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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Aug 14. 2024

4. 종양이 예쁠 수도 있단다

쿵쾅거린다. 심장이.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고, 교수님 인상을 살폈다. 표현이 맞을 진 모르겠지만 똘똘하고 솔직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50대 초중반 남자다.


다짜고짜 말씀하신다.


"전에 병원서 수술할 때 며칠 입원했어요?"


"수술 당일 퇴원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아내의 대답은 잘린 채, 교수님의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수술하고 000 했어요?"


(우리 둘 다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지으니) 다시 묻는다.


"수술하고 피주머니 찼어요? "


"아뇨."


"아, 이게 문제라니까. 조직검사 하고 수술해야 되는데, 수술부터 하니까 문제야. 그리고 마무리도 피통 차고 천천히 빼야 되는데... 뭐라 뭐라..."


교수님은 솔직한 얼굴의 소유자답게 말에 거침이 없다. 약간은 울그락불그락하는 표정으로 타 병원 수술에 대한 불만? 불평?을 짧은 시간 동안 쏟아낸다.


"아니,  이거 이렇게 되면 다 오염이야. 다 오염됐다고 봐야 돼. 수술 범위가 커져. 아주 커져. 세미나 때 일선 병원에 그렇게 계도를 하는데도... 어쩌고 저쩌고.. 휴우... 뭐라 뭐라.."


연달아 또 뭐라고 하신다.

우리가 혼나는 기분이다. 우리는 멍한 얼굴로 그를 보고만 있다.


타 병원 의사를 너무 매몰차게 까 버렸다 싶으셨는지, 교수님은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정제된 언어로 수습하기 시작한다.


"하긴, 이해는 돼요. 이게 모양이 워낙 이뻤거든. 너무 동그랬어. 충분히 양성으로 볼 수 있어. 모양이 너무 이뻤어."


그 떼어냈다는 악성종양을 얘기하는 것 같다. 종양덩어리가 이쁘다고 표현되는 게 여간 이상하진 않지만 난 그냥 잠자코 듣고 있다.


"수술 빨리 합시다. 최대한 빨리."


"암이 맞나요?" 그제야 난 입을 뗀다.


"네. 저희 쪽에서 다시 조직검사 할 거예요. 육종암인데 이게 종류가 많아서 조직검사 결과 보고 정확한 진단명은 나올 거예요."


드디어 나왔다. 의사의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된다.

드라마에서 많이 봤다. 이런 장면.

드라마에서는 보통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  '죽나요?' 이런 대사를 치는데 현실은 드라마와 달랐다.


난 눈물이 고이지 않았다. 이미 우려했고, 이 같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수차 예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순간은 진짜 담담했던 것 같다.


교수는 MRI  사진을 짚으며 연이어 말한다. 


"자, 보세요. 여기가 종양이 있었던 자리. 전에 수술하면서 종양을 제거했지만 이거 제거할 때 그냥 꺼냈기 때문에 피부까지 다 오염됐을 거란 말이에요. 어디까지 오염됐을지 몰라요. 그래서 범위를 크게 잡고 수술해야 해요. 광범위절제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들어내는 거죠.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해요"


MRI  사진에 보이는 왼쪽 허벅지는 내 한 뼘보다 작은데 의사가 가리키는 부위는 그 작은 뼘 거의 다에 해당한다.


'뭐지? 광범위절제술? 잘라낸다는 거야? 저렇게나 많이?' 이제야 머리가 멍해진다. 

난 이제 담담하지 못하다. 내 동공이 흔들리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던 그때.


아내가 차분히 말한다.

"교수님. 수술하고 나면 일상생활 지장은 없는 걸까요?"


그렇다. 듣고 보니 나도 저게 궁금했던 것 같다.


"대퇴 4두 중에 근육 3개를 들어내는 거라 지금 같지는 않을 거 에요. 많이 쩔뚝거릴 수 있어요..."


'절뚝거린다?' 모호한 말이다. 얼마큼 절뚝거리는지, 어떻게 절뚝거리는지에 대한 구체성이 없는 말을 듣고 있다. 


아내는 더 차분하게 말한다.

"교수님, 그럼 최대한 근육을 많이 살리는 방향으로 수술할 수는 없는 걸까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걱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애절한 질문이다.


"암인데? 아직 젊은데? 불편한 게 무슨 상관이야. 일단은 살아야지. 살고 봐야지. 60대, 70대 환자라면 고려할 수도 있어. 근데 아직 젊잖아. 전이되거나 재발하면 어쩌려고? 이 암은 혈액을 타고 움직여. 바로 폐로 전이 돼. 그때는 우리도 손 못 써. 그리고 보통 암 5년을 완치로 보는데 이건 10년 봐야 해. 수술 크게 하는 게 맞아요"


교수는 이 애절한 질문에 경쾌하면서도 단호히 반말로 설명한다. 마치 여동생을 타이르듯.


저 교수의 짧은 말 안에 다 있다. 상황의 심각성이. 

'이거 심각한 암이다. 생활 고려해서 적당히 수술했다가 전이되면 죽는다.'



최대한 빨리 수술일정을 잡아주겠다는 교수의 말을 듣고, 우린 진료실을 나왔다.

이젠 암이 현실이 되었다는 인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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