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좋아한다. 얼음처럼 차갑고 사이다처럼 청량하다. 때로는 민망할 정도로 핵심을 콕콕 찌르시는데 저항할 방법이 없다.
얼마나 속상하세요?라는 위로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셨다.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모두 똑같이 ‘집착’에 원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하신 말씀을 요약한다. 슬퍼한다고 떠난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슬퍼하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죽은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남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것 같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며,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으면 사랑이 간절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집착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슬퍼한다.
재미있는 것은 잘해주는 사람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떠나면 그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하기에, 나를 너무 아껴주는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인생을 살다 보면 특별히 좋을 것도 특별히 나쁠 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하. 쿨내가 공간을 꽉 채운다.
고문을 당했던 일, 총을 든 강도를 만났던 경험을 솔직히 이야기하셨다. 공부해서 다 깨달은 줄 아셨는데 1979년, 고문을 받는 중에 본인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고 하셨다. 이후에 인도에서 총을 든 강도를 물리치시고는, 과거보다 그 두려움이 많이 옅어졌음을 알았다고 하셨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죽어서 좋은 데 간다는 생각, 윤회한다는 생각이 나타났으며, 그것의 진위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 방식으로 축원을 해주고 불교 신자라면 불교 방식으로 기도해 주면 된다고 하셨다. 두려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끝을 내셨다. 다시 한번 쿨내가 진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