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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Feb 28. 2024

따로 같이 함께

2021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보고 쓰기


안녕하세요, 독자님.

욱림솔훈의 유림입니다. 벌써 2월의 끝자락이네요. 

우리 언 몸을 서서히 녹이면서 봄을 맞이해보도록 해요.


이번 글은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2021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보고 욱림솔훈이 각자의 생각을 적어 내려 간 에세이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잠재성과 역량을 가진 작가들을 소개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올해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3월 31일까지 전시를 만나보실 수 있으니, 흥미가 있으시다면 올해의 전시도 만나보시길 추천드릴게요.


2023 올해의 작가상 전시


같은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각자의 속도로 전시를 보고 난 후 저희는 달이 뜰 때까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소개해드릴 4편의 에세이는 그날의 욱림솔훈 각자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은 대욱의 글로 시작할게요.



º 주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보고 쓰기


따로 같이 함께 | 대욱

관람 너머 | 유림 

빌린 하루 | 은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오. | 영훈 




따로 같이 함께


 네 명이서 오랜만에 전시를 보러 갔다. 전시를 보는 일은 즐겁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즐겁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은 꼭 둘을 합한 것만큼의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건 숫자와 숫자를 더해 나오는 단순한 수식이 아닌 알파벳과 한글의 자소처럼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영화나 음악처럼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일에는 자신만의 속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영화를 보러 갈 수는 있어도 전시를 같이 보러 가는 일은 쉽게 제안하지 않게 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품에 홀린 듯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가도 같이 보러 온 사람의 속도를 생각하며 일찍 발 빼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타인이 머무르고 있는 작품에 내가 흥미를 잃었어도 퇴장하지 않고 괜히 서성이게 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은 그 공간 안에 나와 그, 혹은 그들이 함께 있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다. 어떤 장면은 디테일이 없어도 된다. 어떤 어제는 어긋난 기억으로도 추억이 된다.


“I will disappear”


<올해의 작가상>의 첫 전시장에 들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테니스 라켓 같은 타원에 적힌 이 문장은 매우 큰 크기로 눈높이 위에 걸려 있는 데다가 핀 조명까지 더해져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라짐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순인 것 같아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흥미를 사라지게 했다. 전시장에 있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살펴보았고, 전시장을 나서며 한 번 더 이 작품을 올려다보고 퇴장했다. 이상하게도 전시장을 떠나고 나니 작품 속 문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큰 목소리와 존재감으로 겨우 사라진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니. 나는 전시를 보는 내내 이 문장을 생각했다. 전시가 끝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는 중간에도 잊을 만하면 생각하게 되곤 했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을 찾아 나선다기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갖지 않아도 돼.’ ‘너의 오늘도 사라질 거야,’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사라지게 될 거야,라는 어떤 시의 구절이 떠올랐고 이 작품도 사라지고 이 전시를 보러 온 우리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만들며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친구들에게 ‘오늘은 사라지게 될 거예요’ 같은 목소리를 건넬 수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전시를 보고 글을 쓰기로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이 망각을 거부하는 강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기록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글도 메일링 서비스도 이 모임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사라질 것이라 믿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함께 전시를 보았던 그날을 먼저 잊어버린대도 자책하지 않으며 내 차례가 먼저 다가왔다고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만이 아닌 모두가, 같이 함께하고 있음에도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사라짐을 믿으며 영원함에 맞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같은 전시를 보고 서로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해 글을 써 올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고 나는 이 글이 끝나고 다른 이들이 보내올 글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모르던, 내가 있던 그곳에 대해.



2022. 04. 05

<같이 전시를 보고 쓰기 - 따로 같이 함께>

대욱 쓰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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