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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Apr 03. 2024

수요일의 영화대담 1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나눈 욱림솔훈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유림입니다. 

거리를 걸으면 얼마 전까지 꽃망울에 그쳤던 벚꽃이 만개한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루 이틀사이에 피어버린 벚꽃이 대견하기도 하고 아쉽기고 한... 싱숭생숭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오늘 가져온 글은 욱림솔훈의 영화대담입니다.

저희가 고른 영화는 스티븐 달드리의 2008년 작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시대와 사랑, 그리고 그 속의 인간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영상미뿐만 아니라 내용측면에서도 이야기할 지점이 무척 많은 영화죠!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총 3부의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대담은 3주 동안 매주 수요일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댓글로 영화를 보고 느낀, 그리고 글을 읽으신 뒤 느낀 여러분의 감상도 남겨주시면 더 즐거운 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현장으로 가볼까요? 



º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나서


1편 | 전쟁과 사람과 사랑

2편 | 잊히지 않는 장면들 (4.10)

3편 | 창작이 가는 길에 따르는 이야기들 (4.17)


https://www.youtube.com/watch?v=8dDgQfXwK7M


글을 읽기 전에 영화 예고편을 감상하시면

대담을 읽는데 도움이 됩니다.  




욱림솔훈 영화 대담 1편

전쟁과 사람과 사랑



: 영화 초반에 한나와 마이클이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무슨 내용을 말하려는 영화일까 전혀 감을 못 잡았었는데… 


: 나도. 


: 감을 잡았을 때는 중간쯤이었던 것 같아. 그들이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는 장면부터. 그전 부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뒷 내용을 보고 나면 아,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 저는 길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그 둘의 관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가장 외로운 장면이잖아요. 


: 맞아요, 너무 슬퍼요. 


: 간극이 가장 크고, 슬프고… 어쩌면 그게 가장 클라이막스 같기도 해요. 영화를 1,2부로 나눈다면 앞부분에서 가장 절정인 장면. 


: 시간이 흐르고 법대생이 된 마이클이 법정에서 한나를 만나는 순간이 2부의 시작 같은 느낌이고요. 


: 민감할 수 있는 주제잖아요, 영화에서 하는 말이. 어렵고 민감한 주제를 둘의 이야기에 담아내면서 글을 읽지 못하는 여자와 글을 읽을 줄 아는 남자가 사랑을 하면서 밝혀지는 각자의 과거 이야기를 문학적인 요소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어요. 보면서 내내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 이야기가 실화는 아니겠지만…? 


: 실화는 아니고 소설 원작이라고 들었어요. 


: 그렇구나, 영화를 보면서 진짜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 영화 중간에 한나랑 마이클이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만난 식당 주인이 마이클에게 엄마랑 온 거냐는 질문을 했을 때, 순간 둘의 나이 차이를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체감하기로는 열 살 정도 같은데.  


: 거기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게 괜찮은 건가, 미성년자인데…? 


: 영화에서 보면 열다섯 살과 서른여섯 살이잖아요.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데. 


: 나중에 검색해 보고 나서 그게 세대 차이를 나타낸다는 걸 알았어요.


: 전후 세대잖아요. 전쟁을 모르는 사람과 전쟁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고요. 


: 세대로 바라본다면 책 읽어주는 장면이 더 슬프게 와닿는 게, 젊은 세대로부터 전쟁을 겪은 세대가 배워나가는 이야기 같기도 해요. 쇠퇴해 가는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로부터 배우는 장면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배워나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그 장면이 더 슬프게 와닿기도 했어요. 


: 그리고 마이클의 대학 친구가 어쩌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니까 더 격하게 비판하는 것 같았어요. 그 상황에 있지 않았고 끝난 뒤에 태어났으니까요. 그렇지만 한나는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기도 했잖아요. 그렇게 보면 ‘나는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나를 부역자라고 욕한다’라고 볼 수도 있고. 아마 그 부분에서 우리가 한나를 쉽게 비판할 수는 있어도 ‘너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라는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나 하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 같아요.


: 사랑과 글이 한나의 선택에 크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슬펐거든요. 테이프로 다 녹음을 해서 보내주잖아요. 그걸 받은 한나가 어떤 마음이었을지가 감히 상상이 안 되지만, 그래도 그 장면 이후에 그런 선택을 한 게 납득이 된다고 할까요.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자신이 법정에 서고 재판을 겪으면서 자신의 일을 담담히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 깨닫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것 같아요. 


: 아마 그게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관심을 갖지 않고 타자라고 생각했던 대상에 대해서는 죄책감 없이 행동하지만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니 그제야 내가 했던 행동이 얼마나 타인에게 상실을 겪게 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잖아요. 내 안의 세계에서 변화를 겪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한나가 나쁜 짓을 했다고 알고는 있지만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 것일 뿐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고요. 


: 한나는 재판 당시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모르잖아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말하고요. 한나의 죄가 있다면 모르는 것, 무지한 것이 죄인 거죠. 그런데 그게 그 무지가 개인의 잘못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개인의 무지가 역사적 맥락과 사회 속에서 구조적인 문제처럼 느껴졌어요.


: 그런 의미에서 그 대사가 너무 좋았거든요. 한나가 법정 앞에서 자신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우리는 경비원이었어요. 경비원은 수감자를 감시하는 사람이에요. 경비원은 수감자가 도망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맥락을 다 떠나 경비원이란 역할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잖아요. 그 순간에 내가 설득이 된 거예요. 맥락과 배경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인 걸 알지만 정말 당당히 말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 무지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무서운지 전달이 됐어요. 


: 악의 평범성이라거나, 기계적 중립은 방관이라는 말이 생각나요. 그런 의미에서 한나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점은 있고요. 저는 한나가 단죄를 받은 이유 중 하나가 자존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문맹임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다른 사람들이 법정에서 다 위증을 하잖아요. 한나가 다 시킨 일이고 그가 우두머리라고. 자신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자리에서 한나가 ‘나는 글을 모른다’라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한나는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죄의식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이 더 커서 평생 감옥에 갇히는 걸 택했을지도 모르고요. 나중에 글을 알고 난 뒤에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고 난 뒤에 한나는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밝히기 싫은 자존심만 알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죄의식을 느꼈을 것 같아요.  


: 저는 그 부분을 조금 다르게 보기도 했어요. 한나가 글을 모르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껴서 죄를 혼자 뒤집어쓰면서까지 문맹인 사실을 숨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제가 돌아본 한나의 대사 하나하나와 행동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의지적이고 결연하게 느껴져요. 특히 마지막에 마이클과 글을 깨우친 한나가 교도소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한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여전히 그것은 지난 일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거라고만 이야기하죠. 저는 어쩌면 한나가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의 틀에 대한 저항, 투항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도덕, 법이라는 것은 사회 안에서 합의된 체계이자 약속이잖아요. 그 체계는 그 시대 구성원들의 도덕 판단, 가치 판단으로 만들어지고요. 한나는 그런 판단으로부터 굉장히 벗어나 있는 인물이에요. 영화 초반에서도 마이클에게 어떤 행동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한나는 재판장에서도 마지막까지도 그 체계에 속하지 않기를, 길들여지지 않기를 택한 걸 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는 한나가 문맹인 것을 숨긴 것도, 감옥에 가게 되는 것도, 자살을 하게 되는 것도 한나 자신으로 살기 위한 의지가 담긴 행동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다고 한나가 죄의식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법 체계 바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속죄했던 거죠.



: 그런데 저도 한나의 죽음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부끄러움이나 사랑 같은 감정적 요소에 더해서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 살아야 하는데 자신이 이 세계와 너무 떨어져 있는 것 같고, 거기에 적응할 의지가 없어서 마지막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나는 글을 알게 되고 자신이 갈 수 있는 세계의 경계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이 있던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인지한 것 아닐까요.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한계에 끝까지 가두는 일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 그렇게 말하면 캐릭터대로 잘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나 자체가 주어진 일에 대해 그대로 실행하려고 하고 죄책감을 잘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잖아요. 그렇게 보면 그런(한나가 죽음을 선택하는) 태도도 결말을 직접 선택하게 되는 것 같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 주는 캐릭터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가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도피성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은 보내주는 테이프를 받아 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한나의 변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한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깨달음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사랑론자 같은데,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나중에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무력감 같은. 사랑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고 하는 순간을 한나가 느꼈을 것 같아요. 평화의 위대함, 아무리 거친 현실이라도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랑의 힘이 단단했던 한나라는 사람을 열어 버렸는데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한나는. 그 혼란스러운 순간에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아요. 


: 너무 신기해요. 유림이가 한나의 마지막 여정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아서 해석하는 걸 들으니까 저는 마지막에 갈수록 영화에 깔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예 잊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그 지점까지 갔을 때 한나와 마이클은 사랑이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나가 마이클을 ‘키드’라고 부르고, 둘이 편지를 주고받는 순간엔 사랑이나 미련 같은 감정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이클의 입장에서도 옛사랑을 간직한 느낌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어요. 


: 연인의 사랑이 아닌 그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애정이라고 봤어요. 저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때 사랑을 주고받았던 애정에 대한 지금의 사랑일 수도 있고요. 


: 저는 다들 말하는 걸 들으면서, 특히 영훈 씨나 은솔 씨의 말을 들을 때 이해가 명쾌하진 않았던 부분은 ‘그렇게 하면 한나라는 인물이 너무 못된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인간은 사회 안에서 살아갈 때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을 하고 살아가잖아요.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같은 세계 안에 있고 감정을 공유하고 하는 당연한 사실을 공유하면서요. 마이클과 한나가 책을 읽고 주고받고 있는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마이클은 한나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것을 기대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을 책망하는 순간에 한나가 부끄러움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되게 다르다. 


: 마이클은 한나와 자신의 사랑을 기억하면서도 그것만이 아닌, 한나가 감옥 안에서 반성을 했는지 보고 싶어 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연인이든 연인이 아니든 저는 그 둘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지만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마이클이 법정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거고요. 저는 이 영화의 결말이 위대함,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마이클이 딸과의 관계에서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결혼 생활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딸과의 관계에서도 마음을 닫아 두고 지내잖아요. 딸이 그 부분에 서운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영화의 마지막에 마이클이 한나의 무덤 앞에서 있는 장면이 나오고 딸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잖아요. 저는 그 순간이 마이클과 한나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실에선 이뤄지지 못했지만요. 


: 소름 돋았어요 지금. 


: 한나가 출소 전 마이클과 만났을 때 마이클은 한나의 반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을 하고, 한나는 그걸 깨달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나가 마이클을 만날 수 없어서 자살했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 같아요. 왜냐면 글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게 된 한나는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이클은 한나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거든요. 어쩌면 한나의 죽음으로 확인한, 그래서 완성되진 못했지만 적어도 둘의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을 맺었고 마이클은 과거에 매어 있던 사람이 현재로 조금씩 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한나가 사회 안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 사회가 자신의 세계가 아님을 깨닫고 도피한 것이 아닌 마이클에게,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으로 속죄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고 싶고요. 또 마지막에 마이클이 딸에게 자신의 과거와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깨달았다는 해석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둘이 결혼을 하고 연인이 되고 하는 것만이 아닌, 둘을 넘어선 순간이요. 한나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마이클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어쩌면 나는 그 관계를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알게 된 말인데, 자연재해로 10만 명이 죽은 일이 있다면 10만 명이 한 번에 죽은 것이 아닌 한 번의 죽음이 10만 번 일어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너무 비극적인 일 앞에서는 숫자에 압도되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은 그를 둘러싼 세계가 끊어지는 일이고 그 일이 몇백 번 몇천 번 일어나는 일이고요. 그걸 한나가 알게 되었을 때 저는 한나가 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음… 


: 그래서 마이클은 한나를 사랑하지만, 한나를 보러 가진 못했을 것 같아요. 마지막에 용기 내 갔을 때도 한나의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더욱 슬펐을 것 같고요. 이 영화의 결말은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둘 다 자신의 사랑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무리지었잖아요, 한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임을 다했고 마이클은 그 죽음을 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쏟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다른 단계로 나아가기로 하고요. 마이클이 한나에게 테이프를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어떻게 보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사람이 자신의 가정을 깨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현실을 살지 못하는 것이잖아요. 


: 저는 마이클이 테이프를 녹음해 보내는 것이 사랑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죄책감 같기도 했고요.  


: 한나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한나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바라보기만 하고요.  


: 저는 방금 말한, 영화 속에서 마이클이 한나에게 녹음테이프를 보내는 장면을 보고 각자가 생각하는 지점이 궁금했어요.



: 저는 마이클도 한나도 미성숙했다고 생각해요. 마이클은 한나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한나의 잘못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에 불편함도 느꼈을 거고 거리도 두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회피잖아요. 테이프를 보내는 건 그 사람을 위하는 것 같지만 마이클을 위한 방식이기도 하잖아요. 부역자에게 얼굴을 맞대지 않고 자신의 마음만 전할 수 있는 안전한 방식이니까요. 저는 그래서 마이클도 어쩌면 비겁하게,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한나도 그걸 받기만 하면서 마이클만 생각하게 되는 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생각은 크게 하지 않은 것 같고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둘이 반성을 하게 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될 텐데, 마이클은 어쩌면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어요. 변해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한나를 보러 갔는데 한나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 순간 더 화를 냈을 거고요. 내가 테이프에 담아 보낸 이야기를 단순히 듣고만 있으며 과거에 머무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기대에 대한 실망도 크니 책망도 하게 될 테고요. 마이클도 비겁하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비겁하게 살아가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 마이클이 테이프를 보내는 것도 보내는 거지만 한나가 답장을 하지 않잖아요. 둘의 소통 방식이 엇갈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 맞아요. 예전엔 집 앞에 몰래 꽃을 두고 가는 게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얼굴을 마주 볼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란 생각도 하고요. 딱 그만큼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이클은 한나와 딱 이 정도의 거리에서만, 지금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에만 머물러 있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마이클이 한나와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마이클이 자신 역시 한나를 보러 가고 싶을 수도 있지만, 한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 사랑이든 미련이든 감정을 이어지게 할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만 보내고, 한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며 자신에게 벌을 내리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 마이클과 한나의 행동에 다양한 이유가 얽히고설켜 있는 것 같아요. 


: 그래서 저는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각자만의 답이라고 생각해요. 유림 씨는 어떻게 보셨나요. 


: 저는 영화를 보면서, 그걸 다시 보낼 생각을 하다니… 하면서 마이클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모른 척해도 될 텐데.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가 N 번 방 사건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자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라서, 그때의 현실과 겹쳐봤던 것 같아요. 만약 나는 둘과 같은 상황이라면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저는 둘을 연결하는 테이프를 여러 번 생각했는데요. 상대방이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까지 까발려진 상태에서도 마이클이 테이프를 보낼 정도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둘의 관계에서 인상적이었어요. 한나도 편지를 보내는 것이, 서로 닿지 않는 소통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글을 배워서 편지를 배우는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한나가 한 발 더 나아간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감옥 안에서의 마음은 단순히 마이클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이 기쁘다,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예전에는 몰랐던 글을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2부에 계속)


<영화 대담 1편 - 전쟁과 사람과 사랑>

욱림솔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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