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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ug 03. 2023

방관자의 역습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 2

사회,국가,단체라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책임과 희생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선=안전장치의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으며, 모두에게 그 선의 기준이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시스템 안에서 같이 뭉개지는 사람이 될 것인가, 뭉개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난돌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크고 작은 제도권 안에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비추면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는 드라마였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개성과 인격은 존중받아야 하고, 폭력과 희롱은 가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가르침을 받고 몸으로 익혀왔다.


그럼에도 어떤 집단에 소속되면, 군중 가면을 쓰고, 무리에서 튀지 않으려, 그 무리의 색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내가 물들어가는 색이 선함인지 악함인지에 대한 판단도 어느새 흐릿해지고 약한 생명을 지켜줄 수 있었던 인격은 약한 생명을 골라 물어 뜯는 인격으로 변해간다.


그렇다면 살육의 무리가 아닌 방관자 무리는 어떤가.

직접적인 위해는 가하지 않았지만 지켜주지 못했다는 결과에선 약한 생명을 사지에 몰고간 것에선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급이 있는 사회에선 완력 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상호 존증, 평등의 관계를 쉽게 잊어버린다.

처음에는 가끔씩 잊게 되었을거다, 잠깐 신경질을 부리고 화풀이를 하고.

그리고 자주, 반복이 된다.

가해자가 살육의 무리로 변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고 치밀하게 한 사람을 파괴시키는 방법을 체득한다.


서서히 확실하게 변해버린 가해자 그룹의 큰 문제는 잘못을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방관자 그룹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든 화살의 방향이 바뀌면 자신에게 향할 것임을 알고 있고, 두려움도 느끼고 있다.

정당하지 않은 무차별 폭행과, 학대를 관망하면서 분노를 느낀다.


방관자 그룹은 가장 많은 머릿수를 가진 층으로 이 그룹이 더이상 방관자로 남아있지 않을때, 잘못된 관행과 악습의 틀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시스템 밖으로 이탈한 병사를 잡으러 다니는 DP 준희의 변화는 그래서 유의미하다.

질문하고,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한 것을 바꾸기 위해 부딪치고 깨진다.

모두가 준희 같을 수 없겠지만, 준희 같은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준희가 지키고자 한 신념 가운데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질서를 위해 시스템에 순응하지만 잘못된 시스템이면 고개를 들고 전체를 다시 봐야 한다.

사람은 쓰다가 버리는 존재가 아니다.

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잘못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책임은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첫번째 시작일 것이다.


디피 시즌 1부터 쌓아올린 스토리는 묻고 또 묻고 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모인 군내에서 참사가 벌어졌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때린 사람, 맞은 사람 단순한 원색론에서 나아가 집단이 만들어진 시스템과 구조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 많은 수난과 역경을 겪고 부대로 복귀하는 준희와, 시즌1때 가혹행위 가해자인 황장수가 사회인의 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조우는 이 드라마의 서늘한 중점을 압축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희와 호열, 그리고 박범구중사의 치열한 싸움안에는 황장수 같은 가해자들의 시작이 있었지만 그들이 사회로 이탈하고 난 뒤에는 또 다른 황장수들이 언제든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개같은 놈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은 생태론은 군대 뿐 아니라 사회 곳곳의 집단에서도 일어날 문제고 말이다.


그런 일이 발생될 때 우리는 눈을 감는 존재들인가, 외면하지 않고 부당함을 알릴 수 있는 존재들인가.


늘 생각과 이성은 공정과 정의를 향하지만 내가 받을 부당함과 피해를 안으면서 까지 신념을 지킬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보태어 이런 애매모호한 정의감 뒤에 숨어 나는 가해자들과는 다르다는 위선과 건방을 조심해야 겠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누군가를 괴롭히기로 작정하고 들어온 사람들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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