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ADHD를 마무리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
어제 남편이 내게 조슈아 얘기를 하나 해주었다.
며칠전 조슈아가 혼자 흐뭇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길래 다가가 물었다는 것이다.
"넌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
우리 아들이 많이 하는 말.
"그냥요"
"야, 그냥이 어딨어. 행복하면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여기서 우리 아들의 놀라운 대답이 나온다.
"이유가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정말 행복한게 아니지 않나요?"
마치 '사랑에 이유가 있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다'와 같은 통찰력 있는 대답이었다.
듣자마자 캬~ 감탄이 나오며 역시 우리 아들이군 싶었다.
남편은 '우리 집에 부처가 있었어' 한다.
이 ADHD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며 발행은 아주아주 나중에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입시가 다 끝나야, 과연 이 아이의 진단과 약처방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오늘 그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들의 인생의 성패가 입시인가? 그럼 어느 대학까지 붙어야 성공이고 어디 이하이면 실패인가? 인생의 성패가 있기는 한가? 있다면 그건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나?
조슈아를 처음 병원에 데리고 간 이유는 아이가 행복해보이지 않아서였다. 수학점수가 낮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조슈아의 존재를, 그 아이의 속도를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서 억울했다고 할까. 그리고 정말 그것이 아이가 비정상이라든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전문가에게 묻고 싶었다.
아이가 세상과 최소한으로 템포를 맞추는데 약이 도움을 주어서 기뻤으나, 본인이 자신의 장점과 특성을 망치는 정도라고 생각했을 때 그 용량을 줄이는 것을 선택했다. 조슈아에게 콘서타라는 약은 커피보다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면서도 본인의 학교생활에 있어 불편한 특성을 조금 더 정확히 도와줄 수 있어 선택한 약간의 보조제일 뿐이다. 그 약이 조슈아를 조슈아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게 했다면 아이가 스스로 그 약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믈론 엄마는 수학을 못하는 아들을 잘하는 아들로 바꾸고 싶어했을지라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아이가 대학에 진학해 자신이 선택한 방법과 속도로 공부할 수 있게 되면 미련없이, 가차없이 그 약을 끊을 것이다. 모르긴해도 그 전에 아이가 '이 약 더이상 필요 없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속도로, 같은 일정으로, 같은 줄에 세워,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바보가 아닌데도 바보라고 느껴야하고, 문제가 없는데도 문제아라고 비난받아야하는 학교와 사회가 애석할 따름이다. 그런 세상에 최적화 된 그레이스 같은 아이가 내 아이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혹시 조슈아처럼 삐걱거린다면 글쎄, 사회더러 바뀌라고는 할 수 없으니 부모라도 '괜찮아.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어'라고 말해줘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오늘 또 한번 한다.
조슈아!
이유가 없이 오늘 행복한 너, 네가 진짜 위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