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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Dec 20. 2024

6. 조슈아는 정말 ADHD였을까?

저의 느림은 병이 아니라 성격입니다.



용량을 서서히 늘리며 한 두 달 먹다보니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았다.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가 '한 달간 지켜보니 어떻더냐?'고 내게 묻는데 그때마다 도리어 내가 이것저것 묻곤 했다.


"선생님, 저희 아들이 이 약 먹고 엄청 똑똑해진 것 같아요. 전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말하고 물건 잃어버리고 들어오는 실수도 확연히 줄었구요. 그런데 사실 사춘기가 끝난 지난 겨울부터 아이가 전보다 눈빛도 좀 반짝이는 것 같고 특유의 어리바리함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기는 했어서 꼭 이 약 때문일까하는 의심이 들기는 합니다. 이 약 안 먹었어도 일 이년 후에 검사했으면 정상군으로 나왔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조슈아는 성장기에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며 집중력이 점점 좋아질 겁니다. 그러니 내년 이맘때 똑같은 검사를 한다면 결과 수치가 더 높게 나오겠죠. 그러나 그때는 조슈아 또래 집단의 집중력 평균도 함께 올라가 있을 겁니다. 마치 특정 연령의 신장분포곡선의 하위 30프로에 위치하는 아이도 나름 꾸준히 키가 크지만 동일 연령 아이들도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그 아이의 상대적 위치는 계속 하위 30프로에 있는 것처럼요. 문제는 학교라는 환경이 일정 수준의 성취도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하위 30프로의 낮은 성취도가 아이의 교우관계나 학습, 또는 정서상의 문제를 가져와 돌이킬 수 없는 인격적 문제를 남길 수도 있으니 그걸 특정 시기에만이라도 좀 도와주고자 할 때 약물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럼 이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할까요?"

"우리나라 학교시험의 특성상 빠른 정보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약의 도움을 받으면 좋지만 대학에 가면 더이상 필요없지 않을까요?"

"만약 약을 끊었을때 다시 집중력에 급격한 저하가 느껴지면 다시 복용하고 싶어하지는 않을까요?"

약 자체의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인 의존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저는 조슈아가 약을 끊었을때 집중력이 확 떨어질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성인은 먹다가 안 먹으면 다시 되돌아가지만 성장기 청소년의 경우 이 약을 먹으며 집중해서 공부하는 경험을 통해 훈련이 이루어지거든요. 운동을 통해 체력이 길러지는 것처럼 집중하는 행동 자체가 훈련이 되어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게다가 지금은 절박하니까 한 달에 한번 병원에 와서 이렇게 약을 받아가지 대학까지 가서 매달 이렇게 병원에 와야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청소년 시기에 약을 먹던 친구들 중 성인이 되어 약효과가 그리워서 다시 찾아오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1년반이 지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씩 용량을 늘리다가 도리어 아이가 원해서 적정선으로 용량을 내렸고,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날은 약을 안 먹기도 한다. 약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 기능이 도리어 버거운 상황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슈아는 자신의 느린 특성이 기능부족이 아닌 성격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건 고쳐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때, 더 일찍 왔어야했던게 아니었나 자책도 했으나 이젠 알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 더 다행이었다고. 조슈아가 약을 먹는다는 사실이 본인에게도, 엄마인 내게도 집중력이 약한 조슈아를 부정하고 거부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처럼 조슈아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드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콘서타를 먹는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카페인이 몸상태를 도리어 망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처럼, 억지로 각성시키는 것보다 휴식을 취하는 편이 건강에 낫다고 판단되는 날에는 약을 먹지 않고 차라리 쉬는 시간에 잠시 조는 것을 택한다. 이 나이에 그것을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을만큼 성숙한 조슈아가 자랑스럽다.

'느린 건 장애나 병이 아니라 제 성격인 것 같아요'라며 무심한 듯 내뱉는 아이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멋져보이든지.

시간에 쫓기는 문제가 가득했던 1학기 화학에서 4등급의 성적을 받았으나, 그건 타임어텍으로 가득한 시험문제를 낸 선생님 잘못이지 자신의 화학에 대한 이해도는 1등급 아이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확신하는 조슈아의 의견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조슈아에게는 잘못이 없다. 시험과 학교가 잘못했다. 부디 진지하게 반성해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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