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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ntertainment

컴플리트 언노운 : 밥 딜런의 도시전설

Going Electric : 정말 피트 시거는 그때 도끼를 들었을까?

by 성실이

밥딜런(1941~) 은 전설이다.


밥딜런은 무명기간도, 불과 1년~2년 정도여서,


지금 인터넷으로 이글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밥딜런은 이미 전설이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나 뿐아니라, 영화 Complete unknown 의 감독 제임스 맨골드(1962년생), 원작 'Going Electric' 을 쓴 작가(Elijah Wald 1958) 도 마찬가지.

아무리 저들이 조숙해서 10살 정도에 밥딜런 음악을 들기 시작해 미쳐 살았다 해도.

각각 1968년, 1972년이면 이미 영화에 나오는 시점은 지났을 때이다.

당시의 딜런과 존바에즈는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60년대 초반에 미국 사회와, 지식층 젊은이들 사이에서 포크음악이 갖는 의미.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신에서의 "존 바에즈"의 위상?

밥 딜런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의 충격?


당연히, 저들은 직접 봤을리가 없고,

책이던, 잡지던 라디오에서던, 영상이던, 풍문으로부터 간접경험한 것들일 것이다.


아마, 2005년작 다큐 'No direction Home'을 만들었던 마틴 스콜세지는 1942년생

자타공인의 음악팬이자, 밥 딜런은 물론, 스톤즈와 같은 진짜 전설들과 동 시대인이자 친구,

역사적인 음악 다큐를 만들기도한 감독님.

하지만, 마틴이 1965년 뉴포트 페스티발을 직접 갔을까?

Maggies farm을 연주하는 역사적인 자리에 있었을까?

음악팬이라고 해서, 펜타포트 페스트발, GMF, 자라섬 페스티발을 매년 다 가지는 않으니까.

덕 못계라고.. 역사적인 현장에 그가 있었을리는 없겠지.


이 영화는 원래 원작의 제목인 "Going Electric"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이 되었다.

이 영화에서 하일라이트 격인, 1965년 뉴 포크 페스티벌에, 일렉트릭 기타 밴드로 등장한 것이 팝 음악 역사에 흐름을 바꾼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팝음악 역사에 대해서 조금 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 가 앉도록 들은 사건일 것이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니까,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70~80년대 선배들도 외국 책을 그대로 베낀 책들(아티스트 대사전 류)을 봤으니 무슨 사건인지 모르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Maggie's farm 앨범버전을 처음 듣고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 노래가 일렉트릭이 맞나? 하는 점이다.

이게 이렇게나 관중들이 화날 정도로 화제였어? 하는 점.

왜냐면 앨범버전은 구수한 컨트리 느낌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fgphPFNiVZw



당시에 이 버전을 들을 수 있던 사람은 공연을 본 사람들 뿐이었다.


당시에 이 소동은, 4일간 있었던 페스티발 중 하나의 소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TV나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다.


이 소식이 보도된 1965년 8월 7일자 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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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낯선 지면 실황 중계.

일종의 페스티발 스케치를 보면, 이 사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었고 일부 관중들이 밥딜런이 몇년전에 비해 변했다는 것을 비난했다는 것만 다룹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행사 운영진이 포크도 아니라고 무시했던, 피터 폴 앤 메리 사진이 기사에서는 대표사진으로 나온 것이 흥미롭네요)


(밥딜런은 사진 한장이 없음... 미운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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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이 얼마나 옛날인지, 당시 빌보드를 보면 잘 알수 있는데,

당시에 이미 롤링스톤즈나, 비틀즈가 등장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요즘 기준으로 그들이 음악계를 주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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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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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신 게임 광고



여기서 주목할 것은 컬럼비아 레코드의 Byrds음반입니다.

밥딜런의 노래를 로큰롤으로 리메이크한 미스터 탬버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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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이 미국에서 7주 째 인기를 끌고 있던 상황.


심지어 영국에서는 더 반응이 뜨거워서, 연이어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컬럼비아 레코드사에서는 물들어 올 때 노 저을 수 밖에 없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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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인한, 락큰롤의 시대가 된 것.

같은 제호의 빌보드지를 살펴보면, 서프락, 로이오비슨, 엘비스, The damned 등 의 밴드 광고가 대부분입니다.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음악과 관계없이 앞으로 흐름을 이룰 대세 음악으로 읽고 밀고 있던 것.

(물론 이런 분석은 기존에 밥딜런이 일렉트릭으로 가게 된 원인으로, 음악 작가들, 평론가들이 해온 교과서적인 분석이기도 하고, 저는 이 빌보드지를 통해 재확인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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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실제 음반과 많이 다른 뉴포크 페스티벌 공연을 일반인이 들을 수 있는 기회는, 20년 뒤에 부틀랙(해적 음반)으로나 가능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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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연실황을 중계하던 사운드 보드에서 빼온 녹음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실상 일반인이(저를 포함한) 1965년 뉴포트의 Maggie's farm을 처음 들은 것은 2005년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사운드트랙이 공개되면서입니다.

공연 때 부터는 무려 60년의 세월이 지나서 영화가 나온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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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컬럼비아와 밥딜런의 입장에서는, 로큰롤 시대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고, 배수의 진을 치기 위해서는 돌아갈 다리를 끊어야 했고 특단의 조치를 위해서, 포크 페스티발에 가서 일렉트릭 기타를 광광광~ 울려대는 어그로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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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웨이 61의 발매일은 1965년 8월 말,

7월 말에 있던 뉴포크가 희생제물(?) 이 된 것입니다만....

이 앨범에서는 비교적 조용한 명곡인 Like a rolling stone이 선곡되고,

결국 일렉트릭의 포문을 연것은,문제의 Maggie's farm일렉트릭 버전인데.

행사 관계자들에게는, 앨범곡을 들려주고 안심 시킨후, 빡세게 편곡된 라이브 버전을 들고 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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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의문점이 남는데,


피트시거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피트 시거는 이 사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하는점


사실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 고잉일렉트릭 도시 전설은 이런 버전입니다.


포크를 져버리고 스타가 된 밥딜런, 가뜩이나 일렉트릭으로 간다고 하기에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피트 시거는

옛 제자 밥딜런이 모처럼 초심을 찾아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한다고 해서 기꺼이 받아주고

페스티벌 출연을 추진했으나, 밥이 본색을 드러내 깽판(?)을 치고 아수라장이 되자 보다 못해 도끼를 들어 전원 케이블을 자르려고 했다는 것.


배은망덕한 "밥딜런", 뒷통수를 맞은 "피트시거" 구도로 알려졌는데


이 도시 전설 그대로 구현한 영화가 토드 헤인즈의 I'm not there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2QeaEbfBsM


여기에는 몇가지 모순이 발생하는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이 도시전설에 여러가지 상황 가설(아마도)을 추가하여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사실 행사 관계자들이, 이날 밥딜런이 일렉트릭 공연을 할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습으로 공연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공연을 위해서, 미리 공연 리허설도 했습니다.

세월이 좋아져서, 60년전 공연의 리허설 영상도 유튜브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m22XKxyjw


영화에서 이 모순점을 피트시거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피트가 사람이 좋아서, 좋은게 좋은거란 식의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려서 생긴 상황이었다는 것처럼 보여주는데, 이것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나오는 교육방송 장면이 그것인데

작은 지역 교육방송국에서 음악 교육 방송을 진행하던 피트 시거가가, 게스트로 밥 딜런을 초청하지만,

워낙 바쁜 딜런인지라, 예비 출연자로 블루스 기타리스트도 대기 시킨 상태.

아니나 다를까, 딜런은, 생방송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핸드폰도 카폰도 없던 시절), 블루스 뮤지션과 생방송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딜런이 생방송이 시작한 이후에 도착하는 곤란한 상황

아내 토시(아마도 프로듀서일 듯)는 생방송이니, 아무리 밥딜런이라도, 도중 난입은 안된다고 만류합니다.

그런데, 피트는 괜찮다고 하면서, 출연을 강행 시키는데 위태 위태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좋은 의도가 받아들여져서 방송은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영화에서, 피트시거는 정의롭고, 유머러스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그립니다.

아마도 실제도 그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그의 아내로 나왔던 토시 시거도 눈길이 가서 찾아봤는데, 영화 소용돌이에 출연했던 일본 배우더군요. (맥아더에도 출연했습니다. 미군 장교의 옛 연인 역할인데)

영화에서는 너무 모델이나 배우 느낌이라... 실제 인물과 차이가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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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물인 토시 시거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회주의 저서를 번역하다가 미국에 망명했다고 하는군요.

2차대전때 일본인들이 간첩으로 몰려 강제 수용되던 시기에, 피트시거는 토시씨와 약혼하고 결혼했다고 합니다.(1943년) 그 때문에 피트도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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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70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1년차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영화에는 피트가 세상을 떠난 날짜만 나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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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65년 뉴포트가 전설이 된 이유는, 이후에 밥딜런이 더 전설이되고, 비틀즈가 전설이 되고 롤링 스톤즈가 더 전설이되었기 때문이지 당시에, 밥딜런의 공연이 사회적으로 논란이되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1965년 당시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잡았을 상황과 1970년 비틀즈가 해체할 당시의 로큰롤 음악의 체급은 전혀 다릅니다.


결국, Going Electric 이라는 사건은 로큰롤이라는 장르가 전설이되고 문화가 되고 역사적 체계를 갖춘 80년대 이후에, 역사적 방점을 찍기 위해서 후대가 역사적 가치를 부여한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날 피트 시거가 도끼를 들었느니, 안들었으니는 이후에 살이 더 붙여진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 도끼 이야기에 대한 피트시거의 공식 해명은 이렇습니다. (2012년..) 돌아가시기 직전이네요.

게다가 , 그 공연에서는 Chambers brothers가 먼저 Electirc 을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https://somethingelsereviews.com/2013/05/11/if-i-had-an-axe-id-cut-the-cable-what-really-infuriated-pete-seeger-about-bob-dylans-1965-newport-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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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체 이 피트 시거 도끼설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구글 도서검색을 찾아보니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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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 whitomb의 락 오딧세이라는 책에 나와 있는데. 예전 책에 적혀있다고, 과연 다 사실일까? 저자가 들은 이야기가 아닐까? 팩트 체크를 죽자고 하던 시기도 아니고

피트 시거의 증언에 의하면, 아예 현장에는 도끼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맞습니다.


애시당초 아무리 천조국 미국이라지만, 사운드 시스템 옆에서 나무 벨때 쓰는 도끼 여러자루가 나란히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있지도 않은 도끼가 30년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이 뉴포트 페스티발을 전설로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정말로 도끼를 휘둘렀다면, 케이블이 끊어지기전에 감전 사고가 일어났을 수도.

합선으로 녹음자체가 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 책을 쓴 Ian whitcomb 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가수분은, 공교롭게 밥딜런과 동갑인데, 이력이 굉장히 재미있네요. 전설의 시기에 전설의 주변에 계셨던 분... (그것도 나름 대단하지만.)

마치 농담 처럼 Sonny & Cher 의 I got you babe 의 탬버린을 치신 분이기도 하고.. 빌보드 100위에 딱 걸린 노래도 있고.

이런 책을 쓰기에 너무 적합하신 분 같기도..

https://en.wikipedia.org/wiki/Ian_Whitcomb


이분의 원힛 원더 "You turn me on. " 나름 굉장히 산뜻한 꽃미남에 노래도 좋네요.

당시 밥딜런의 Highway 61과 비교해보면, 흥미롭습니다. 전설과 원힛 원더의 차이.

https://www.youtube.com/watch?v=el1txbT8c9c




딜런은 저 사건 이후 1년후인 1966년 트라이엄프 바이크를 타다 사고가 나고 3년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두문불출하게 됩니다.

(The band와 짱박혀서 음악만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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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음악은 루트 음악이라고나 할까?

정통 컨트리를 하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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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필로그에 나온 것 처럼 그 이후에 나온 음반만 55장이고. 장르도 음악 노선도 숱하게 바꾸었습니다.

내한 공연에서 태진아처럼 노란 모자와 노란 양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셨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러니 Going electric 이라는

팝계의 "위화도 회군"같은 중대 사건은 ....

최소한 저 피트시거의 도끼만행에 대한 가짜뉴스가 30년 이상 정설로 받아들여져서,

물론 1965년 뉴포트가 전설이 되어버린 탓이 크다고 봅니다.


역사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다기 보다도, 역사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때로는 그들의 오해가 잘못 기록되어 남아있는 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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