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성을 바라시나요?
배우고 싶은 마음
“1 더하기 1을 누가 못 가르쳐. 걱정하지 마.”
1학년 담임을 처음 맡은 내게 선배 교사가 응원 같은 위로를 해주셨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물방울 1개랑 1개는 합치면 1이에요!”
“방구는 한 번 뀌고 또 뀌어도 빵(0)인데요?”
“숫자가 점점 커지면 맨끝은 뭐예요?”
초등학교 1학년에게 세상은 신기한 것투성이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들은 매 순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어른만큼 힘껏 살고 있다.
“선생님, 친구한테 편지 쓸 건데 ‘안녕’ 어떻게 써요?”
“오징어 다리가 많아요? 낙지 다리가 많아요?”
“치타하고 매하고 경주하면 누가 더 빨라요?
아이들은 알고 싶은 게 많다. 끝이 없는 질문 속에 8세 나름의 치열한 고민이 느껴진다. 온통 물음표로 가득한 1학년과의 수업에서 내가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느냐’였다.
두서가 없는 것 같아도 수업 시간에 수많은 말들이 오가는 흐름에 핵심 내용이 용케 숨어 있다. 물론 그것을 수업으로 연결하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하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귀하게 여기기로 했다.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서로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해서 수업을 구상한다. 수업에 활용하는 소재는 1학년의 생활 그 자체다.
-매일 부르는 친구의 이름으로 자음 모음 소리 익히기
-방정환 선생님의 어른에게 드리는 글 따라 하기
-그림자의 진하기가 궁금하다는 친구의 질문에 답 찾기
-친구가 낸 덧셈과 뺄셈 문제 서로 해결하기
-마트에서 장보고 싶은 물품 고르면서 읽고 계산하기
-친구와 함께 놀이하며 1~100 숫자 띄어세기
-수학 비교 표현을 사용하여 문장 만들기
쓰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세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들을 1학년 교육과정 성취 기준에 맞게 담는다. 개개인의 학습 수준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모두의 참여를 유도하고 한 명 한 명 이 유의미하게 배울 수업을 세밀하게 준비한다.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한다. 아이들은 더 나은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을 모은다. 바로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과정에서 더 깊이 파고든다. 친구와 서로 가르쳐주면서 확실히 알게 되고 친구의 설명에서 더 잘 배운다. 이렇게 성취를 느낀 아이는 다음에도 또 해내고 싶어진다.
누구나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느리고 집중이 어려운 아이들도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 애를 쓰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때 어른의 역할은 아이의 그 불편한 시간을 줄여주는 거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아이들은 정말 빨리 배운다.
온전한 수업을 위해
사실, 수업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단순히 맞춤법이나 기호와 공식을 늦게 터득하는 아이가 아니다. 수업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닥만 쳐다보는 아이,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려 해서 하루 종일 연필을 잡지 않는 아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아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소리 지르는 아이,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 크게 울거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친구들을 두렵게 하는 아이들이다.
1학년이 필수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읽기·쓰기·셈하기 능력인 기초학력의 가장 밑바탕에 있어야 할 ‘무엇’이 빠져 있는 거다. 그것을 명명할 단어를 찾자면 ‘정서·행동’이 아닐까 싶다. 이 정서·행동 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수업은 시작도 못할 판이다.
1학년에서 소통 능력이 떨어지거나 적응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학습과 생활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과제를 해내지 못하거나 정서·행동의 불안정으로 수업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는 부정적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감을 잃게 되어 학교생활이 즐거울 리 없다. 수업 시간이 불편할 아이를 위해 어른들이 길을 터줘야 한다.
교사, 혹은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들은 자기 편의나 만족이 아닌 ‘아이의 성장’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부모님은 낳고 길러온 ‘내 아이’에 대해 잘 안다. 교사는 일 년간 지켜본 ‘아이들 속의 그 아이’를 잘 안다. 역할과 강점이 다른 서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채워주며 빈틈없이 지도하면 아이는 서서히 변한다.
학부모와의 공조
3월 초, 수업 내용을 따라오지 못해 불편함을 느낄 아이들의 학부모님께 협력을 요청했다. 네 분께서 이런 답을 주셨다.
“우리 애 스트레스 받지 않게 아무것도 시키지 마세요.”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 애가 부족함이 있더라도) 자녀가 성인이 되면 원하는 가게 등을 차려줄 것이니 지금 한글이든, 연산학습이든, 개별행동이든, 친구 관계든, 개선하려고 스트레스 주지 말고 아이가 하고 싶은 그대로 두라는 말이었다. 1학년 담임을 수년 맡으면서, 가장 어려운 학부모님 유형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나는 다시 설득했다.
“부모님의 그 결정, 훗날 아이가 원망하지는 않을까요?”
이 말에 학부모 두 분이 교사 의견에 따르겠다는 반응을 주셨다. 이후 한 분도 연락을 다시 해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셨다.
“신경 못 써준 게 미안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어요. 학교에 가면 문제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선생님 말씀 들으니 저도 아이가 걱정됩니다.”
“어머님, 아이는 분명 나아집니다. 약속드릴게요. 가정이 도와주셔야 아이의 불편함이 빨리 줄어듭니다.”
아이의 변화를 목표로 학부모들과의 공조가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받침이 뭉개져서 알아듣질 못하겠더라구요. 또박또박 책 읽기 연습을 한 달 동안 했는데 학교에선 어때요?”
“선생님 말씀대로 잘 정리된 방 사진을 붙여놓으니 그걸 보면서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해요.”
“욱하는 공격성이 쉽게 나아지질 않네요. 가족회의를 해서 결국 의사 선생님 제안대로 ADHD약을 먹어보기로 했어요. 친구들에게도 변화가 느껴져야 할 텐데. 선생님, 같이 살펴봐주세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진심을 전하니, 부모와 교사 사이를 가로막았던 벽도 조금은 허물어졌다. 아이를 바로 서게 하는 어른이라면 자리 정돈하기, 고마움과 미안함 표현하기, 바르게 대답하고 인사하기, 시간 약속 지키기와 같은 좋은 버릇을 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이야기를 편안하게 조잘대는 아이 곁에서, 아이가 더 여유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방향을 함께 찾아주는 거다. 학교를 위한 게 아니라, 아이의 삶을 위한 것이다.
1학년은 특히 뭔가 익숙치 않거나 두려울 때, 자신 없거나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쩌면 세상에 적응하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하지만 어른이 그걸 다 막아줄 수 없다. 스트레스를 이겨냄으로써 자신감이 생기고, 어려움에 부딪혀 가며 결국 해냈음을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 노력하는 자신을 도와줄 어른이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안정을 느낀다. 어른들의 인정과 믿음을 품은 아이는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다스리는 힘이 생긴다.
시간의 양보다 교감과 공감의 질
“인천에 가주세요.”
8년 전, 1학년 우리반에서 7명의 ‘부진 학생’ 중 가장 ‘부진’한 건이가 부탁했다. 입을 전혀 떼지 않던 건이는 기초학력 진단검사도 치를 수 없어 0점을 받았다. 학기 초부터 7월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더니 매일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선생 혼자서 묻고 답해온 끈질김에 감복했는지, 입을 뗀 첫마디가 전남에서 인천을 가자는 거였다. 이유를 알아야 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피를 토하듯 힘겹게 단어 더미를 내뱉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어머니가 집을 나간 2년 동안, 거의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이. 가까스로 통화를 한 후 어머니가 인천에 있다는 걸 안 모양이다. 아버지와 상담해보려고 했으나 연락이 되질 않아 무작정 건이를 따라가서 가정방문을 했다. 아버지도 말을 심하게 더듬는 장애가 있으신 것을 알게 되었다. 다문화, 장애, 한부모 가정. 건이가 그간 입을 떼지 않은 것은 도와달라는 신호였다.
나는 매일 1:1로 건이를 만나 부지런히 보충 지도를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사하고 내 물음에 답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소리 내어 읽고 고치는 것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계속해서 아이에게 언어 자극을 줬다. 마을에 사시는 돌봄 선생님과 협의하여 아침, 저녁, 주말, 방학 중 아이의 빈틈을 촘촘하게 채워주기 위해 같이 역할을 정했다.
군청에 요청해서 사회복지사, 행정담당자와 함께 아버님을 다시 만났다. 아버님에게도 상담과 교육이 필요했다. 아버님에게도 건이를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다. 딱 하나 부탁드렸다. 매일 저녁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버님 앞에서 이야기하라는 숙제를 낼 것인데 정성 들여 끝까지 들어주신 후에 꼭 한번 안아주시라고.
장문의 문자를 어머니에게도 남겼고 어렵게 통화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함께 흐느끼다가 끝났다. 울먹거리면서도 나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건이와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을 정해서 꼭 통화를 해주시라고.
군청, 교육지원청에 건이를 도울 지원 방법을 알아보고 신청했다. 2년 연속으로 담임을 맡아서 모든 일들이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이루어지도록 살피고, 독려하고, 응원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건이는 제법 굵어진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선생님, 저 밴드부에서 기타 쳐요.”
“엄마가 선생님한테 안부 전해달래요.”
“수학 50점 받았어요. 중간고사보다 점수가 올랐어요.”
여전히 건이의 기초학력은 부족한 수준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 속도대로 힘껏 크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 학교, 지자체, 교육청 모두가 ‘건이의 성장’이라는 한 방향을 바라봐준, 극히 드문 사례다.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변화는 쉽지 않았을 거고 누군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관건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건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엄마와 떨어져 있지만 건이가 정서적 안정을 되찾은 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양보다 공감과 교감의 질이 중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정서가 안정된 아이는 느려도 해내고자 하는 의지를 낸다. 정서가 안정되지 않으면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든 학습 자극을 튕겨낸다.
아이를 향한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기초학력 미달과 학습 부진이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왔음에도 여전히 문제다. 이런 아이들에 대해서는 ‘진단’을 강조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정한 성취 기준에 맞는 진단 도구 문제를 풀이하여 누적된 결과에 따라 제공되는 활동지들. 받침 단어에 오류가 많으면 집중연습하고,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에 오류가 많으면 비슷한 유형의 셈을 반복해 연습한다. 이 지도로 부진이 해소되면 정말 감사한 경우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기초를 익히지 못한 학생’에 대한 진단의 초점을 ‘익히지 못한 문제’에 두기보다 ‘익히지 못한 시기’, ‘익히지 못한 이유’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해줄 수 있다.
학교는 개별 맞춤형 지도와 따뜻한 상담을 기반으로, 힘을 합쳐줄 가정과의 소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꾸릴 시민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기초학력 정책은 교과학습 지원을 넘어서 심신이 건강한 미래세대를 키워내는 큰 그림 속에 진행되어야 한다.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초기에 예방할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지금은 모든 퍼즐이 한 칸씩 미뤄져 있는 느낌이다.
1학년의 배움은 다른 학년과 조금 다르다. 1학년에서의 좋은 학습 경험들이 쌓여 좋은 내재적 동기를 형성한다. 1학년 아이들은 자기 삶과 관련되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쏙쏙 빨아들인다. 그렇게 보면 1학년, 가르치기 절대 쉽지 않다.
여덟 살, 1학년의 온전한 학습을 위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의 발달과 삶, 안정을 우선하는 제도가 밑바탕이 되어 든든하게 받쳐주어야 하고, 교과 학습과 인성 지도를 학교에서 탄탄하게 책임져야 한다. 가정과 학교, 사회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쏟아지는 교육정책의 중심에는 정말 아이들이 있는가. 어른들의 편의나 만족은 아닐까. 사회는 저출산 위기에 대한 모든 짐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 기초학력을 다지는 일, 정말 학교만 잘하면 되는가. 교사인 나 혼자 이렇게 용을 써서 해결할 일인가. 오늘도 나만 심각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