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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l 14. 2024

7000원의 행복

우리 동네 영화관 자랑

남편은 가끔 나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말한다. 영화 줄거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 지루한 영화를 볼 때면 코를 골며 자기도 하는 걸로 봐서 특별히 영화를 좋아한다기보다 영화관에 가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라기보다 영화관에 가서 음료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그 행위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지난 주말 원주에 갔을 때 남편이 영화 보러 가자고 했다. 그 말에는 늘 학교일에 치여 사는 남편이 '나도 이제 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도 일만 하고 살기에는 억울하다, 나도 문화생활이라는 걸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영화 보러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급속도로 피곤해지는 사람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영화관에 가기도 싫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 관람료도 비싸고 영화 시작 전에 끝없이 이어지는 요란한 광고를 보는 그 시간도 싫었다. 영화를 볼 거면 인제에 가서 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인제에는 세 군데(인제읍내, 원통읍, 기린면)에 cgv영화관이 있다. 인구는 적지만 땅이 넓어서 작은 영화관이 세 군데나 있는 것이다. 스크린도 좌석수도 사운드도 대형 영화관에 비할바는 안되지만 작은 영화관만의 장점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인제 cgv까지는 걸으면 20분, 차를 타면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날씨가 좋을 때는 산책 삼아 걸어가기 좋은 거리다. 그렇다 보니 영화 시작 10분 전에 집에서 출발해도 영화 시작 시간에 늦을까 걱정할 일이 없다. 또 이곳에서는 비상구 안내와 관람 시 에티켓에 관한 영상만 보여준 뒤 바로 영화가 상영되니 내 돈 내고 강제로 광고를 봐야 하는 일도 없다.


언제 그렇게 올랐는지 요즘 영화값이 평일에는 14,000원 주말에는 15,000원이라는데 인제에서는 7,000원이면 된다. 그전에는 6,000원이었는데 작년에 1,000원 올라서 7,000원이 된 것이다. 주말, 평일, 조조 상관없이 7,000원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참으로 매력적인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인제 cgv에는 교실 한 칸 정도 크기의 상영관이 두 개가 있다. 두 관을 합쳐도 100석이 되지 않는다. 나는 영화 상영 전에 비상대피로를 안내할 때 유심히 보는 사람이다. 불이 모두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1층이나 옥상까지 어떻게 찾아가나 정말로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인제 cgv는 상영관이 모두 1층에 있어서  비상시에 대피하기 아주 용이하다. 물론 워낙 작은 영화관이다 보니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없다거나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가 적다는 불편함이 있긴 하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남편이 인제로 왔다. 봄에 심은 감자를 캘 때가 됐기 때문이다. "해 뜨거워지기 전에 6시에 감자 캐고 낮에 한잠 자고 오후에 영화 보러 가자" 며 오늘의 일정을 말했더니 남편이 "알았어, 알았어"하며 좋아했다. '인사이드아웃 2'를 보고 싶었으나 남편 취향에 맞춰서 '하이재킹'을 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였는데도 관객이 스무 명 남짓이어서 역시나 조용했다. 자리도 앞에서 세 번째 줄을 선택해서 앞사람 머리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집에 오자마자 "내일 또 놀려면 오늘 일 빨리 끝내버려야지"하며 학교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내일 또 영화보러 가자고 해야겠다. (내일은 '인사이드아웃 2'를 보자고 해야지) 그래야 지난주에 남편이 영화 보러 가자고 했을 때 매정하게 거절해서 미안했던 내 마음이 좀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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