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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림솔훈 Apr 10. 2024

수요일의 영화대담 2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나눈 욱림솔훈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유림입니다. 

다들 소중한 한표는 잘 행사하고 오셨나요? 저는 저번주 주말에 사전투표를 하고 휴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영화대담을 정리하면서 한 사람, 한 나라, 한 시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나의 선택이 이 나라에 이 시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주인공 한나처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수요일, 욱림솔훈의 영화대담 2부를 마저 들려드릴게요.






º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나서


1편 | 전쟁과 사람과 사랑

2편 | 잊히지 않는 장면들

3편 | 창작이 가는 길에 따르는 이야기들 



https://www.youtube.com/watch?v=8dDgQfXwK7M

글을 읽기 전에 영화 예고편을 감상하시면

대담을 읽는데 도움이 됩니다.  



욱림솔훈 영화 대담 2편

잊히지 않는 장면들



: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뭐였나요? 왜냐면 다 다를 것 같았어요. 


: 저는 아까 말했던, 좋다기보다는 뇌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한나가 자신의 직무를 설명하던 모습이에요. 너무 이해가 되어서요. 경비라는 직무는 그런 거고 일만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 그 무지함을 표현하는 대사와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못 배웠다고 불려지는 사람들을 조금 이해하게 됐어요. 진짜 못 배우고 무지하다는 건, 저게 저 사람 세상의 끝일 수 있구나. 그 이후를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없기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하는 거구나. 그 무지함에 대한 무게를 깨닫게 된 장면이라서 기억에 남아요. 


: 대욱이 형은요? 


: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데, 마이클이 대학교에 가서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랑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내잖아요. 그리고 마이클이 여자의 방을 나오는데 그 장면이 인상 깊어요. 어쩌면 마이클 또한 용기가 없고 나약한 사람이고 어쩌면 그게 마이클이 살아온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법정에서 한나를 봤지만 아는 척 하지 않았고 뒤에서 지켜만 보고, 또 그렇게 관계를 맺지만 책임지지 않고 나오고, 가정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한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실패한 거잖아요. 테이프를 녹음하면서 또 만나러 가지는 않고, 딸과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의 마음은 소통할 수 없는. 그런 어떤 나약함이 인상적이에요.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그런 나약한 한 명의 인간이었던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최대치를 보여주려고 하잖아요. 마음을 열고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서. 그 과정에 가기까지가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맥락에서 나도 그런 나약함이 있지 않았나. 쉽게 도망치는. 생각해 보면 그때도 있었잖아요. 마이클이 어린 시절에 호수에서 다이빙하지 않고 도망가고,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 생각해 보면 영상에서 마이클의 뒷모습이 많이 잡혔던 것 같아요. 뛰어가는 뒷모습. 


: 이 자리를 두고 도망가는 듯한. 


: 그런 마이클의 모습을 영화 첫 장면에서도 느꼈어요. 마이클이 먼저 달걀을 먹고, 집에 있던 여자한테 에그 홀더에 달걀을 준비해주는데, 여자가 나랑 같이 먹는 거 아니었어?라고 물어보잖아요. 마이클이 네가 자고 있으니까, 너랑 먹을 생각 없으면 이렇게 안 만들었겠지라고 말하죠. 그것도 배려 같은데 사실은 벽을 두는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 관계에서 항상 한 발을 빼놓는, 그런 사람이 이제 한나와의 관계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으니까. 


: 맞아요. 


: 저는 한나만을 사랑했다고 생각하거든요. 


: 너무 슬프다. 


: 마이클의 딸이 마이클한테 아빠가 나랑 멀어지는 게 내 탓인 줄 알았어, 라고 말하니까 마이클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내가 마음을 못 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되게 슬펐어. 


: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야기를 해줄게, 하고 끝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결말이 되게 좋았어요. 과거에만 살던 사람이 사랑을 통해서 배운.

: 인상 깊었던 건 한나 역할의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였어요. 첫 이미지가 되게 딱딱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둘이 사랑을 할 때는 풀어지는 느낌도 주고, 그렇게 쌓아온 이미지들이 법정에 선 한나를 본 순간 충격과 함께 그래서 그런 태도였을까, 하는 이해의 실마리를 주는 것 같아요. 마지막 선택까지도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납득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캐릭터의 모든 행동들이 유려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 그리고 둘만 있을 때는 꼭 로맨스 소설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흔히 말하는 갭모에라고 하잖아요. 


: 맞아요 맞아요. 


: 아마 둘 다 서로만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다른 세상에 맘을 못 열고.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다가... 


: 처음에 그 배우(케이트 윈슬렛)가 타이타닉의 배우인 줄 몰랐어. 원래도 배우 얼굴을 잘 못 알아보기도 하는데, 이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못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연기가 너무 인상 깊었다는 게 공감이 돼. 


: 저는 이 남자배우(랄프 파인즈)가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의 그 배운지 몰랐어요.  


: 나도. 


: 저는 한나가 한 말들이나 행동이 인상 깊었어요. 좋았던 게 마이클이랑 소리 지르며 싸우다가 사과할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거랑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한나가 별말 없이 책을 툭 내려놓는데 그 책의 제목이 ‘전쟁과 평화’였던 거였어요. 그리고 둘이 초반에 사랑을 나누고 나서 마이클이 한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한나가 이름을 왜 물어봐 이런 반응이었던 게 기억나요. 그게 경계의 의미라기보다 진짜 도대체 이름을 왜 물어보는 거야? 그게 왜 중요한데? 같은 반응이라 기억에 남고, 마이클이 내 이름은 마이클이야, 라고 하니까 한나가 내가 마이클이랑 있구나, 하고 말하는 것도 인상 깊었어요. 또 둘이서 자전거 여행 떠날 때도 마이클은 자꾸만 어디갈지 알려주려 하고, 한나는 모르고 가고 싶다고 말하던 것들. 저는 그렇게 한나가 툭툭 던졌던 말들을 종합해 보면서 영화를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한나에게 몰입하면서요. 그런데 대욱이 형은 주로 마이클에 이입해서 본 것 같아서 대화가 새롭게 느껴졌어요. 자전거 여행 가서 마이클이 시를 쓰는 동안 한나는 햇살 아래 물에서 수영하는 장면도 좋았는데 그게 마이클과 한나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어요. 나중에 한나가 사라지고 나서 마이클이 한나의 집에 가서 빈 공간에 누워서 공허하게 있다가 옷을 벗고 물에 빠져서 떠있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한나가 수영하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마이클의 그 행동이 한나를 이해해 보려던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들을 다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그 후에 반전을 주니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것 같아요. 


: 저는 그런 면에서 한나가 마이클의 기대와는 달리 끝까지 부끄러움을 안 느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잖아요. 아이들은 아직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들이고요. 한나는 죽기 전에 마이클과 면담할 때도 여전히 내가 읽는 것보다 누가 읽어주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봤어요. 책을 읽는 건 글을 쓴 사람의 이야기를 문자를 통해 만나는 거라면,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듣는 건 글을 모르고도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는 거니까 더 원초적인 소통 방식이 아닐까? 한나는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한나가 글을 배우는 게 어떻게 보면 되게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모순적인 행동은 마이클이 테이프를 보냈기 때문에 하게 된 거고요. 한나는 사실 감옥에 가기 전에도 글을 배우려면 배울 수 있었는데, 배우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나는 마이클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야기를 접하고 이야기에 대해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때로는 그러면 안 된다며 화를 내기도 하죠. 그게 한나가 이야기와 소통하는 방식이고요.


: 저는 그런 의미에서 한나는 3단계로 변화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스로 글을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 변하게 된 계기는 결국 마이클이 보낸 그 음성 녹음이 작용을 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음성 녹음을 받았을 때 변한 한나와 마지막에 마이클이 찾아와 뭘 느꼈는지 물어보고 난 후의 한나는 또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처음에 한나는 무지한 채로 살았고 음성 녹음을 듣고 글을 배우려고 하면서 균열이 생긴 거고, 마지막에 찾아와서 던진 질문에 자신의 대답을 했는데 마이클의 반응이 한나가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었고, 그 이후에 한나가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이 인물이 죽음까지 가게 되지 않았을까.


: 영훈씨의 얘기를 듣고 저는 반대로 생각한 게,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건 한 세계를 직접 보는 거잖아요. 타인이 읽어주는 세계에 기대는 건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은 아니잖아요. 나는 이 글의 내용을 모르고 타인이 들려주는 내용만 받는 건 타인이 오독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 자체가 없거나, 무력해지는 소통이잖아요. 순수하거나 어쩌면 무지하거나. 저는 한나가 그런 방식으로 세계와, 마이클과 소통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문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과 해석이 들어가잖아요. 저는 한나가 그런 세계로 들어오기 위해 글을 배우려고 했다기보다는 글을 공부하는 것이 마이클의 사랑에 응답하기 위한 행위였지만 그 응답의 방식이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기에 마이클이 한나에게 더 실망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테이프를 보내고 했던 일에 대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물었을 때, 마이클은 단순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걸 바랬을 텐데 그러지 않은 한나에 대한 실망이 컸다고 생각해요. 감옥은 반성하고 죗값을 치르는 곳인데도요. 그리고 그 면회가 끝나고 나서야 한나는 자신이 한 일에 참회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인이 읽어주는 세계는 무조건적인 수용만 있을 뿐이고 자신의 해석은 없잖아요. 그래서 제목이 <더 리더>가 아닐까 해요. 읽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해석이 수반되는 것이고 듣는 존재에서 생각하는 존재로 넘어갔을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앞에서 얘기했듯 문자와 법의 세계는 규칙이잖아요. 그걸 모르고 살아도 되었던 사람이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한나가 깨달았기 때문에 자살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화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회에 대한 책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나는 누구이고 어떤 위치에 있고 또 그로 인한 책임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 부분이 영화가 가진 윤리적인 물음이자, 쉽게 두 인물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 저는 한나가 글을 배움으로써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보다 잘 인지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도덕 판단은 끝까지 내리지 않으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법이라는 세계 안에서는 잘잘못의 기준이 있지만 한나는 법이란 관점 자체를 벗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언어의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고, 그 언어를 통해 만들어진 게 법이라 생각하는데 한나는 그런 걸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한나의 자살도 법 바깥에서의 정언 명령 같은 거죠. 사회 속에서 정해진 윤리라기보다 자신의 절대적인 양심에 따른 행동이요. 한나와 마이클이 정말 다르다고 느꼈던 지점이 교도소에서 만나 둘이 얘기를 하는데 옛날 생각 좀 해봤어?라는 마이클의 물음에 한나가 순수한 얼굴로... 


: 둘만의 세계를 이야기하잖아요. 


: 네 맞아요. 둘만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마이클에게 손을 내밀더라고요, 말 대신에. 한나는 끝까지 어른이 된 마이클에게 ‘키드(kid)’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건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위계질서가 전복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규제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한나는 그 세계에 속한 마이클 너머에 있는 인물이고 마이클을 끝까지 키드라고 부르는 것도 언어가 가지는 권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 마이클은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로 나가고 있는데 한나는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까 둘의 길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영훈씨가 말한 ‘키드'라는 호칭에서도 그렇고요. 그렇다면 달라지는 길 앞에서 거부 혹은 참회가 섞인 게 한나의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 원작 소설에서는 한나가 감옥에서 마이클에게 수용소에 관한 소설들을 더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한나는 자신의 행위와 과거에 대해 알아갈 의지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자신이 감옥에서 읽었던 책을 쌓아두고 자살을 하는 장면이… 그것도 자신만의 표현으로도 느껴져요.


: 상징적이죠. 그 선택까지 도착하게 된 이유가 책들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계단을 밟아가듯이.


: 최근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프로파일러가 범죄자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꼭 물어보는데, 마이클이 질문했던 게 떠오르는 거예요. 이 둘의 공통점이 뭘까 생각해 보니까, 한나도 공감 능력의 부재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필요한 순간에 휘발되어 버리는 공감 능력이. 아무리 시키는 일지만 그렇게 책을 읽어줬던 아이들을 가스실로 보낼 수 있는, 그런 선택을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분명 법과 체계가 필요하지만...


: 사랑이 제일 필요하겠죠. 


: 그렇죠. 타인에 대한 사랑이 보이지 않았던 점이 한나랑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들이랑 비슷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나는 참회에 도달했다는 점. 그게 한나와 그들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한나의 죽음으로 마이클도 깨달은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죄 밖에 있는 사람이 죄가 있는 사람에게 쉽게 뭐라고 할 수 있잖아요. 나는 내 나름의 책임을 다했고, 깨닫지 못한 한나에 대한 책망을 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의 죽음을 볼 때 마이클이 한나의 죽음에 책임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자기가 죽인 거잖아요. 한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였듯. 마이클도 한나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한나가 자신을 기다린 걸 알면서도 기계적인 잣대로 한나를 대하잖아요. 저는 그게 똑같다고 생각해요. 


: 저도요.  


: 그래서 마이클이 변화하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죽음을 통해서 마음을 닫아버리는 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잖아요. 저는 그게 한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이클의 최선의 사랑이 아닐까 싶었어요. 마이클은 사랑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그런 의미로서의 성숙이 무덤 앞에서 일어난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한나가 마이클과의 미래로 같이 가지 못한 게 아닐까 해요. 출소 이후에 그런 세계로 넘어가기에는 자신의 죄가 너무 많으니. 그 선택이 또 어쩌면 한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사람의 감정은 여러 갈래니까요. 마이클이 그걸 알고 더 슬펐을 거 같기도 해요. 


: 어쩌면 마이클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게... 


: 엄청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거 같아요. 


: 그리고 이런 걸 단편적으로 보지 않을 나이에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어렸을 때 봤으면 한나가 나쁘다, 마이클이 나쁘다 이렇게 쉽게 판단했을 것 같아요.


: 이 영화로 논문이나 평론이 되게 많더라구요. 


: 여러 관점으로 풀 수 있는 영화기도 하고요. 


: 영화 자체로도 너무 잘 만들었고요. 


: 맞아요. 영상미도 너무 예쁘고.  


: 저는 마이클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찾아가서 한나가 모은 돈을 건네줄 때 인상 깊었는데, 종종 사람들이 캠프(수용소)에서 뭘 배웠냐고 물어보면, 요양소도 대학도 아니고 우리는 뭘 배우러 그곳에 간 게 아니라는 대사가 인상깊었어요. 절대 한 방울도 미화할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는 장면이라서 한나가 모은 돈도 끝까지 받지 않고 마이클이 알아서 처분하라고 하는 그런 장면이 꼭 들어가서 다행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 한나에게만 이입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고 생각했어. 한나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한 번 더 짚어주는. 


: 그 장면에서 수용소 생존자가 돈은 받지 않지만 돈이 들어있는 차통은 받잖아요. 강아지 털이나 가족과 본 오페라 티켓 같은 걸 보관하는, 감성적인 것들이 담겨있는 통이라고 말하면서요. 그러면서 차통 안에 든 것보다는 차통 자체가 목적이 된다고도 하죠. 저는 그 장면이 우리의 삶에서 한나의 죄는 용서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음을 말함과 동시에,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그런 감성적인 것들을 담아둘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가지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3부에 계속)


2022. 04. 15

<영화 대담 2편 - 잊히지 않는 장면들>

욱림솔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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