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어제, 오늘은 꼭 글을 써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동안은 글을 쓰려고, 여행 일지를 쓰려고 해도 왠지 쉽지가 않았다.
왜인지 몰라도 계속 순례자의 길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는 함께 순례자의 길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여전히 순례자의 길 위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감사하다.
동*를 필두로 하나 둘 속속 순례자의 길에 도착하면서 다들 무탈히, 무사히 잘 도착했음에 감사함을, 그리고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는 아쉬움의 감정이 둘 다 들었다.
다들 그길의 끝에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기를 소망 해 본다.
전체 일정: 2024. 9. 12(목) ~ 9. 24(화) / 13일
걸으려 했던 거리: 282.8km
실제 걸은 거리: 175.8km
나는 계획했던 12일 중에 4일을 걷지 못했고, 처음 시작할때 연착된 기차로 생장부터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장부터 부르고스까지 300km 가량 걸으려 했던 나의 계획은 확 줄어든 거리를 걷는걸로 바뀌었다.
가장 큰 영향은 아무래도 발바닥 가운데 난 아주아주 큰 물집 때문이었다.
콤피드가 좋다는 이야기와 인진지 발가락 양말이 좋다는 말에 의한,
두 조합, 환상의 콤비로 인해 내 발은 완전 무참히 처참하게 무너져내렸다.
누가 발에 칼을 꽂아놓은 기분이었다.
그러한 상태로 도착한 로그로뇨는 내게 지옥이었다.
감염된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아팠다.
평소에 하던게 아니라면 실전에서 쓰면 안된다는 교훈도 다시 한번 배웠다.
비극의 시작은 발가락 양말을, 등산양말 안에 신고 걸은 날 부터였다.
그날은 원래 계획보다 조금 더 걷기로 마음먹었던 날로 첫 30km 가까이 되는 날이었기에,
뭔가 마음이 더 전투적이었나, 아무튼, 더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었다. 이전까지 안신다가 등산양말 안에 인진지 발가락 양말을 신었다.
사람마다 다를수도, 아니면 나의 착용법이 아주 잘못되었었던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등산양말 안에서 발가락 양말이 헛돌았다. 두 양말이 뱅그르르 도는 기분이었다.
에스떼야(Estella)부터 토리스 델 리오(Torris Del Rio)까지 걸었던 6일차였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이상한 곳에 잡힌 크디큰 물집을 볼 수 있었다.
6일차가 되기 전까지 물집이 거의 잡히지 않았었는데, 결국 생기고야 말았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물집 정도야 일상다반사 아니었던가.
미안하다, 과소평가했다.
그 다음날 나는 물집을 터뜨린 후 콤피드를 붙이고 걸었다.
그날 일정은 로그로뇨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나는 지옥불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발 뼈까지 아픈 기분이었다.
결국 이날을 기점으로 이틀을 버스를 탔고, 하루만 더 걸을 수 있었고,
그 뒤 두 도시를 점프(버스를 타는)하기로 했다.
내 여행은 정확히 알아보지 않은 대충 알아본 정보들을 실행함으로써 발생했다.
콤피드는 물집 터뜨리고 쓰는게 아니라 예방용이라고 말씀 해 주셨던 형님도 계셨는데, 나는 그걸 확인도 안하고 그냥 붙였다. 바늘과 실이 최고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바늘과 실이 최고다, 물집에는.
그냥 등산양말만 신으면 된다. 굳이 안에 발가락 양말 안신어도 된다.
순례자의 길 첫 물집과 함께 난 의욕을 잃어버렸다.
무사히만 돌아가자 생각했다.
길에는 답이 없었다. 길은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수도, 아닐수도 있었고, 나는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얼른 다시 치열한 일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차인가, 여독인가, 몸이 회복하는 중인건가 생각했다.
망가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기운을 꽤 차리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순조롭게(?) 하는 중이다. 비록 보름도 더 지난 시점이지만.
매일매일 그날그날 일기를 썼어야 하지 않았나 후회도 해 본다.
이렇게나 다시 글을 쓰는게 오래 걸릴줄은 나도 몰랐다.
길 위에 걸을 때는 이것도, 저것도, 한국에 돌아가서 다 브런치에 쓰자며 나름 사진도 열심히 찍고 그랬었는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중요한 순간의 시간들이 그냥 손 위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버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길 위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한명이라도 찾았으니까. 그리고 전해듣지 못했지만 30일에 가깝거나 넘는 그 여정에서 답을 찾은 또 다른 친구들이 분명 있을거다.
아무튼 한동안은 불평, 불만글을 쓸거 같다.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쓸련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일상속에서도, 30일동안 무탈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완주한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들이 다들 무사히, 한명 한명 도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내 마음은 한결 좋아졌던거 같다. 그래서 기운을 많이 되찾을 수 있었나보다.
다들 그 길의 끝에서 원하는 답을 찾았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오랜만에, 부엔 까미노.
끝!
p.s. 대문사진은 처음 일행이 되어준 친구가 보내준 캄포스텔라 사진. 내가 찍은 사진 아님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