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낙은
‘유’ 자가 들어간 말들을 아낀다. 유려, 여유, 유식, 유연 그리고 사유. 이들은 각기 다른 한자로 조합되어 있으나 말씨에 분명 격이 높은 인상이 어려있다는 점에서 같다. 나는 최근까지 TV로부터는 이것들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머물러있었다. 소위 먹방이나 일면식도 없는 남의 연애, 취중진담 따위가 난무하는 단조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터였다. 시시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쌀쌀했던 나를 화요일 밤이면 TV 앞에 앉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겼다. 바로 ‘스테이지 파이터‘다. 발레와 한국무용 그리고 현대무용을 전공한 남자 무용수들이 한데 모여 경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OTT가 성행하면서부터 본방 사수는 꽤나 옛말이 되어버렸지만. 평소에 잘 보지 않는 TV를 시간 맞춰 보기 위해 달려가는 일은 요즘 들어 가장 설레는 순간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게 타고난 피지컬과 몸짓으로 허공을 빚는 예술, 무용은 일순간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언제나 몸을 쓰는 데에는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일명 체력장(학교에서 실시하던 종합적인 체력 검사) 날만 되면 누구보다 간절히 아프길 바랐고, 체육시간에는 선생님은 물론 뒷구르기 마저 무서운 마음에 냅다 울어버리기도. 지금이라고 다를까. 운동신경이라는 것을 애초에 타고나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 나에게 몸으로 하는 예술은 경험 밖의 영역이므로 더더욱 올려다보게 된다.
스테이지 파이터가 보여주는 발레, 한국무용 그리고 현대무용. 세 분야 중에서도 유독 한국무용의 호흡과 사위는 여유 넘치면서도 유연하며 동시에 유려했다. 아쉬울 정도로 회차를 거듭하고 있는 스테이지 파이터는 그저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것이다. 분투하는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묻어 있는 땀이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그들은 공중에서 강렬한 붓터치를 내며 각자의 마티에르를 선보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TV에서 멋진 걸 볼 수 있어서 좋다.
https://youtu.be/uGaFj3JvozA?si=fjGYJ77RNX0n8P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