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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H Jan 23. 2024

엄마, 나는 말이지.

다른 세상을 살아온 우리, 다시 만나보자.

내가 집을 나와야겠다, 한국을 떠나야겠다 다짐한 순간은 생생하다. 정확한 날짜를 빼고 그 모든 것이.


추운 겨울이었기에 난방이 잘 들어오던 거실에서 밤을 지내고 눈은 떠진 지 오래지만 따뜻한 솜이불 밑에서 웅웅 거리며 들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석유난로 냄새는 왜 이리 좋은걸 까 라고 분명히 생각했을터.


아침 일찍인 것이 분명한데 어디서 새벽부터 전화가 온 것일까. 엄마의 “어머나, 고마워요!” 하는 소리는 오랜만에 듣는 높은 피치의 소리였다. 머리를 빼꼼히 이불 바깥으로 내밀었을 때 엄마는 상기된 모습으로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약사님! 약사님!! 우리 아름이가 여자수석했데요! 서울 큰아버지 전화받아요!! 빨리 약사님!”


“여자수석? 아이고, 아이고”


아빠는 약국 나가실 준비를 하시다가 서둘러 달려와 전화를 받으셨다. 교육청에 계시던 큰 아버님께서 얼마 전 전라북도 과학고등학교 입학지원을 했던 언니의 결과를 미리 알게 되셔서 전화를 주신 거였다.


언니는 전북과학고 4기, 여자수석으로 입학을 했단다.


바로 그 순간, 언니는 아직 그 소식도 모르고 자고 있을 때, 나는 다시 솜이불속으로 들어와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뜨거워지는 볼을 느끼며, 주르륵 흘리는 눈물을 훔쳐내며 생각하고 다짐했던 것이다.


집을 떠나야겠다. 한국을 떠나야겠다.


만 12살, 중학교 1학년. 그 겨울.


숨차도록 힘들고, 더 이상 열심히 못하겠는데 두 살 위 언니는 또 이렇게 앞으로 뛰어나가니. 난 그보다 더 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나는 이보다 더 낼 힘이 없는 것을.


이제 그만. 언니와의 끊임없는 비교. 1등이 아니면 사랑받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이 생활. 이제 그만.


그렇게 결심한 후 8개월 뒤.


나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영국이라는 곳에 여행가방 두 개와 배낭을 메고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파란색 하나, 검은색 하나. 그 샘소나이트 케이스 둘의 묵직함. 까칠함. 냄새까지 기억이 날듯한 지금. 대략 30년 전인데도.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세계 4대 회계회사의 영국 한국인 최초 파트너. 나름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나 마음속 깊이 나는 아직도 엄마 한 테로부터 도망을 가고 있다. 그래 마음의 안정을 모르고 살고 있다.


엄마의 이야기를 내가 진심으로 들어본 적도,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전해준 적도. 우리의 삶은 그리 앉아서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삶이 지금까지 아니었기에.


그래서 다시 한번 해보려 한다. 나를 위해, 엄마를 위해.


엄마, 우리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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