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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Jan 23. 2024

낯선 이에게 심장을 꺼내어 주기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은 주인공 마누엘라가 사고로 아들을 잃고 난 후 바르셀로나로 남편을 찾아가며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마누엘라와 아들 에스떼반은 그의 생일날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관람한다. 공연이 끝나고 에스떼반은 배우 우마 로호의 사인을 받고자 뒤따라가다가 마누엘라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중심 서사는 에스떼반이 사망한 이후 바르셀로나에서의 이야기이나, 초반부에는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가 꽤 무게감 있게 다루어진다. 또한 마누엘라의 직업이 장기 기증 코디네이터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장기 이식, 특히 심장 이식이라는 소재가 본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일 듯하다.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는 장기이식을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이때 인용되는 것이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있는 자들은 고쳐야지”라는 안톤 체홉의 희곡 <플라타노프> 속 한 구절이다. 마누엘라는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기부자들의 장기를 필요한 이들에게 보내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보내 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의 심장이다.


여기에서 심장은 마누엘라의 모성, 또는 그녀가 베푸는 사랑이다. 아들의 심장을 기증하여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 후, 마누엘라는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이들에게 심장을 꺼내어 준다. 길가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던 아그라도를 구해 주며, 그녀의 전남편 롤라의 아이를 임신한 로사에게 집 한 켠을 내어 주고 그녀가 죽는 날까지 보살핀다. 또한 아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우마에게도 친절을 베풀며, 전염병 같은 존재라 표현했던 롤라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녀는 죽으러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롤라의 부탁을 들어준다.


이는 극중극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텔라를 연상시킨다. 스텔라도 그녀에게 상처를 준 스탠리를 결국 품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마누엘라는 스텔라를, 롤라는 스탠리를 연기했음이 언급되기도 한다. 다만 거칠고 마초적인 스탠리에 비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속 남성들의 모습은 상당히 무력하게 그려진다. 마누엘라와 에스떼반에게 상처를 주고, 로사에게 에이즈를 옮긴 롤라는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으로 로사의 장례식에 나타나며, 로사의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아내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전형적인 어머니상에 가까운 스텔라와 달리, 마누엘라의 모성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이고, 그 범위 역시 바깥으로 확장된다. 이와 동시에 가정과 어머니의 재정의가 이루어진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역할보다는, 사랑 그 자체에 집중한다. 마누엘라는 자신의 남편, 자신의 아들이라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모나고 못난 사람이라도,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절과 선의를 베푼다. 아들의 심장을 기증하여 다른 생명을 살렸듯이, 아들에게 주던 사랑으로 이제는 찢어지고 너덜너덜한 이들의 삶을 수선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속 블랑쉬의 대사이자, 블랑쉬 역의 우마가 하는 대사이기도 한 “전 늘 모르는 분의 친절에 의지하는군요”라는 대목이 알모도바르 감독이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 속 택시기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모든 여정의 시발점은 마누엘라의 아들 에스떼반이 남긴 글이다. 에스떼반의 글은 처음엔 일부만 공개되었다가, 영화 말미 롤라의 낭독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그는“아버지가 누구이든 어떤 사람이든 나에게는 상관없음을 어머니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라고 적었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지만, 에스떼반은 롤라가 어떤 사람이든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마음은 롤라와 마누엘라 모두에게 전달되고, 낭독 후에 롤라가 마누엘라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에 에스떼반의 사진 속 눈과 입이 비춰진다. 마치 에스떼반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듯하다. 마누엘라는 새로운 에스떼반에게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로 로사와 약속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마누엘라와 롤라의 아이 에스떼반의 노트인 동시에, 마누엘라가 세번째 에스떼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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