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욱림솔훈 Jul 03. 2024

미래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미래에 대해서 | 유림


안녕하세요, 유림입니다.

7월의 초입에서 인사드립니다. 저에게 여름은 미래를 생각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푸른 잎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는 모습이 저에게도 희망을 주거든요. 너도 할 수 있어! 그러면 봄에는 씨앗처럼 움츠렸던 생각들이 여름의 생명력에 잇따라 쑥쑥 자랍니다. 


이렇게 희망찬 계절에 전해드릴 글은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로 이루어진 시간 3부작의 마지막 주제인 <미래에 대해서>입니다. 우리 같이 미래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볼까요?


º 주제: 미래에 대해서


미래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 유림

도착한 바람 | 영훈

공원 산책 | 대욱

느낄 수 있는 | 은솔 






미래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비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난다.  국립 현대 미술관이 체험학습 목적지였고, 우리 중학교의 모든 2학년들은 다 같이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왕 버스를 탔으니 바다를 보고 싶다고 친구들이 말했다. 솔직히 미술관은 재미없다고 키득거렸다. 국립 현대 미술관의 마스코트인 아- 소리를 내는 거대하고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동상 앞에서 선생님은 양 떼를 풀듯 우리를 방목했다. 그림이나 글을 써오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우선 잔디밭으로 달려가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멀리서 양철 동상의 아-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는 그 소리를 따라 하며 수건돌리기를 했다. 등 뒤로 떨 어지는 손수건의 기척을 느끼려 애쓰며, 원형으로 앉아있는 우리의 가장자리를 달리는 술래의 손이 비었는지 확인하며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몇 바퀴를 돌던 술래가 내 뒤에 손수건을 소리 없이 떨어트렸고, 나는 술래가 반 바퀴를 돌아 나를 보며 씩 웃는 순간까지도 내 뒤에 떨어진 손수건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보처럼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일어나 뛰었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도록 뛰어보았으나 이미 내 자리는 없어진 후였다. 허망하게 그 친구를 내려다보자 친구는 키득키득 웃으며 빨리 뛰라고 나를 재촉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가로지르며 열 몇 명의 친구들을 빙 둘러 뛰는 동안 생각했다. 억울해. 내려다보이는 동그란 뒤통수들이 왠지 얄미웠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술래가 되고, 다음 술래를 잡을 때까지 뛰어야 하는구나.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예상할 수 없구나. 뛰는 게 싫어서 이를 악물고 다음 타깃을 찾았다. 재빨리 손수건을 놓고 나를 뒤쫓는 친구를 피해 힘껏 달렸다. 웃음이 기침처럼 터졌다. 모두 같이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노느라 백일장을 잊어버린 나는 제출하기 직전에야 그날 있었던 일을 짧게 뭉뚱그려서 적어냈다. 술래잡기, 빈자리, 반 바퀴 의 거리. 언제나 좁혀지지 않는. 그런 것들을.


그 글을 내고 나서 며칠 뒤, 국어선생님께 불려갔다. 너무 대충 써서 화가 나셨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심부름이 아닌 일로 교무실에 불려가는 일은 처음이라 가슴이 쿵쾅거렸다. 시험문제 출제 중이니 문을 함부로 열지 마시오,라고 적혀있는 문구를 무척이나 따르고 싶었으나, 결국 문을 열고 국어선생님 자리로 주뼛주뼛 다가갔다. 국어 선생님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분이셨다. 특히 방과 후 독서수업에서 애들에게 직접 낭독을 시키며 연기를 하도록 하거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등 재밌는 수업방식으로 유명했다. 직접 대화를 해본 건 처음이라 나는 무서운 동시에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조금 설렜다.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별말 없이 책을 하나 건네주셨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당황해서 '저 주시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그래, 다음 백일장 때 기대할게.'라고 하셨다. 의외의 대답에 놀라 멍하니 서있자 선생님은 큭큭 웃으시며 빨리 반으로 돌아가라고 손을 흔드셨다. 안경 너머로 주름 진 선생님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손수건이 내 등 뒤로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교무실을 나오는 내 손에 들린 책은,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그 뒤로 선생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나는 선생님을 쫓았다.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윤동주가 되었으며, 도서 실에서 방과 후 교실을 하는 선생님을 보러 일부러 도서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리고 항상 볕이 잘 드는 세 번째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 말을 하셨다고 한다. 재작년쯤, 도서부를 하던 친구와 작은 동창회 자리에서 만났을 때,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라 그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라며 뿌듯한 얼굴로 말하자 그 친구도 그 말을 들었다며 웃었다. 어쩐지 부풀어 올랐던 빵이 손끝 한 번에 푹 식어버린 것 같았다. 나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니구나, 나뿐만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럼 어떤가. 나에게만 하신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진심은 아주 많을 수도 있는 거니까.  만약 그때 알았다면 조금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알게 되어서 다행이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둥글게 앉은 우리들의 뒤로 천천히 뛰어 손수건을 떨어트리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손수건을 떨어트린 아이들은 커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 도서부 친구는 꾸준히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기고 있었고 나도 글과 책을 여전히 좋아했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손수건이 바닥에 닿는 순간 알아챈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뛰었다. 숨이 넘어갈 듯 헥헥대고,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웃었다. 내가 본 친구들의 모습이 그랬다. 나도 그랬다. 


어떤 손수건 돌리기는 내가 술래인 채로 계속되기도 한다. 억울해 하며 고개를 돌려도 얄미운 뒤통수들뿐. 그 사이를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내 숨에 내가 버거워질 때, 고개를 돌린다. 내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주 멀리서 천천히 뛰고 계신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나에게 손수건을 떨어트려준 사람들의 뒷모습이 이어진다. 어떤 작가와, 어떤 가수와, 어떤 디자이너와 나의 사람들. 숨을 한번 크게 쉰다.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목이 탄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힘들지 않다.



2022. 06. 08

<미래에 대해서 - 미래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유림 쓰고 드림















작가의 이전글 Wherever you ar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