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여름, 나는 신발로 나름대로 괜찮은 커리어를 보내고 있었다. 몇년간의 공부를 통해 작지만 내 사업장을 통해 소득을 만들고 있었고, 주변에 알릴수 있었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판매도 있었고, 레슨도 있었고 모교의 선배님께서 연이 닿아 강의를 제안해주시기 까지 하였다. 국내 최고의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장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패션디자인학과 석사 졸업장을 가지지 못했다. 신발과 관련된건 오직 몇장의 상장과 인터뷰, 사업장과 내 작업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뿐이었다. 당장 강의를 직업으로 가질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내 졸업장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상황을 맞닥드리니 내 민낯이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신발을 디자인하거나 판매하기보다는 교육하는 쪽으로 많은 시간을 쏟았다. 신발을 통해 뭔가를 이뤄내고자 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마음이 통하고 필요가 닿으니 교육이 이어졌고, 생활에 필요한 약간의 안정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신발을 교육하는 대학교수가 되려면 석사 졸업장을 위해 2년이나 공부해야할 시간이 더 필요했고, 나는 가장의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에 영 잘 맞아떨어지는 핏이 아니었다. 막연함과 불확실에서 오는 공포를 30대 유부남이 되서 겪을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리고 퇴근하는 길에 나는 집근처 입시미술학원의 간판을 보았다.
나는 혼자 벽보고 눈치 볼거 없이 운동하길 원해서 복싱을 다녔다. 내가 다니던 복싱장 창밖으로 그때 보았던 미술학원 간판이 보였는데 재수하던 시절이 계속 머리를 스쳤다. 나는 재수를 하면서 상도 많이타고 내 성적으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학교에 수시 입학했다. 그때 나의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고 내 이름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내 졸업장은 저기에선 빛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의 판단력을 믿기 때문에 고민거리가 있을때 내가 생각하는 선택이 위험할지 아닐지 물어본다. 그리고 아내는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나는 내 입시시절 선생님에게 연락하여 조언을 구했다.
어릴적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선생님이셨다. 어릴적 마블코믹스를 접했던 나는 아이언맨 1편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이었고, 입시의 중압감 때문에 영화관에 갈수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학원에서 아이언맨 1편을 보여주셨고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났다. 이외에도 이때 나의 입시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셨고, 나이가 든 후 찾아온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학원일의 현실과 여건, 정치와 암투 등 세상 어느 분야에 그런게 없겠냐만 순진한 학생들이 있는 공간에 정말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걸 알게되고 선생님께서는 너무 힘든일이고 열악하니 만류하셨다. 그리고 나는 더더욱 학원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강해지게 되었다.
빠르게 신발과 관련한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집에서 가까운 학원에 전화를 걸어 어느학교를 나왔고, 어디서 몇년 일을 했고, 입시를 하고싶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이 순간을 나름 영화같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낡은 바에 들어온 주인공이 일자리를 대뜸 구하며 시작되는 촌스러운 액션영화의 시작을 떠올린다. 아무튼 나는 내 행적과 이전의 성과들을 알릴 수 있었고 감사드리게도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제일 일정이 빡센 입시반에 들어가길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입시학원에서 고3의 역할은 학원의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큰 농사다. 그러니 더욱 신경쓸수 밖에 없었다.
입시미술에는 나름대로 룰을 가진 실기유형이 존재한다. 일정 시기별로 유행이 바뀌고 새로 도입되는데 다시 입시계로 돌아온 후 내가 겪지 않았던 입시를 보자니 많이 생소했다. 나는 발상과 표현, 사고의 전환 두가지 실기 유형을 겪었던 세대였는데, 현 시점에선 기초디자인 유형이 주를 이루고 이마저도 시기상 너무 오래되어 교체당하겠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내가 일하게 된 학원의 스타일을 수용해야하니 손을 풀어야했고 써보지 않았던 재료에 손은 절고 물조절도 엉망이고 몇개월간 재활훈련에 매진해야 했다.
30대가 되어 바라본 학원은 내가 겪어본 중소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분야가 많고 각자의 능력치는 평준화 되지 않고 각자의 장단점은 너무나 뚜렷하다. 폐쇄적인 구석도 있고, 너무나 투명하고 무방비하게 놓여지는 일도 많았다. 선생님들 각자의 머리속에는 서랍장이 있는게 보이지만 그 서랍장 속 내용이 문서로 공유되는 일은 없어보인다. 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다른 학원들의 마케팅을 보며 내가 가진 문해력과 추리력을 동원해 노하우를 훔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무슨 운명인지 내가 입사한 그 해는 내가 있는 학원에서 긴시간 동안 입시를 맡아오신 원장님께서 마지막으로 입시를 맡으시는 시기였다. 내 취준은 1주일도 걸리지 않았는데, 내 기회도 1년도 안되어 오게 생긴 것이다. 나는 이곳이 기회의 땅임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