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4개월 딸을 두었고, 결혼 3년 차 주부이다.
남편과의 만남은 sns였고 우리는 타지에서 외로웠고 서로 공통점이 많아 연락을 하던 중 연애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4년의 동거를 포함 연애 5년 차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예쁜 딸도 얻었지만 딸을 얻은 그 해부터 뭔가 단단히 꼬이기 시작했다.
ep1. 연애 이후 아버지와의 이별
나는 경주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일을 하면서 지내던 중 아버지의 간암 말기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온 가족이 아버지에게 집중하면 아버지의
마음이 더 힘들 거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서울에서 지내면서 아버지를 보러 자주 내려가기로 하고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연애를 하게 되었고 그때 당시 25살이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 남자친구에게 아버지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부담을 가질까 봐 이야기를 못하고 만남을 이어갔다.
당시 남자친구는 프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본인 여동생의 남자친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필드를 나갔다가 동생의 남자친구와 싸움이 일어났고, 동생의 남자친구인 동시에 자신과도 친구였기 때문에 그냥 맞고만 있었다고 했다.
병원 검사 결과 코뼈가 부러졌고, 안와골절이라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도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시술을 하나 하시고 회복하시는 중에 남자친구의 얼굴을 보셨고, 그의 손을 잡으며 손이 따뜻하네 라는 말을 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울컥했다.
그렇게 남자친구는 강남세브란스에, 아버지는 아산병원에 있게 된 것이다.
남자친구가 전신마취로 수술을 해야 했는데, 지방에 계신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오실 수 없는 상황이었고, 여동생도 수술시간에는 올 수 없다고 하여 여자친구인 내가 전신마취 후 수술 하고 돌아온 남자친구 간호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계속 나빠졌고, 가족들을 한 명씩 불렀는데 나는 남자친구가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마취가 깨면 소변을 받아줘야 했고, 동생이 올 때까지 보호자가 있어야 했기에 아버지에게 가지
못했다. 그 사이 다른 친척들은 나는 어디 갔냐, 왜 없냐고 물었고 엄마와 동생은 곧 온다고 둘러댔다.
남자친구의 여동생이 오자마자 나는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의 상태는 너무도 좋지 않았고 이제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살 하나 없이 말라있고 몸에 수분이 하나도 없어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아버지를 보러 와 주신 친척들과 회사분들을 맞이하였고, 1인실이라 보호자 한 명 밖에 잘 곳이 없다며 동생은 우리 집, 나는 남자친구가 있는 병원으로 가라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남자친구의 병원으로 갔고, 그날 새벽 경주의 큰 지진 경보 알림과 함께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빨리 와야 해.. 아빠가 돌아가실 거 같아.. “
나는 바로 아빠에게 갔다. 하지만 엄마는 흐느껴 울고 있었고, 나는 아빠의 눈 뜬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울며 아빠의 손을 잡았는데 아직 너무도 따뜻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은 아빠를 보냈고, 남자친구도 회복이 덜 된 채로 나와 우리 가족 옆에 있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원래 4명이었던 우리 가족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남자친구가 함께 있어줘서 너무 든든했다.
그렇게 나는 남자친구에게 더 의지 했고, 힘든 때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는 남자친구에게 믿음이 가서 이 남자와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결혼해야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