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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복키 Jul 08. 2024

좋다고만 한다. 언제쯤 나는 40대가 좋으려나?

사회에서 선호하는 척하는 나이 40대.

tv 채널을 돌리다 멈췄다.

”어르신,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언제세요? “

 화면 밖, 프로그램 PD의 질문에 어르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쉼 없이 대답하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40대야.
40대는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 “

100세 시대인 세상.

지금의 40대는 뭐든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40대에 새롭게 시작한 일로 성공을 이룬 대단한 분들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40대.

특정 나이의 성공 스토리는 마치 나도 "성공"이란 타이틀을 달고

"저도 했으니 여러분도 하실 수 있습니다"를 이야기하는 나를 그려보게 한다.


'나도 할 수 있겠지?

그래, 40대 아직 젊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지. 

나 이렇게 젊잖아!'


그렇다.

나는 지금 뭐든 할 수 있는 40대를 살아가고 있다.


대학 졸 동시에 취업을 했다.

맡은 직무에 책임감을 갖고 거기에 '열심히'라는 문구를 앞에 붙일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일해왔다.

그러기에 지금 나는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아 나갈 것이라 자부했다. 40대가 되기 전까진 말이다.





나의 첫 번째 직업은 백화점 판매사원이었다.

샵 마스터를 하겠다며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잡화매장에 취업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고, 매출 저조로 철수하는 매장 3곳을 옮겨가며 백화점에서 4년간 일했다.


그날은 새 학기를 하루 앞둔 3월 1일 오후였다.

백화점 출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 매장. 투명 유리문을 노란빛으로 만든 그날의 햇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내 앞을 지나가는 엄마와 팔짱 낀 딸의 표정도 기억난다.


그때였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쇼핑이 아닌 주말을 즐길 수 있는 삶이 부러워진 때가. 남들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는 그런 삶을 갈망하게 됐다. 평일에 쉬고, 주말에 일 하는 남과 반대된 내 삶을 그때쯤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마음이 일렁일 때쯤,

"병원 코디네이터 직업 알아? 너 한번 해봐. 잘할 것 같아"

간호사 친구의 제안은 나의 두 번째 직업인

병원 코디네이터의 시작이 되었다.


병원 입구에서 환자분을 맞이하고, 진료 예약 관리와 수납. 그리고 전화 상담등 전반적인 병원 서비스를 맡아하는 것이 병원 코디네이터의 직무다.  

더 나아가, 병원 마케팅에 아이디어를 더하며 원장님께는 고마운 직원으로 환자분들에게는 싹싹한 데스크 '언니, 누나, 아가씨, 선생님'으로 불리며 일했다. 10년의 경력이 쌓여가며 내 직업의 자부심도 더 해갔다. 우물쭈물 대는 성격인 내가 "저 일 잘합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함이기도 했다.



마흔.

'일 잘합니다'만을 믿고,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더 솔직히는 하루 3시간의 출퇴근은 이젠 체력적으로 힘들어졌다.


‘직장은 무조건 강남이지' 어린 날의 열정은 이

‘집 가까운 데가 최고야'로  변했다. 내 체력은 이직을 꿈꾸게 했다.


이직의 꿈은 욕심이었을까?

그저 집이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옮기겠다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의 위치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자리 '4' 시작은 나의 경력을 물경력으로 만들었다. 난 경력과 상관없이 구직 시장에서 그저 '나이 많은 사람'되어버렸다.

나이가 곧 스었다.

사회에서 홀대받는 40대가 된  나는 중간 과정 없이 폭삭 무너졌다.

'멘탈 붕괴'




"한 달만 쉬고, 일 할게" (그러니깐 나 돈 안 번다고 눈치 주지 마) 괄호 속 말은 생략했, 앞의 말을 들으면 왠지 알 것 같은 건방이 느껴지는 뉘앙스로 남편에게 말했다. 일할 땐 그리도 길던 한 달은 금세 갔다.


병원 코디네이터 일을 하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구인 병원에서 요구하는 우대조건에 넣을 수 있는 자격증이다.  나의 병원 경력과 자격증을 어필하며 이력서를  병원 이메일로 전송했다.  그리고, 병원 전화번호를 눈에 익혀 둔다. 이 정도 경력이면 바로 면접 요청 전화가 올 것이라 을 좀 떨어 본다.


다음 날, 익숙한 번호의 전화는 없었다. 이틑 날도 아무 소식 없는 전화기에  불안했다. '아...안 됐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력서 열람을 확인해 본다. 역시라고 해야 하나... 이력서 전송한  다음 날 아 수신 확인이 되어 있었다.

'뭐가 문제일까...'

100을 기준으로 90이었던 나의 자신감은 순식간에 10 이하로 떨어졌다.


‘나 안 뽑으면 자기네들이 손해지 뭐'

 ‘딴 데 지원하면 되지!'

괜한 자존심의 말을 내뱉으며 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자존심은 부렸지만 엄지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와 그걸 따라가는 내 눈은 바쁘고 두려웠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동네 삼겹살집으로 향하는 길다.

"저기는 직원 2명 뽑아. 여기는 한 명 구하는데 월급이 짜. 그리고 저긴 있잖아..."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병원 간판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저 병원은 몇 명을 구인하고 월급은 얼마를 주는지 휴무일은 며칠인지 야간 진료는 몇 시까지인지' 묻지도 않는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한다. 어떻게 다 아냐며 묻는 남편에 " 음... 내가 다 지원했거든. 근데 연락이 없네!!"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했다. 괜히 아무렇지 않은 듯 멋쩍게 말했다.




 

며칠 후,

전화벨이 울린다. 낯익은 번호다.

" 00 한의원입니다. 이력서 넣으셨죠? 면접 보고 싶은데요 " 솔 톤의 목소리로 바로 다음 날 면접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어찌나 고마운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싸! 면접 보고 이야기하면  취업 자신 있지!!!'

이제 됐다는 안도감과 다음 달 월급을 이리도 성급하게 상상한다.

'다음 달 카드값 해결! 오예'


전화를 끊고 그날 바쁜 저녁시간을 보냈다.

마흔 살로 안 보인다는 말을 듣기 위해 얼굴에 팩도 이고  단정하게 보이려 검정 매니큐어도 지웠다.


드디어 면접날 아침.

흰 셔츠에 검정 정장 바지 그리고 5cm 검정 구두를 신고 면접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했다.

한의원 문을 열며 면접 프리패스상에 도전하는 미소를 장착하고 들어섰다.


미소가 썩소로 바뀐 시간  단 1분.

"나이가 많네요. 사십 넘은 거죠?" 면접의 첫 질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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