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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Aug 01. 2024

영어교육에 대하여 4탄

그러나 기본은 읽기이다.

우리에게 영어는 외국어이다. 처음 접한 것이 책을 통해서였고 단어도, 표현도 책으로 보며 읽혔다. 언어의 input이 있다면 그것은 듣기와 읽기인데, 실제로 읽기 없이 듣기로만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다. 게다가 읽기 없이 배운 언어는, 설사 그것이 모국어였을지라도 쉽게 날아갈 수 있음에 주목해야한다.


미국에 있을 때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본 적이 있다. 부모가 모두 유학생이다가 직장을 잡아 일하느라 생후 한 달정도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가 있었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보다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영어가 거의 모국어라 할 수 있었고, 그 부모도 아이와 주로 영어로 소통을 해서 한국어가 도리어 어눌한 아이였다. 아이가 만 네 살이 되던 여름, 엄마와 세 달정도 한국에 다녀왔는데 아 그만 이 아이가 영어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온 것이다. 만 네살이면 한국나이로 여섯 살 정도로 절대 어린 나이가 아니었고 한국에 있었던 시간도 달랑 삼 개월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이  주 정도 지나니 다시 회복?되기는 했다) 유학생 와이프들끼리 그 원인을 분석하다가 내린 결론은, "읽기(문자)를 배우기 전의 언어는 쉽게 잊혀진다"는 것이었다.


어려서 이민을 가거나 입양되어 다른 언어권으로 간 성인들 중, 이주한 나이가 다섯살이나 여섯살 정도로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전혀 한국어를 기억 못하는 경우를 많이 다. 대여섯살 정도이면 한국어를 아주 잘 할 나이인데도 어떻게 그렇게 새까맣게 잊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지금까지의 관찰경험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한글을 깨우치전에 이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입양된 경우 양부모가 따로 챙기지 않으면 모국어를 할 기회가 없었을테고, 이민가정의 경우 부모님들이 생업으로 바쁘셔서 모국어를 유지시키는 것에 공을 들일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어린 나이에 한국에 돌아온 유학생 자녀들 중에는 돌아와서도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자라면서 쭉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케이스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대부분  해라도 미국학교를 다녀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후에 돌아온 경우이고, 한국에 와서도 영어책을 읽으며 언어감을 지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지만, 언어를 쌓아나가는 것은 읽기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처음 미국에 가서 TV를 틀었는데 남편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캡션을 켜 놓은 것을 발견했다. '영어를 공부하려면 자막을 꺼야해!'라며 호기롭게 캡션을 껐는데 정말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TV 자막을 켜고 볼 것이냐 끄고 볼 것이냐로 고민을 하던 내게 한 유학생 언니가 '영어공부를 막 시작한 단계에서는 자막을 켜고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영어자막을 그 속도로 직독직해를 할 수 없다면 들으면서는 더더욱 안되는게 당연하며, 눈으로 보고도 모르는 표현은 아무리 들어도 걸러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막을 틀고 TV를 보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듣기 훈련이 아닌 읽기 훈련이다.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공부법이다. 듣기 훈련 자체가 목적이면 자막을 끄는게 맞다. 그러나 읽어서 익힌 표현이 아니면 백번 들어도 잡아내지 못한다. 새로운 표현은 눈으로 보고 익혀야하고, 그렇게 입력되어야 비로소 귀로 들었을때 들린다. 


결국 영어 공부의 시작은 읽기요, 잘 들을 수 있는 비법도 읽기이다. 언어학습의 네 가지 요소인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시작과 근간을 꼽으라면 읽기라는 말이다. '우리가 영어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으로만 공부해서 정작 외국인을 만났을때는 한 마디도 못한다'는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말하는 훈련도 했어야하는데 하지 않은 때문이지 읽고 해석하는 교육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여러 직간접 경험으로 볼때 input이 충분히 된 아이들은 output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면 짧은 적응기간 후에 곧 훌륭히 말하기 시작한다.


주위에 영어유치원과 국제학교, 어학연수가 난무하는 송도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나름 엄마표 영어도 해보고 이리저리 시도해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생각보다 영어교육도 딱히 왕도가 없다 . 튼튼하고 풍요로운 모국어의 바탕위에서 많이 읽고 많이 들으며 외국어를 외국어답게 공부하는 것이 정도라면 정도이다. 다만 수학공부처럼 영어공부도 꾸준히 그리고 제대로 하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자녀교육의 모든 영역이 그렇듯 정답은 없고 아이마다 최선의 해법만이 있을 뿐이더라는 것 정도가 지난 20년간의 경험을 통해 잠정적으로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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