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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H Jan 24. 2024

빨간 가죽 책가방

엄마, 부잣집 막내딸

얼마 전 칠순을 넘긴 엄마를 보고 있자면 어린 시절 소녀를 상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네 많은 엄마들의 삶이 비슷하겠거니. 어두움이 가득한 우리 엄마의 얼굴. 잠을 잘 때에도 근심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은 미소와 웃음을 쉽게 내보이지 않는, 그런 얼굴이기에 엄마도 소중하고 여리고 사랑받는 소녀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상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엄마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한 추억이 없었서일까.


엄마가 가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줄 때 그중 행복한 이야기는 딱 하나이다. “빨간색 가죽 책가방”.


전라도 농촌마을에서 6.25 후 6남매의 막내딸로 엄마가 태어났을 때 외갓집은 부유했다 한다.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몇 개의 “호텔”을 가지고 계시고, 쌀농사를 크게 하셨으며, 일본과 중국을 다녀가시며 무역업을 하셨다 한다. 말을 타셨고 활을 쏘셨으며 그때 당시 서커스 단도 가지고 계셨다 하니 한마디로 사업을 나름 크게 하셨던 듯하다. 엄마가 그 시골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빨간 가죽 책가방을 사다 주셨단다.


잘은 모르지만 그 시대에는 꼬질꼬질 천대기에 김칫국물 새는 도시락과 책을 꽁꽁 말아 동여맨 것. 그것이 책가방 아니었던가.


그 사이에서 엄마는 소위 말하는 “부잣집 막내딸”이었고 번쩍이는, 각이 진 일본에서 온 빨간색 책가방은 가방 이상의 심벌이었나 보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슬픔이 섞인 행복을 보이곤 한다. 이야기의 종말은 항상 “동창들이 지금도 그러지. 그렇게 이쁘던 부잣집 막내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엄마는 너무도 빨리 성장했어야만 했으니.


내가 시간을 거을러 그 소녀를 찾아갈 수 있다면. 내가 그 소녀의 앞날 힘든 길, 함께해 줄 수 있다면.


그래. 엄마도 어리고 여리고 예쁘고 맑은 부잣집 막내딸이었는데. 그 행복이 참으로 짧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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