잘 받았다는 연락 한번이었으면 이렇게까지 허탈한 기분은 아니었을거라고 말해주었다.

사소한 문제들은 미주알 고주알 떠들며, 엄마의 보듬을 받으면서 정작 엄마가 함께 해주고 싶은 문제들에선 내가 알아서 할거라며 고개를 빳빳히 들었던 것이다.

나도 마음 비울터이니 너도 알아서 잘 살란 식으로 매정한 문자를 몇번 주다가 다음날 아침 퇴근후 마주쳤을땐 장난스레 타박하는 여느날의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매정한 문자는 자신이 엄마니까 속상하고 서운해도 어쩌겠누라며 쓰린속을 참고 넘기는 과정의 보풀 같은 것이었나보다.

내가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보지 않는 이상, 자식에 대한 속상함 앞에선 엄마에게 더 많이, 내 기준에 불합리하게 느껴지더라도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

또다른 문제 발의는 호두와의 관계다.

서로가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만큼 자질구레한 감정들이 본능처럼 튀어나오고 있다.

그건 그럴 수 있는데, 자신의 피곤함, 농담, 대화중에 석연치 않은 부분들을 깊게 나누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다툼이 서로를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겪어봐서, 몸을 사리고 있는걸지 모른다.

하지만 싸움이 무조건 나쁜거, 하기 싫은거라고 단정짓고 언쟁이 될만한 일들을 피해가는건 비겁하다.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볼이 잔뜩 부어 말하지 않는 시간이 호두에게 종종 생겨나고 있다.

그러면 눈치를 보게 되고, 내가 어떤 잘못을 한건지, 어떤 말이 감정을 상하게 했는지 유추하며 답을 구하는 그 과정들이 좀 더럽고 치사하게 느껴진다.

침묵을 선택한다.

그 누구의 감정도 풀리지 않고 풀어질 빌미도 제공되지 않는 어색한 그 시간이 답답하다.

함께 반짝이는 트리의 전구를 보며, 서로를 더 깊게 알아가기를, 서로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기를 바랬던 작년 겨울이 떠오른다.

아직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오지도 않았는데,

해지난 신년의 트리를 보는 기분이다.

치워야 할 것 같지만 예쁘니까 조금만 더 보고 싶다는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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