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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 팔레르모 2 / 노르만의 빛

팔레르모

by 장덕영

카르타고 사람들이 동경하여 '꽃'이라 부르던 도시, 팔레르모.


1편 이야기의 시작점, Porta Nuova에서 동으로 200여 미터 가면 팔레르모 대성당이 있고 그만큼 더 가면 도시의 명물, Quattro Canti가 나온다. 네거리로 된 이곳에 팔레르모의 모든 관광객이 모인다. 관광의 중심으로, 젊음의 거리로, 뜨거운 열기로, 웨딩드레스의 포토존으로 다양하게, 홍대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지나가는 개들조차 여기를 통과하지 않고 하루를 마감하는 법은 없다. 다시 몇 발짝 북으로 이동하여 Teatro Massimo를 만나고 두 블록 위에 Teatro Garibaldi가 있어 여기까지 구경하면 지쳐서 대개 숙소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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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 빅3, 마시모 극장, 가리발디 극장, 콰트로 칸티 풍경




Scene 1 Quattro Canti


콰트로 칸티. 네 개의 모서리 모퉁이 코너 뭐 이런 뜻인가 본데, 계획도시를 구상한 듯 교차로에서 사방으로 쫙쫙 뻗어나간다. 우리나라는 중동, 평촌, 산본 제1기 신도시에서 계획도시다운 면모를 처음 보였는데 1990년대 일이다. 여하간 거리 교차로 생기는 '사거리' 갖고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팔레르모의 최중심이고 가장 번화한 거리의 교차점이며, 이곳서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져왔기 오늘까지도 유명세를 탄다. 바로크 양식 각 건물에는 분수와 그 위에 계절의 여신, 스페인 국왕 , 수호성녀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신경 좀 쓴 모양새다.


정면층과 옆면층이 달라 3층 혹은 4층으로 보인다


Piazza Vigliena

쬐그마한, 나름 광장이다. 건축물 네 동이 각 행정구역에 하나씩 등기되어 있으니, 하나씩 차지하려 부서간 죽어라 싸웠을 테다. 인간의 욕심이란 바로 저런 거. 그러거나 말거나 건축가 양반들은 남쪽방향에 자리잡은 건물을 시작으로 서,북,동 순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여신들을 분수와 함께 아래층에 배려해주고, 위에 시칠리아를 통치한 스페인 국왕들, 그 위엔 팔레르모의 수호성녀 네 분을 모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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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 북치고 노래하고, 건너편에선 시위데모에 경찰까지.


건축물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각 기둥 양식이 다름을 알게 된다. 검정교복 입고 다닌 시절에 배운,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 기둥의 차이. 유럽에서 3층 건물이면 층마다 부러 요로케 하나씩 사용한 양식을 종종 본다. 아래는 도리아식이라 밋밋하고, 위에는 이오니아식이라 좀 화사하며, 맨 위 기둥은 이상하게 코린트식 (이게 젤 화려하다) 아니고 벽에 돌출식으로 대충 해버리고 만다. 왜 그랬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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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식 기둥. 4거리 건축물의 파사드 안에 있는 기둥을 잘 살펴보시라.



Piazza Pretoria

비글리에나광장 남동쪽 건물 뒤에 더 쬐그만 프레토리아라광장이 있다. Fontana Pretoria라는 정식 명칭의 커다란 분수터 자리에 이상하게 '부끄러운 샘'이란 애칭이 붙어 있다. 가보면 안다. 과다노출. 누드조각이 죄다들 삼삼하고 쫌 거시기하다. 나중에 5공 때처럼 언론검열을 자랑하는 정권이 들어설지 몰라, 클로즈업 사진은 안 올리련다. 바다에서 먹고사는 신 트리톤과 사이렌을 비롯 12신상이 '빨개벗고' 있어 오래전부터 왈가왈부 화젯거리로 내려온다. 이럴수록 유명세는 커지는 법이다. 콰트로 칸티에서 바로 뒤 이 분수대를 가지 않으면, 광화문 뒤에 더 우아한 경복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출국하는 셈이다. 헛다리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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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부끄러운 분수터. 누드조각이 거시기 한 관계로 클로즈업 사진은 안 올리련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러할진대 정작 조각칼로 중요부분을 깎아내는 순간, 조각가는 뭔 생각을 할까. 그들은 창작의 일에 속된 욕망을 갖다대지 마라 하겠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말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예술품 감상도 어렵고 해서 예술의 경지는 어림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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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모르겠다. 볼 테면 보시오.




Scene 2 Teatro Mass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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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극장. 단일 건물로 정말 크다.


이탈리아 최대 오페라하우스, 마시모 극장. 파리의 가르니에, 빈의 슈타츠오퍼 다음으로 크다.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고 몇 개월 후,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키며 이틀 후엔 갑오개혁까지 연이어 터진다. 이른바 갑오개혁. 조선에선 과거시험 폐지, 신분제(노예) 폐지, 조혼금지, 과부재가 허용 등 한참 '페레스트로이카'로 발동 거는 그때, 미국은 영토확장 야욕으로 스페인과 전쟁 벌이는 그때, 시칠리아 한쪽에선 이리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개관하여 예술세계를 앞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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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서 붉은 카펫을 배경으로 총격당하는 씬 (유튜브 캡쳐)


팔레르모가 마피아 본거지 중 한곳이던바, 이토록 신성한 신세계 입구 계단에서 God Father III 끝부분이 촬영, 구세계 모든 이들의 눈앞에 퍼져나간다. 딸이 극장 계단 빨간 카펫 위에서 총상으로 사망, 마이클(알 파치노)이 오열하는 장면은 계단의 웅장함과 함께 한 컷에 실려 극적으로 묘사된다. 맨날 총질이니 상대방만 죽으란 법 없고,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훼밀리가 뭐 딱히 천사 가족도 아니다. 기냥 영화에서 쫌 멋질 뿐. 하튼 주인공을 못 죽이니 딸이 죽는 걸로 판을 짠다.


밖에서 총질을 하든말든 내부는 다시 천상 세계다. 베르디 모짜르트의 대표 오페라를 수없이 상연한다. 필자의 방문 몇 개월 전, 그 유명한 Carmen울 발레로 공연했던 곳이다. 보라, 죽여주지 않는가! 극장 안내자에 따르면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한다는데, 그건 아니고 웅장한 실내, 둥근 천장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 고풍스러운 장식은 정말 삼삼하다. 저들은 이미 몇 세기 전부터도 이토록 근사한 극장을 만들어 극을 하고 살아온 민족이다. 한데 이걸 갖고 뭐 자괴감 갖을 일도 아니고, 여기는 이게 잘난 거고 우린 우리가 잘난 게 있으니, 부러움은 그만하고 다음 극장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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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극장 내부




Scene 3 Teatro Garibaldi


원 이름은 Teatro Politeama Garibaldi. 마시모 극장보다 20년 앞서 개관한다. 극장 주변 광장이 가리발디 광장인데 어느 게 먼저인지는 귀찮아서 안 알아본다. 승리의 청동 쿼드리가 Quadriga로 장식한 건축물이 당대 이탈리아 극장 건축의 위용을 대표한다. 청동 쿼드리가는 고대 로마의 사두마차 조각상으로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에 있는 게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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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브르크 개선문, 베네치아 성마르코대성당 쿼드리가


우울한 날씨다. 2월20일이니 마지막 우기 때라 늘 구름이 있다. 3월이면 더 좋았을 테나, 3월부터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이집트를 2월에 마치고 온 관계로 시기가 좀 그렇다. 팔레르모부터 이탈리아 본토를 종단하여 밀라노에서 스위스로 넘어가기까지, 거의 맨날 구름 아래를 걸어다닌 걸로 기억한다. 사진빨은 외려 좋다. 아무래도 지중해에 있기에 한여름 한겨울은 피하는 게 좋다. 3~5월을 최고로 친다. 아니면 가을 9~11월에 가도록 하자. 2월 이탈리아 여행의 큰 문제는 어딜 가도 공사 중이다. 성수기 전에 수리하려는 계획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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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발디 극장. 필자는 이곳 쿼드리가가 더 압권이라 생각한다.


팔레르모 한중앙에 자리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로 마시모 극장만큼이나 명성이 자자하다. 이 극장을 주무대로 삼은 신포니카 시칠리아나 오케스트라의 프리젠테이션이 명품이다 하기, 들어가 볼까 하다가, 극장 내부는 이미 삼삼한 마시모에서 봤기에 굳이 돈 내가며 들어가진 않고,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수다나 떨다 시간 되어 숙소로 컴백한다.


웹사이트에서 숙소 고를 때, 단테라는 타이틀에 눈이 멀어 그냥 찍은 숙소다. 주인장과 한잔한 추억이 아직 생생하다. 숙소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한 팀 빼곤 모두 나처럼 솔로여행이다. 메모장을 보니 제일 멀리 아이슬란드부터 영국 독일 벨기에 이집트 아르헨티나 그리고 본토에서 온 친구들이다. 유스호스텔의 재미란 이런 것. 언제 또 젊은것들과 대화를 하것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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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via Dante 57


미국에서 출발, 한국 여행 마치고 중국 상해를 거쳐 이탈리아의 섬, 저 한쪽 구석에 와 있어도 세상 사는 건 어디나 똑같다. 길거리, 종교인, 일하는 사람과 청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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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주변 거리의 수도사와 한국엔 없는 마이크로 청소차


여행이란 게 그렇다. 어디 멋있고 좋다 해서 가보지만, 매양 느끼는 건 결국 사람들 사는 세상이라는 거. 생각의 차이, 문화의 차이, 음식과 언어가 다를 뿐, 세상은 결국 창조주께서 만든 놀이터라 그 안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시간 공유하는, 색다른 삶 그걸 느껴보려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 것일 테다. 이제 팔레르모 인근 에리체로 떠난다, 세상에 다시 없는 신비스런 마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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