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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출장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에 가다.

by 슬기로운 주니작가

내가 그 자동차 부품회사 H사를 계속해서 다닌 이유는 하나였다..

글로벌 회사인 H사는 해외에 공장이 여러 군데 있었다.

미국, 슬로박,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 현지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해외 주재원 기회… 내가 그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과장으로 근무하던 그 해는 큰 프로젝트 PM(Project Manager) 역할을 마무리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였다.

나는 우리 팀에서 미국 출장을 가게 될 거라는 정보를 듣고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팀장님 제가 하고 있는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제가 미국 한번 다녀오게 힘 좀 써주세요 “,

”알았어요. 황 과장이 이번에 고생 많이 했으니 미국 한번 갔다 와야지, 황 과장 해외출장 한 번도 안 가봤죠?? “

”네, 한번 가봐야 하는데.. 이번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마치 미국 출장이 확정된 것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분위기는 내가 미국 가는 분위기로 되어갔고, 나는 바라던 미국출장을 가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애틀랜타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갈 때는 12~13시간이고, 올 때는 15시간~16시간이다. 지구가 자전하고, 항공경로가 갈 때 하고 올 때 달라서 2시간~3시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미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처음 가는 해외출장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료로 제공되는 기내식과 나름 최신 영화를 보니 13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내식 2번과 나름 최신영화 4편을 봤다. 다행히 그 당시 내가 영화관에 잘 안 가서 볼 영화가 있었고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비행은 애틀랜타 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입국심사.

중학교 다닐 때 나는 영어 모의고사를 치면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영어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나와 영어가 멀어진 계기는 수학능력시험 이후부터이다.

수학능력시험 마지막 시간 외국어 영역 시간이다. 나는 외국어 영역 성적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성적이었다. 반에서 5등 정도에 수준, 100점 만점 점수로 환산하면 85점 정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능 마지막 시간 난 오랜 시간 영어를 싫어하게 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수능 감독관 선생님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앞뒤로 2명이 서서 감독을 했다. 나는 맨 뒷줄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뒤에 있는 여자 감독관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와서 계속 왔다 갔다 하였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 또각또각‘“

난 그 구두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고, 그 소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런 큰일 났다… ’

‘너무 크게 들리는데… 말해야 하나?, 말하면 선생님이 기분 나빠하겠지? 어떡하지?‘

영어 듣기 평가가 흘러나왔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헉 못 들었다… 뭐라고 했지??’

그렇게 듣기 평가는 평소보다 절반정도밖에 못 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또각이는 멈추지 않았고, 난 두 귀를 손으로 막으면서 문제를 겨우겨우 풀어 나갔다.

반쯤 혼이 나간 나는 엎친데 겹친 격으로 종료시간을 10분 착각을 했다.

그 당시 수능은 오후 4시 50분에 외국어 영역이 마지막으로 끝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수능을 처음 치르기 때문에 라는 변명을 찾아내면서 그날은 오후 5시에 마친다고 생각했다. 10분을 착각을 했다.

수능시험에 10분은 약 10문제를 풀어야 할 시간…

”종료 10분 전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난 무너져 버렸다. ’아직 10문제도 더 못 풀었는데 큰일 났다.‘

난 보기가 가장 긴 답을 찍으면서, 답안지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찍은 나의 답들은 교묘히 정답을 피해 갔고, 평소 외국어 영역 평균보다 약 10점 정도 못 친 결과였다.

그 여자 감독관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그러한 원망이 영어에 대한 흥미도 잃게 하였다.


그런 영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출장 가야 하니 난 벼락치기로 영어를 다시 공부하였다.

짧은 시간에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알아듣는 위주로 공부를 했다.

그래도 그게 효과가 좀 있었다…


애틀랜타 공항 입국 수속 하는데 한국인 통역이 분주하게 동분서주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나는 공항 직원 이야기를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입국 수속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애틀랜타 공항에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주재원 과장이었다.

난 그 과장이 갖고 온 랜트카 느낌이 나는 밴을 타고 애틀랜타 공항을 빠져나왔다.

자동차 창문 너머로 보이는 미국 땅…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나 화창한 것이다.

하늘이 너무나 푸르고 맑아서 구름이 정말 하얗게 보였다. 구름과 하늘의 경계가 너무나 선명한 그림 같은 하늘.

몽고메리 봄(3월) 하늘

‘한국에 가을 하늘보다 훨씬 푸르고 구름도 너무 하얀데..‘ 속으로 생각했다.


좀 피곤한 기색에 운전하던 과장은 어색한 침묵을 깨는 한마디를 던진다.

“과장님 미국은 처음이시죠? Welcome to USA! 하하. 배는 안 고프세요? 식사하셔야죠??”

“아.. 네, 네 배는 그렇게 안고픈데.. 벌써 식사 시간이네요..” 현지 시간으로 오후 12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애틀랜타 도심을 빠져나와 약간 한적한 곳에 한식당을 들어갔다.

“여기 순대국밥이 괜찮습니다. ” ‘미국 와서 첫 끼가 순대국밥일 줄이야..’

“네, 저도 순대국밥 좋아합니다.” 기분 탓인지 그 순대국밥은 팔팔 끓지 않는 그냥 김이 약간 모락모락 나는 순대랑, 고기랑, 고춧가루랑, 사골이랑 섞어놓은 국 맛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맛없었던 순대국밥이었다.


미국공장은 앨라배마주에 위치한 몽고메리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점심을 먹은 우리는 미국공장으로 출발하였다. 한 시간 정도 가니 공장에 도착했다. 최우선으로 공장에 최고 책임자인 법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공장 소개를 받았다. 법인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미국공장은 한국에 있는 공장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깨끗한 공장이었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우린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미국 숙소는 일명 아파트 회사에서 렌트하고 있는 곳이며, 출장 온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이다. 숙소는 중간에 호수를 갖고 있는 건물 10채 정도 있는 아파트 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원주택 촌 같은 분위기이다.

출장자들 숙소

미국 출장 시 묵었던 숙소.. 아파트라고 불린다.



그렇게 나의 첫 미국출장은 시작되었다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미국공장

미국 출장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침 6시 기상해서 아침 먹고 회사 출근하면 7시 30분 전 후에 도착했다.

미국 공장은 숙소에서 한 25km 떨어져 있지만 시간은 약 25분~30분 걸렸다.

교통 신호도 2번 정도 받고 차도 안 밀리니 거리는 25km 있어도 시간이 짧은 이유이다.

몽고메리 도로와 신호등


매일 7시 30분 출근, 오후 6시 퇴근.

퇴근하면 한국식당에서 소주와 맥주 그리고 한국 음식.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반복적인 출장자 루틴.

루틴은 지속되었다.


[플로리다 여행 사진들]

출장 온 지 한 달쯤 되어서야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겼다.

주말에 다른 출장자들과 플로리다로 여행을 갔다.

백색 모래에 플로리다 해변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아웃렛도 가서 쇼핑도 하였다.

일행 중에는 레스토랑에 웃는 모습이 이쁜 웨이트리스와 사진도 같이 찍었다.

짧기만 했던 플로리다 당일치기 여행, 우리는 아쉬움을 남긴 체 다시 또 출장자 루틴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같은 루틴 생활을 하니 이제 슬슬 집 생각이 날 때쯤이다.

그때 매주 토요일 근무했던 미국공장은 부활절을 맞아 3일 휴무를 했다.

드디어 기회다.

‘3일 휴무이면 좀 멀리 갈 수 있겠다.‘

이번 프로젝트 출장자들 총 7명 중에 이제 남아있는 사람은 두 명, 나와 생산기술팀 반장님이다.

우리 둘은 생각이 통했다. 미국 처음 왔는데 어디 좀 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

반장님은 우리나라에 교차로와 같은 지역 신문을 들고 와서 물었다. “황 과장 여기 어때?”

고등학교 때부터 여기 가고 싶었다고 했다.

반장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재즈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New Orleans’이다.

그곳에서 Jazz Festival 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반장님이 학창 시절 때부터 가보고 싶은 곳 뉴올리언스, 재즈의 고향.

놀라웠다.. 나는 들어 보지도 못한 재즈의 고향을 현장에 근무하시는 그것도 나랑 띠동갑 반장님이 가자고 한다.

도전과 모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나.

하지만, 몽고메리에서 편도 580km 떨어진 곳을 간다는 것이 약간 망설여지기는 했다.

솔직히 좀 두려웠다.


그렇게 우리의 New Orleans 모험은 시작되었다.


나는 뉴올리언스 어디로 가야 할지 인터넷 검색해 보았다.

’ 뉴올리언스 여행‘이라고 검색하니, 블로그에 정숙이 고모라는 분이 뉴올리언스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뉴올리언스 여행 간 한인이 많이 들렀다 간 곳이었다.

나는 블로그에 있는 정숙이 고모 카페 주소를 구글맵에 목적지로 하고 휴일 첫째 날 아침 출발했다.

뉴올리언스로…

4월이라 그렇게 덥지는 않았지만, 뙤약볕에 선팅이 안되어 있는 자동차 안은 뜨거웠다.

우리가 출장 가서 렌트한 자동차는 폭스바겐에 ’ 제타‘라는 준중형 세단이다.

미국출장에서 렌트한 렌트카

한국 자동차 브랜드 준중형 차보다 확실히 가속력이나 주행 성능은 한 단계 위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주행성능에 감탄한 시간은 잠시뿐였다.

자동차는 에어컨이 고장 나서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험난한 여행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왕복 1,200 km 가 넘는 우리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뉴올리언스로 가는 도로

미국은 50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하게 우리나라의 크기보다 50배가 넘는 것이다.

각 주마다 특색이 있다. 그리고 주에 경계에는 information Center라고 우리나라 휴게소 같은 곳이 있었다.

우리가 생활했던 Alabama 주에서 뉴올리언스에 가기 위해서는 Mississippi 주를 거쳐서 Louisiana 주까지 가야 한다. 중간에 Information Center를 두 번 거치고 가야 했다.

United States of America
Louisiana Information Center 앞에서


특히, Louisiana Information Center에서 우리는 구세주 같은 한 할머니를 만났다.


첫째, 어디서 왔나? 국적은? 영어는 잘하나?

둘째, 어디로 가려고 하나? 무슨 일 때문에?

셋째, 숙소는 어디로 정했나? 아는 호텔은 있나?

넷째, 아는 지인은 있나? 대사관 전화번호는 아는가?

다섯째, 무엇 때문에 가려고 하나? 며칠 동안 있을 것인가?


위에 질문에 답변을 띄엄띄엄 하니 할머니에 표정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Information Center를 떠날 때 우리 차를 가로막으며 대사관 연락처 유인물을 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한 6시간을 운전해서 정숙이 고모 카페에 도착했다. 하지만 문은 자물쇠로 잠겨 저 있었다. 카페도 우리 회사처럼 휴무일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반장님과 서로 허탈하게 마주 보다가 할머니가 준 유인물을 보았다. 한국대사관으로 전화했다.

“Hello. I’m from South Korea, I’m traveling to New Orleans now. Can you help me? I want to know safety Hotel in New Orleans…”

나는 유창하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오늘은 담당자가 부재중이라 자세한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한다.

뉴올리언스 한인회 연락처를 주겠다고 해서 받아 적었다. 하지만 거기도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까 Information Center에서 할머니가 꾸역꾸역 넣어 주신 다른 유인물을 찾아보았다. 그중에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뉴올리언스 주차 가능한 호텔 주소와 전화번호 리스트였다.


뉴올리언스는 시내 중앙에 있는 호텔 중에 주차가 되는 호텔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같이 멀리서 온 사람들은 주차가 가능한 호텔을 찾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 종이 제일 상단에 있는 호텔 주소를 목적지에 입력하고 다시 뉴올리언스 시내로 향했다. 예상시간 30분.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혹시 슬럼가로 가는 건 아닌가? 치안은 괜찮을까? 등 우리의 안전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낯선 곳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뉴올리언스 호텔, 호텔방에서 내려다 본 리무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은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평범했다. 우리는 호텔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호텔을 나섰다.

반장님이 학창 시절부터 가보고 싶어 했던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 그리고 마침 그때 Jazz Festivaㅣ 을 하다니… 꿈만 같았다. 우리는 무작정 호텔을 나와서 주변을 걸어 다녔다.

다행히 우리가 잡은 호텔은 Festival 이 열리는 골목 바로 옆이라 너무나 숙소를 잘 잡은 것이다. Information Center 할머니가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골목에서 분위기 좋을 것 같은 재즈카페를 찾았다.

한 시간 정도를 이런저런 사람 구경, 가게 구경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딱 저기다라는 생각이 드는 가게를 보았다.

뉴올리언스 째즈카페

가게 안에서 분위기 좋은 음악소리가 들려와서 우리는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메뉴판을 한참 들어다 보다가 익숙한 단어들이 보이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주문은 성공적이었다.

한참 갈증 나있는 우리는 한 모금에 감탄했다.

”너무 시원하고 맛있네. “

둘 다 똑같이 말했다.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 짓게 만드는 열대 과일 음료수에 알코올을 더한 달콤한 칵테일이었다.

우리는 칵테일에 감동하면서 또한 무대 위에 흑인 여자가수로 시선이 흐른다.

‘정말 잘 왔네’ 둘 다 같은 생각이었다. 재즈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중저음이 매력적인 무대 위에 여가수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다음날은 일찍 서둘렀다. 돌아갈 길이 멀다 보니 일찍 움직여야 조금이라도 더 보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뉴올리언스 Jazz Festival 퍼레이드도 보았다. 그리고 낯선 풍경에 취해 우리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뉴올리언스 & Jazz Festival

인력거 알바하는 아가씨 그리고 반장님과 나 뉴올리언스 거리


이틀간에 뉴올리언스 여행은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모험이었다. 놀라움에 연속이었다. 풍경, 사람, 문화에…

그리고 앞으로 인생에서도 도전하기 힘든 경험이다.

지금도 그때 그 용기에 감사한다.

우리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처음 가본 미국출장 우리는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에 가다.’


- 슬기로운 주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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