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김치만두
좋은 시절은 가 버렸고
따분한 하루하루 긴 긴 겨울 같은
내게도 이런 봄이라니
- 스윗소로우 <Beautiful>
몸도 마음도 허기졌던 공시생활에도 낙은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으로 넘어졌던 나를 다독인 것은 스윗소로우의 음악과 김치만두. 노란색 고무줄로 묶여있는 적당히 따뜻한 스티로폼 용기에는 언제나 6개의 만두가 들어있었다. 기약 없는 공부를 접어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저녁이면 어김없이 배가 고팠는데 큼지막한 수제 김치만두 두어 개를 정신없이 먹다 보면 마음까지 배부른 착각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혼자 공부했다. 노량진 학원은 거리도 거리지만 강의실 앞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사투는 영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6개월이 지나자 더욱 강렬해졌고, 그즈음엔 아르바이트도 친구들도 모두 끊어내었다. 도서관, 집 그리고 다시 또 도서관, 집. 스윗소로우의 노랫말처럼 따분하고도 긴 겨울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최대의 적은 바로 ‘나’였다. 남일 것 같지만 의외로 나 자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치스럽게 시간을 내어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다. 결코 그들의 탓이 아닌 내 마음의 문제였다. 따분해야 마땅할 하루가 즐거울 때면 나는 자주 스스로를 의심했고 불안해했다. 왈칵 눈물이 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를 틀고, 헛헛한 배를 만두 따위로 채우는 일밖에.
고여있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정확히 일 년 후, 나의 공시생활은 끝이 났다. 합격이었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너무 놀라 자리를 방방 뛰었던 순간이 선명하다. 시험 준비생이든 아니든 누군가에게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꽤 하찮아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손때가 오른 너덜너덜한 책들을 정리하며 누구 못지않게 농도 짙은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을 시작하고 3년쯤 지났을 때 스윗소로우 콘서트에 갔다. 한없이 조급하고 퍽퍽했던 마음에 봄을 가져다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랄까. 만두집에는 요새도 종종 들르곤 한다. 그런데 노래도 김치만두도 예전의 맛이 아닌 까닭은 지금이 행복해서일까, 그때가 불행해서일까. 봄이라고 따뜻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마지막 문장을 고르며 왠지 오늘의 노래는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