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은 꽃말이 없어. 뭐야 그건 좀 슬프잖아. 물주머니가 달리지 않은 꽃다발을 한 손에 쥐어보면 가볍게 잡힌다. 우리가 불판 위에 고기를 굽는 동안 줄기가 잘려나간 꽃도 자꾸만 허리가 굽었다. 넌 사랑을 믿니. 그 사람은 너랑 만나면서 뭐가 변했니. 내가 결혼하면 네가 축사해 줘. 음 아니다 난 화동 할래. 히물히물 웃는 얼굴이 테이블 후드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꽃을 준 아이랑 헤어지고 집으로 향했다. 우린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집 방향이 아예 같을 때가 있었고 반만 겹칠 때가 있었고 두세 정거장만 같이 올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하나도 겹치지를 않아. 시간이 지나면 더 멀어져 있다. 난 집에 도착했어. 넌 어디쯤이야. 네 집 언저리랑 우리 집을 손가락으로 이어 보면 쉽게 갈 수 있을까. 지도 어플을 켜서 확대축소를 반복했다. 날이 갈수록 덤덤해진다는 너에게 해줄 말이 많았지만 별말을 꺼내진 못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
네가 사준 꽃은 분홍 리본에 묶여있었다. 나는 그걸 조심스레 풀어서 바스락거리는 투명 비닐을 펼쳤다. 새끼손가락 둘레정도되는 아주 작고 여린 꽃. 파아란 미니델피늄. 나도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이미 사선으로 잘린 줄기를 다시 하나하나 사선으로 잘랐다. 컵에 물을 채우고 식초를 몇 방울 넣고. 설탕은 없어서 여기까지. 오래오래 머무르다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