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에선 희극이 될지도
W언니는 슬픔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려는 사람이었다. 런던에 머무는 때를 기록할 때에도 그 곳에서 많이 울었다는 이야길 먼저 썼다. 눈물이 지난 자리였지만 그 곳에 아직 자신의 방이 있는 듯 생각된다고 이어 썼다. 슬픔이 아니면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늘 힘들다 썼다.
인사이드아웃에 조이와 슬픔이가 있다면, 슬픔이가 키를 잡은 사람이었을 거다
"왜 이렇게 많이 힘들었을까..."
혹시 실례가 될까 주어를 빼고 슬픔의 이유를 물었을때 언니는
"인생이 원래 그런거겠지, 찰리채플린도 그렇게 얘기했잖아.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고 말했다.
언닌 그때 희극과 비극의 자리를 바꾸어썼다.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던 찰리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 썼으니까. 찰리채플린의 코미디를 볼 때는 웃지만 영화를 다 보면 씁쓸해졌었지.
언니의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자신도 남들처럼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지만
자신은 슬픔을 더 많이 적을 뿐이라고.
남들처럼 인스타그램엔 자랑할 일만 올리고
슬픔은 혼자서 삭이진 않을 뿐이라고.
언젠가 남편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기적으로 사는 게 본성인 인간이 자신을 해치고 죽게 만들기까지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텐데, 그 이유가 뭘까 고민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 하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말을 떠올리면서 언니의 슬픔에 안심했다. 힘들다, 슬프다, 울고있다 말하는 동안 언니의 친구들과 지인들은, 하물며 5년 전 잠깐 만났을 뿐인 나까지도 언니를 찾았고,
언니의 말을 들어줄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