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흑흑 Oct 11. 2024

흩뿌려진 사람들을 찾아서, ‘파친코 시즌 2’

©애플티비+

 2022년, 애플티비에서 공개된 이후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던 ‘파친코’가 시즌 2로 돌아왔다. ‘파친코’는 김선자(김민하, 윤여정)’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재일 한국인삶을 다루는 드라마이자,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파친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다. 시즌 1, 1910년대 부산 영도에서 선자가 태어난다. 선자는 17살이 되어 생선중개상 고한수(이민호)’사랑에 빠지지만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자신의 첩으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한수의 손을 뿌리친 선자는 전도사 백이삭(노상현)’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오사카로 건너가 살게 된다.

 1980년대, 현재에서는 선자의 후손인 솔로몬(진하)’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솔로몬은 승진에서 밀리자 회사 간부들에게 자신이 호텔 부지 매입을 성공시키겠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땅 주인 할머니가 본인과 같은 재일 한국인이기에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끝내 계약에 실패한다. 

 시즌 1은 과거의 타임라인에서는 이삭이 감옥에 끌려가는 것으로, 현재의 타임라인에서는 선자가 첫째 아들 노아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하여

 파친코’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게 된 디아스포라(diaspora)의 정체성이 이민지에서의 경험에 의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 준다. ‘파친코’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애플티비+

 선자(2대)는 자식들에게도 늘 조선 사람인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선자에게 조선, 특히 부산 영도는 자신의 고향이자 천국이다. 영도에서 선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으며, 이러한 보살핌 덕에 선자는 당차고 자부심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한수의 모욕을 듣고 그에게 분노하며 그를 거절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덕분이다).

 한수(2대)는 조선인도 일본인도 다 제치고 앞서가야 한다고 말하며, 이는 본인의 생존방식과 일치한다. 간토대학살을 눈앞에서 목도한 한수는 누구보다 한 발 앞서 자신의 쓸모 있음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자와 한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노아(3대)는 자신이 집안을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인물이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 싫어 결국은 그 정체성을 버리고 가족을 떠나게 된다. 반면 선자와 이삭 사이의 아들 모자수(3대)는 그 무엇보다 돈을 잘 벌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 사는 조선인으로서 파친코 사업을 운영하고 점점 확장해 나간다. 모자수는 이삭의 친아들이지만 한수를 더 닮아 있는 것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모자수의 아들이자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4대)은 가장 모호한 인물이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니며 어디에서나 이방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모호성을 잘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땅 주인과 계약을 할 때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원할 때 이용하고, 필요할 때 갈아 끼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솔로몬도 어느 쪽에서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다. 솔로몬은 선자의 서툰 일본어를 무시하는 빵집 주인에게 “당신은 우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서, 솔로몬 역시 그로 인한 고뇌와 갈등을 눌러 담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자와 솔로몬

 과거와 현재, 두 개의 타임라인이 섞인 채 이야기가 흘러가는 비선형적 이야기 구조를 택한 ‘파친코’는 선자와 솔로몬의 갈등보여 준다.

©애플티비+

 선자는 생존하는 것조차 힘겨운 시대를 버티며 살아왔기 때문에 비교적 편한 시대를 사는 것 같은 솔로몬을 이해하지 못한다. 솔로몬은 더 이상 “할매를 불쌍해하면서 살 수 없다”라고 말한다. 결국 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자도 솔로몬도 이국 땅에서 자기 존재를 지키거나 증명해야 하는 인물들일 뿐이다. 선자는 결혼 후 일본으로 건너가 김치를 팔며 생계를 이어야 했다. 솔로몬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성과로써 증명해야 한다. 선자와 솔로몬은 결국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파친코가 선자의 부모부터 손자까지, 4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보여 주고 있기에 세대의 구분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선자와 솔로몬 모두 가지 끝에 걸린 인물들에 더 가깝다.



선자와 한수, 이삭

 선자와 한수의 관계, 선자와 이삭의 관계가 극명히 차이 난다는 점도 재미있는 요소다.  차이의 근간에는 한수와 이삭이 분명히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이유가 자리한다.

©애플티비+

 한수는 아버지가 돈 때문에 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목도했으며, 아버지로부터 “(아비를) 죽이고, 지우고 살라”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미국인 집안의 아들에게 과외를 해 주며 함께 미국에 갈 꿈을 키우고 있었지만, 이 꿈은 관동대지진을 겪으며 좌절된다. 관동대지진 이후 아버지를 잃은 한수는 지금의 장인을 따라 야쿠자에 몸을 담게 된다. 그의 생존 방식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는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지름길을 택해야 하는 삶, 이것이 바로 일본에 사는 조선인으로서 한수가 택해야 했던 삶의 모습이다.

 시즌 1에서 한수가 유부남인 것을 알게 된 선자가 그에게 화를 내자, 한수는 선자를 모욕한다. 이로써 한수는 선자의 마음에서 아예 배제되어 버렸지만, 그는 선자와 그의 가족을 내내 지켜보며 뒤에서 도와준다.

 누군가는 한수의 방식을 두고 ‘집착광공(...)’의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이다. 한수가 선자의 생명력을 보고 반한 것은 맞지만 결국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나 소유욕에 가까운 느낌이다(“선자와 노아는 내 거니까.”) 한수에게 선자는, 결코 자신을 택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는 선자가 결코 반쪽짜리로 살지 않는 인물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한수가 선자에게 더 집착한다고 생각한다.

 한수의 집착은 자신의 핏줄인 노아에게도 향한다. 하지만 선자에게 거부당한 분노를 폭력으로 푸는 한수를 노아가 지켜보는 장면에서, 우리는 노아가 절대 한수를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애플티비+

 이삭은 이전까지는 하인을 거느리고 살았던 병약한 도련님이었지만, 현재는 형 요셉과 함께 녹록치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삭은 ‘파친코’ 속 남자들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남자처럼 보인다. 이삭은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선자를 살려내고, 선자를 아내로서 존중하며 사랑한다.

 하지만 이삭은 한수의 말처럼 몽상가다. 이삭은 목사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가르치다가 공산주의자로 밀고를 당해 감옥에 갇하게 된다(다만 원작에서 이삭이 감옥에 갇히는 이유는 드라마와 다르다). 7년 동안 옥살이를 한 이삭은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죽음을 앞둔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한수가 노아에게 모두를 앞지르라며 지름길로 가라고 말할 때, 이삭은 노아에게 길을 돌아가더라도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 이삭은 우리 자식들에게는 자기 몸의 윤곽을 알고 당당히, 재량껏 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몸의 윤곽이란 무엇일까? 몸, 즉 신체란 정신의 표상이다. 몸은 자신의 바탕이 된다. 자기 몸의 윤곽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을 말한다.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몸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 것이다.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이삭이 선자의 남편이자 노아와 모자수의 아버지로서, 선자가 떳떳한 선택을 하며 살도록 도운 인물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삭이 그런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는 종교적 인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저는 종교를 잘 모릅니다).



선자와 노아

©애플티비+

 시즌 1에서, 노년 선자는 모자수와의 대화를 통해 노아의 결말을 암시한다. 시즌 1의 과거 타임라인에는 존재하는 노아가 현재 타임라인에서는 한 순간도 등장하지 않아 의구심을 품었을 시청자들은, 이 대목에서 노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노아는 한수의 핏줄이지만, 노아가 아버지로 인정하는 건 언제나 이삭이다. 노아는 “자비는 선물도 권력도 아니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밀고한 후 목사를 용서하는 이삭을 보고 자랐다. 이삭의 영향으로 노아는 학교를 다닐 때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용서하기도 하고, 대학에 도전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자신은 동네를 떠나지 않고 목사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으로서는 꿈꾸기 어려운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기도 했지만, 노아는 끝내 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게 된다. 이삭의 아들이라는 긍지를 가진 노아에게는 자신이 그동안 받아온 도움이 (그토록 싫어하는) 야쿠자의 더러운 돈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자신에게도 그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조선인으로서 받은 멸시와 차별도 노아가 일본인으로 살기를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선자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내 자식만큼은 훨훨 날아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보았으면 좋겠는 마음은 선자로 하여금 한수의 도움을 묵인하게 만들었다. 선자는 두려워했지만 한수는 노아가 절대 진실을 알 수 없으리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숨길 수도, 바꿀 수 없는 핏줄은 결국 노아로 하여금 ‘오가와 미나토’로서의 삶을 살게 만든다.


 

나가면서

 재일 조선에게 고향을 떠나 일본에 사는 일은, 그냥 사는 문제를 초월해 ‘생존해야 하는 문제였. 분명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만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파친코 그런 기분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만든다.

 일본인 사이에서 버티며 살아내야 했던 재일 조선인들과 그들의 피에 맺힌 한은, 역사는 말하지 않는 이야기다. 역사가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