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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n 19. 2024

천왕봉은 비바람 몰아 치는 날 다녀와야 제맛이지

지리산 2박 3일 여행기 5

전날 일기예보에 오늘 새벽에는 흐리다가 11시쯤부터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서 비 오기 전에 천왕봉을 다녀오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밤새 대피소를 내리치는 비바람 소리에 천왕봉 일출은 커녕 이 비에 무사히 천왕봉에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누구도 이 비에 천왕봉에 가야만 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네 사람 모두 천왕봉에 가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들처럼 일어나 조용히(자고 있는 사람들 깰까 봐) 준비를 했다. 배낭을 메는 게 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k의 조언에 따라 b도 배낭을 멨다. 나와 b는 작년 11월 아무 준비 없이 봉정암에 다녀온 후 사뒀던 헤드랜턴을 첫 개시 했다.


4시경에 산장을 나섰다. 산장 뒤쪽으로 난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돌계단이었다. k와 s가 앞서가고 나와 b가 뒤따라갔다. 제일 젊고 건강한 b가 제일 느리게 걷는 나를 챙기느라고 맨 뒤에서 걸었다. b가 얼마나 잘 걷는지는 어제 똑똑히 알았다. 아무리 걸어도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그 가파른 돌무더기 구간을 우리보다 50분이나 먼저 올라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b가 그동안 느린 내 걸음에 맞추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 많은 돌은 어디서 났을까 싶을 만큼의 돌계단이 이어졌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즈음에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스틱도 등산화도 없이 운동화만 신고 올라온 학생들(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무리에서 혼자 등산하던 그 여자분을 또 만났다. 벌써 다녀오시냐고, 어떻게 이 길을 혼자 오셨냐고 인사를 했더니 웃으며 '이분들 올 때 그냥 같이 따라왔어요'라고 했다. 그분의 내공과 여유가 부러웠다.


대피소를 나선 지 약 1시간 30분 만에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바람이 우리가 입은 비옷을 펄럭이며 지나가는 소리인지 원래 천왕봉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그런 건지 깃발 수십 개가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온통 뿌연 데다 비바람까지 몰아쳐서 그곳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사진을 몇 장 급하게 찍고 다시 내려왔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왕복 2시간 50분이 걸렸다.




아침 시간 장터목은 장날처럼 활기가 넘쳤다. 짐을 꾸리는 사람, 어딘가로 가는 사람, 천왕봉에서 돌아오는 사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k와 s가 아침을 만드는 동안 b와 나는 생수병에 식수를 채우려고 취사장 밖 파란색 물통 쪽으로 갔다.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그까짓 거 잠시 맞으면 되지 싶어서 물을 받으러 뛰어나갔던 나는 '악' 소리를 지르며 취사장 안으로 바로 돌아왔다. 비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비바람을 맞으니 추워서 단 1초도 서 있을 수 없었다. b가 나가서 비를 맞으며 물을 2병 받아왔다. 미안한 마음에 내가 다시 한번 큰맘 먹고 나가봤지만 한 방울도 받지 못하고 또 돌아왔다. 결국 b가 물병 4개를 다 채웠다. 지방이 많으면 추위도 덜 탄다는데 내 몸의 지방은 어디다 쓰려고 이렇게 축적만 해대고 추위를 견디는 기능도 못 하는지 모르겠다.


b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k에게 가서 내가 이 추운데 물 떠 오라고 자기를 비 오는 곳으로 내몰았다고 일렀다. 그러고는 내 팔짱을 끼더니 고목(키 작은)에 매미(고목나무보다 키가 큰)가 달라붙듯 몸을 밀착시키며 두 다리로 내 한쪽 다리를 감쌌다. 내 체온으로 자신의 체온을 끌어올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이해는 하나 취사장에서 취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자세였다. k와 나의 제지에 매미는 고목나무에서 떨어졌다.


버너에 불이 안 붙어서 애쓰던 옆자리 남자분이 라면 봉지를 길게 접어 건네면서 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라면 봉지를 받지 않고 우리가 설거지하려고 들고 온 휴지를 돌돌 말아서 불을 붙여줬더니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밥이 다 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김치참치죽밥이다. 김치참치죽밥을 어제 저녁밥처럼 또 쪼그려 앉아서 싹싹 긁어먹었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널브러져 있던 사람과 짐들이 싹 빠져나가고 우리 짐만 덩그러니 있었다. 1층 바닥에서 어제 b가 준 분홍색 귀마개 한 개를 발견했다. 아침에 배낭 쌀 때 한 개 밖에 안 보여서 찾다가 포기했었는데. 어젯밤 내 귀에 있던 게 어쩌다 1층까지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간밤에 귀마개도 많이 힘들었나 보다 생각했다.




8시 30분쯤 대피소를 나왔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과 돌무더기에 왜 이 산은 지악산이 아니고 지리산인가 생각했다. 밤새 한잠도 못 잔 상태인 데다 이미 새벽에 3시간 정도 걸어서 천왕봉을 다녀온 뒤라 다치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하며 걸었다. 오늘 내려가는 거리(5.8km)가 어제 올라간 거리(10.64km)의 반 정도 되는 만큼 길이 가팔랐다. 흙길에서는 주변보다 낮아진 탐방로 주변 뿌리가 드러난 나무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생각했다. 돌길에서는 이 많은 돌은 도대체 어디서 났으며 이 많은 계단은 또 누구의 땀으로 만들어졌을까 생각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중간에 한 번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미끄러지는 모습을 b는 멀뚱히 보고 있었다. 손을 뻗기에 먼 거리긴 했다. 워낙에 천천히 걷고 있었던지라 쓰러질 때도 천천히 쓰러져서 다치지는 않았다. 배낭이 쿠션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 뒤에 따라오던 남자분이 '아이고', 하더니 '슬로모션으로 넘어져서 다치지는 않으셨겠어요'하고 인사하며 지나갔다. 하동 바위 지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k와 s에게 일행이 내려오다가 넘어진 줄도 모르고 갔냐고 핀잔을 줬더니 허풍인 걸 아는 k와 s는 웃기만 했다.


소시지를 먹으라고 k가 권했다. "소시지 싫어한다고 어제부터 내가 몇 번 얘기했어, 나 소시지 안 먹어" 엄마에게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말했다. 같이 웃었다. "내가 뭐 좋아하고 뭐 싫어하는지 아무것도 몰라" 또 웃었다. 셋은 간식을 먹으며 앉아서 쉬고 나는 허리가 아파서 앉지 못하고 상체를 조금 숙이며 바위를 껴안는 자세로 쉬고 있었다. 지나가던 남자분이 우리더러 올라가는 중인지, 내려가는 중인지 물었다. 걱정스러웠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s의 발걸음이 느려진 게 보였다. 우리 중에서 최연장자인 s. 지리산 오기 바로 전날 급성 방광염이 와서 약을 먹으면서 지리산을 걷고 있었다. 발목 발바닥 발가락이 아프지만 참고 걸어가는 저 걸음걸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걸음걸이다. 통증을 견디며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며 정신력으로 걷고 있는 게 분명한 걸음이었다. 안타까웠다.


백무동 주차장이 가까워졌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k에게, 이렇게 힘든 길인지 왜 말해주지도 않았냐고 했더니 "내가 죽어야 간다고 말하지 않았어?"라고 했다. 곰배령에서 지리산 종주는 얼마나 걷는 거냐고 물었을 때 저렇게 말한 걸 듣긴 했었다. 나는 그게 2박 3일 지리산 종주일 때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다. 1박 2일 천왕봉 산행은 좀 다를 줄 알았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기어이, 마침내, 결국은,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1시쯤이었는데 k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우리를 칭찬해 줬다. 해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이 길을 걷는 k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혼자 걷기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짜증 내고 울고 욕하면서 힘들게 하는 학생들을 다독이고 기다리며 걸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사랑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공용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손 씻을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깨닫지 못할 감사함이었다.


화장실과 k의 차 안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실상사로 향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실상사를 못 보고 간다면 아쉬울 것 같아서 실상사 들렀다 가자고 어제부터 세 사람을 부추겼다. 어제 백무동으로 오는 차 안에서 학교 학생들과 실상사에서 주관하는 손 모내기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k의 말을 듣고 모내기 한 논도 보고 싶고 말로만 듣던 실상사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비 오는 실상사는 고즈넉하고 좋았다. s와 b는 대웅전에 들어가서 절을 했다. 함께 하고 싶었으나 허리가 아파서 참았다. 누군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절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실상사에서 나와서 차를 몰고 가던 k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남원 막걸리 4병을 들고 왔다. 지리산 기념이라고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했다. 감사.




점심은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실상사에서 가까운 읍내(면내?)로 갔다. 지도를 보고 가까운 곳으로 찾아간 중국집 두 군데가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장날인데도 문 닫은 가게들이 많은 그 동네에서 우리는 문 열린 가게 어디든 들어가야겠다는 같은 생각을 했다. 주차한 곳과 제일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제일 무난한 육개장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육개장과 순두부찌개는 음...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k에게 이곳이 행정구역상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물었다. 전라도라고 했다. 전라도 음식이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였다. 밥은 풀기가 없이 푸슬푸슬했다. 반찬도 오래돼 보여서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순두부찌개는 순두부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숟가락을 거부하는 맛이었다. b가 먹던 육개장에서 토란 줄기 몇 개를 건져서 먹었다. 밥 남기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내가 밥을 반 공기나 남긴 것을 본 k와 s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 먹지 못했지만 우리는 나오면서 습관처럼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남긴 밥과 손도 대지 않은 반찬을 보고 실은 잘 못 먹었다는 걸 사장님이 눈치채기를.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k가 또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밀려오는 졸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졸음과 싸우며 운전하는 k를 두고 셋은 꿀잠을 잤다. 전주 터미널에는 버스 예매 시간보다 1시간 이른 4시에 도착했다. 원주로 돌아오는 버스는 마침 손님이 별로 없어서 뒷자리에 손님이 없는 자리로 각자 옮겨 앉아 의자를 뒤로 끝까지 젖히고 잤다.




천왕봉을 향햐여 출발. 4:04


돌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천왕봉이 700미터 남았다. 4:40


통천문  4:59 / 천왕봉이 가까워질수록 길도 험하다. 5:10


700미터가 이렇게 멀었나 5:20


드디어 천왕봉 5:24


장터목으로 돌아오는 길 6:22 /  6:26


 장터목 대피소. 왼쪽이 취사장, 오른쪽이 숙소다. 6:49


장터목 대피소 나서기 전 8:26


장터목 대피소 뒤쪽 길을 따라 올라간다 8:39


장터목에서 2km 내려왔다. 10:16


이 곳에서 우리가 지나온 곳이 소지봉이었구나 생각했다. 10:52 / 계속 돌 계단이다. 11:27 /


하동 바위 앞. 1.8km 남았다. 11:30


비가 계속 온다. 12:18 / 12:28


드디어 넓은 길이 나왔다. 12:43


마침내 백무동 입구 도착 12:55


돌아오는 길에 실상사에 들렀다.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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