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소니아 Feb 15. 2024

교토에서의 첫 아침

일본여행 9일차(2024.01.23.화) / 야망가의 마음가짐

I. 기상

 교토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내 숙소의 위치상 런닝을 뛸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좀 늦잠을 잤다. 기상시간은 09시 10분쯤이였다. 기상 후 나는 근처의 마츠야에서 오랜만에 규동을 먹었다. 내가 주문할 때 규동에 돼지고기 된장찌개를 주문했는데 나는 티켓이 한장에 몰아서 나오는 줄 알고 한장나오자마자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뒤에서 직원분이 내 자리로 오더니 2개 주문했는데 티켓 한장만 들고 갔다고 챙겨주셨다. 감동적이였다.


II. 탐방

  1. 본능사(혼노지)本能寺

 어제는 도착하고 짐풀고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어 혼노지 개방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의 첫 일정은 혼노지 방문으로 정했다. 혼노지는 숙소에서 약 2.5km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걸어가면서 보이스톡을 하게 되었다. 많은 야기를 하며 좋은 경치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꺾어야할 부분에서 꺾지 않고 더 걷는 실수가 종종 발생했다. 그래도 난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환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노지 앞에서 전화를 끊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오다 노부나가의 묘와 혼노지라는 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오다 노부나가의 묘는 있지만, 시체는 없다. 왜냐하면, 오다 노부나가가 미츠히데에게 갑작스런 배신을 당해 기습을 당했을 때도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센고쿠 시대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 부하에게 변을 당해 세상을 떠난 남자. 내가 뽑는 허무한 죽음 중 한명이다. 리더쉽과 능력이 출중하고 자기관리 또한 성실히 하던 리더.. 내가 꿈꾸는 리더상의 표본이다. 나도 다음달에 장교교육대에서 훈련을 받고 지휘자, 지휘관이 될 텐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깊이했다. 

 

 그 후 혼노지 박물관에 들어가 노부나가의 검들, 갑옷들을 둘러 보았다. 검들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내가 본 검중 104cm에 달아는 장검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니 갑옷도 입고 철로 된 검도 2,3자루씩 들고 다니는데 저렇게 긴 검을 들고다닌다고?'라는 생각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래서 병사든 지휘관이든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해야하는 것 같다.


1-1. 야망가의 마음가짐 

      (1) 오다 노부나가

 노부나가는 무로마치 막부의 끝물에서 무로마치 막부를 종결시키고 분열되어 시작된 전국시대(센고쿠 시대)의 양상을 완전히 변화시킨 인물로 일본 전국시대를 논할 때 노부나가를 빼놓고 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존재이다. 또한, 그 당시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이기도 했고 하루 아침에 땅의 영주가 계속 뒤바뀔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전국시대의 통일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그 누구도 예상 못하게 자신의 부하인 미츠히데에게 혼노지에서 배신당해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인이 존경하는 인물 정치인 부문에 사카모토 료마,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항상 다섯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2019년에는 일본인 12,000명이 뽑은 역사속의 인물 부문에서 사카모토 료마와 단 '12표'차이로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노부나가의 알려진 개인적인 면 중 후대의 경영학적 측면에서 본 받아야할 부분으로 꼽히는 면은 '앞을 내다보는 전략, 태만을 용서치 않는 근면,

때로는 베푸는 선정'이다. 선정의 경우 노부나가의 이미지가 잔혹한 이미지라 뭍히는 감이 없잖아 많이 있지만, 전략과 근면만큼은 유명하다. 특히 근면의 경우, 자기 자신의 부하들 중 오래했고 많은 영향력을 행했던 노신이라고 할지라도 태만하다면 가차없이 벌을 내렸다. 더 나아가서 노부나가 본인도 매일 사냥과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기르고, 자신에게 온 가문들의 선물들도 부하들에게 알아서 정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하나하나 포장을 벗겨서 확인하는 정도이다.


      (2) 야망가의 마음가짐

  야망가는 세상에서 크게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1학년 때 독서퀴즈대회 서적이였던 이순신전을 읽고 군인이 되어 전쟁영웅으로 후대에 칭송받는 위인이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시력으로 인해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눈 수술을 해야했어서 포기하고 법조인-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에 흥미와 재미를 너무 느껴 장교-국방연구원-국방차관-국가안보실장을 꿈꾸게 되었다. 주변 어른들이나 친구들, 지인들과 인생 목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너 꿈이 크구나.','진로 설계 탄탄하네.','이거 크게 될 놈이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진로를 설정해놓기만하고 방치한 것이 아닌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학 공부 외에도 뉴스기사, 논문, 서적을 찾아보고 대외활동들도 꽤한 것이 그들에게 저렇게 신뢰감을 보이는 반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법조인-대통령이 목표라고 했을 때 담임선생님조차도 '난 너같은 애 처음본다.', 친구들은 반반이긴 했지만 비난하는 친구들은 '야, 그게 되겠냐?','꿈 좀 깨라.'라는 반응이였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사회생활과 대외활동으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비난하던 친구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 때 주변의 비난에 순응하여 꿈을 포기했다면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온 업적들은 없었을 것이고 철없이 음주가무를 즐기기만하며 나의 목표조차 건실하게 잡지 못하고 진정한 성인으로서의 성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 정주영 회장의 어록 중 '목표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이에 상응한 노력만 쏟아 부으면 그 누구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내 생각도 이 말처럼 흔들리지 않는 목표에 대한 신념과 그 목표에 걸맞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쏟아 붓는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아이폰을 탄생시킨 스티브잡스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어 황폐화가 된 한국에서 조선소를 짓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성장하여 현대그룹을 탄생시킨 정주영 회장도 모두 주변인들에게 '말이 되냐?'라는 비난과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확고하고 탄탄한 계획과 의지, 노력으로 그들은 성공했다. 물론, 나도 국방연구원까지는 몰라도 국방부차관과 같은 고위 관료는 능력도 중요하긴하지만 윗사람의 정치적 의중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불가능할수도 있다. 

 내가 꿈에 그리던 국방고위관료가 되지 못하면 어떤한가. 내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그 근처까지는 갔었다는 내 삶의 역사가 있기에 아쉬움은 크게 남겠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고 시도조차 안해본 것보다는 한번 뿐인 인생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앞으로 용진할 것이다.


  2.  니시키시장(錦市場)

 혼노지의 정문으로 나오자 바로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니시키 시장'이 나왔다. 혼노지 박물관에 노부나가와 관련된 기념품들이 있었으나 노트, 그림들 밖에 없어서 구매하지 않았다. 내가 후쿠오카에서 100년 된 가게에서 구매한 장인이 만든 일본풍 용이 그려진 기와를 구매한 것처럼 교토에서도 하나 구매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주 들 뜬 마음으로 니시키 시장 탐방을 시작했다. 니시키 시장 속 전통 가게로 보이는 곳들 4~5군데 들어가봤다. 그곳에서도 후쿠오카에서 구매했던 기념품처럼 끌리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 들어가려했는데 욱일승천기가 있어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장 속에 백화점 안에 있는 상점들처럼 피규어와 애니메이션 굿즈를 판매하는 상점들도 많았다. 백화점 속 상점이든 이곳에서 본 상점이든 공통적으로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원피스, 스파이패밀리 이렇게 4개의 애니메이션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가장 메인이 되는 부분에는 저 4개의 애니메이션 굿즈들이 가장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제품들도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3. 교토미술공예대학(京都美術工芸大学 京都東山キャンパス)

  어제 밤에 니시강을 건너며 봤던 교토미술공예대학을 보러 갔다. 확실히 낮이라 그런지 밤에 봤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캠퍼스안으로 들어가보니 건물은 상당히 최신식이나 캠퍼스가 매우 작았다. 마치 내가 나온 도당고등학교 운동장을 건물이 둘러싸고 끝난 크기였다. 그래도 건물이 최신식이고 '예술공예'대학이라는 이름답게 1층에 박물관이 있었는데 시립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전통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또한, 학생들도 카페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여서 보기 좋았따.


 4. 미안하다 참새야

 그렇게 교토예술공예대학을 본 후, 니시강을 건너 교토역으로 걸어가며 주택가를 지나던 중 길거리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참새를 발견했다. 참새를 보니 내가 2021년에 집근처에서 봤던 부상당한 참새와 증상이 비슷해 보였다. 살아는 있으나 아예 날거나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참새의 곁에서 쭈그려 앉아서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말동무가 되주고 차나 사람들에게 밟히지 않을만한 장소에 올려놓고 사과와 위로와 함께 떠났다. 그 후 나는 교토역의 벨로체 카페에 왔다. 벨로체 카페는 후쿠오카에 있었을 때부터 내가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따뜻한 커피는 2,800원 차가운 커피는 3,300원 밖에 하지 않아 매우 혜자였기 때문이다.


5. 교토역의 새로운 모습

 카페에 있다가 교토역 1층에 평점이 높은 돈까스집을 발견했다. 내가 일본에 오고 나서는 항상 규동,장어덮밥,라멘 밖에 먹지 않아서 이번에는 돈까스를 먹고 싶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메뉴 중에 교토식 된장 돈까스가 있어서 이것으로 선택했다. 확실히 튀김 속에 있는 고기가 식감이 좋았다. 먹고 나서 교토역 속에 있는 백화점을 둘러본 후 1층으로 나왔는데 옆에 계단에 엄청난 LED들로 변하는 스크린을 발견하고 그리로 쭉쭉 올라갔다. 최정상에 와서 내려다보니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역의 클라스를 느꼈다. 그곳에서 야경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건축설계를 잘한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