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울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일중독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2년 전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인 내가 모을 담고 있는 회사에서 파트너로 승진을 했는데 우리 회사 영국법인 최초의 한국인 파트너라 한다.
뭐 화려하다면 그럴 수도 있는 타이틀인데 막상 파트너가 되면 끝일 줄 알았던 나만의 경주는 그것이 또 아니더라. 다만 새로운 마라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
그 끊임없는 경주를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어서 나는 얼마 전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왜 이리 회사의 인정에 목숨을 걸고 나 스스로 이 정도면 충분해, 잘했어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것인지.
심리치료를 시작한 지 2달 정도 되었다. 1주일에 한 번씩 잔잔한 대화로 시작되는 그 한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사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을 시작하면서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불행하면 내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엄마가 불행했던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 사이. 나는 엄마의 화가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내가 말을 잘 안 들어서, 내가 살이 쪄서, 내가 피아노를 못해서, 그래서 엄마가 불행한 줄 알았다. 엄마 역시 엄마의 불행했던 그 시기, 나를 “고치기 위해” 매를 잡았고, 다 나를 위한 것이라 매서운 눈매로 나를 혼냈으며, 내 건강을 위한 것이라 나를 다이어트시켰었다. 이미 학교가 끝나면 학원 스케줄이 빡빡했던 언니, 일 때문에 주말에만 우리와 함께했던 아빠. 그 시절 학교 빼고 모든 시간은 나와 엄마의 전쟁이었다.
그래서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 나는 아직도 자라나지 못하고 깊은 내 어디 안에 살아있어서 끊임없이 너는 잘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아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삶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주 심리치료를 마치고 엄마와 나는 영국시간 새벽 3시에 보이스톡을 하며 엉엉 울었다. 엄마는 과거의 이야기는ㅂ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한다. 엄마가 너무 힘들다 한다. 그때 일은 엄마도 기억하며,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나한테 미안하다 한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나만 생각하면 미안한데 내가 자꾸 그때 생각을 하면서 엄마를 원망하는 것이 엄마한테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라 했다.
나는 사실 내가 엄마한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용서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그 시절 있었던 일을 잊어달라 한다.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불행하게 한다는데 나는 또다시 엄마 불행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인데.
답이 없는 것인가.
그래도 끊임없이 찾아보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