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친구관계에서는 배신, 연인관계에서는 단순한 여자문제, 바람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고 그 이후 상황이 어찌 되었든 배우자의 바람을 알게 된다면 나는 즉시 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기를 키우는 현실에서는 성격이 안 맞아도, 바람이더라도 조금은 다시 생각해 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긴 했다.
그렇지만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어차피 쓰레기는 쓰레기라는 것!!
ep 10. 나를 바보로 알고 있는 사람
나는 그렇게 합의 이혼 의사를 밝혔고 서류를 준비했다. 남편은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하였고 나는 신중히 생각한 결과라고 했다.
10월 말에 내가 꺼낸 이야기에서 11월 초 남편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는 했지만 서류 준비를 안 하고 미뤄두며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 남편은 잦은
외박을 했다. 동생집에서 잔다, 아는 형집에서 잔다, 아버지에게 다녀온다, 등등..
나는 이야기하는 걸 일일이 다 적어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11월 말이 돼서야 법원에 갔다.
아기가 있으니 영상시청을 하고 소감문을 써야 그때부터 조정기간이 성립된다고 했고 그 이후 이혼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시간상 법원에서 소감문을 써내지 못했고 추후에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서류 제출만 하고 돌아온 그날도 남편은 술을 먹고 새벽 3시 30분경 귀가를 했다.
거실에서 완전히 뻗어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사실 그의 의심 가는 행동들이 계속 머릿속에 있었지만 심증이었고, 물증은 없었다.
11월 말 서류 제출 전까지 술 먹고 늦게 귀가 한 날 반, 외박 반, 맨 정신에 집에 들어온 날이 11월에 단 4일밖에 되지 않았던 남편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도 외박도 전부 상간녀와 함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손이 떨렸다. 잠도 오지 않았다.
이제야 모든 것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혼 이야기를 꺼낸 상태인데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준비를 하고, 미용실을 자주 가고, 외모에 부쩍 신경 썼던 것들.
그리고 잠옷에 배어있던 우리 집에서나 나에게 있는 향기가 아닌 다른 여자의 향기, 나를 부르는 호칭 등등..
나는 연애 때 남편이 주점 여자와 연락하며 밥 먹으려 했던 사실도 알고 나서 바로 추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바람을 피우고 있음에도 합의이혼으로 빨리 끝내려 했던 남편 놈이 소름 끼쳤다.
나와 아기와 본인 쉬는 날 시간을 보낼 때는 돈도 없고 어디 가면 사람도 많고 피곤하니 항상 근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곤 했는데 상간녀랑은 11월 한 달간 속초, 을왕리, 부산 등등 여러 곳을 간 것을 알고는 화가 났다.
아니 화가 났다기보다는 기가 찼다.
보통 드라마의 경우 이런 사실을 알고는 분노의 눈물이든 슬픔의 눈물이든 눈물이 나기 마련인데 웬걸?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고, 이대로 합의이혼을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불을 켜고 증거수집에 열을
가했다.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신나게 바람을 피우는 남편 놈을 보고 있자니 밥이 넘어가지도 않았고, 항상 속이 좋지 않았다.
잠도 2~3시간 정도밖에 못 자며 버텼다.
남편은 그 와중에 계속 자녀양육 소감문을 왜 안 쓰냐며 닦달했다.
빨리 처리하고 싶은 모양새였다.
왜 그렇게 닦달이냐 여자 있냐라고 물어보니
“돈이 없는데 무슨 여자를 만나?”라는 말 뿐이었다.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렇게 계속 나를 바보로 알고 상간녀와 아무것도 모른 채로 행복하길 바랐다.
소감문 제출을 닦달하는 남편에게 나는 면허시험 핑계로 제출을 계속 미뤘다.
나는 남편이 2시간 거리도 장거리라며 자기 혼자 운전하면 피곤하니 빨리 면허를 따라, 면허 따면 술 먹고 자기를 데리러 올 수도 있지 않냐 시댁이나 친정 혼자 운전하기 힘들다 등등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이 무섭기도 했고, 아기를 케어해야 했기에 면허를
안 땄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기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고, 이혼을 하게 되면 아기와 나 둘 뿐이고, 내가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꼭 면허가 있어야 했다. 결국 이 사달이 난 시점에 면허를 땄다.
도로주행연습을 할 때도 운전대는 잡고 있지만 정지선에 멈춰있을 땐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계속 남편 놈과 상간녀가 생각났다.
나의 지인도 있는 동네에서 나를 농락하듯 내 행동반경, 우리 집 주변에서 당당히 같이 다녔다는 생각을 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머릿속에 도로주행 시험 코스가 외워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난 3번 만에 면허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11월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 많았다.
아침마다 아기를 유아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을 등원시킨다. 걸어서 10분, 차로는 5분 정도의 거리.
하지만 11월 한 달간 남편 놈은 아기를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늦게 들어오면 아기와 보낼 시간도 없고 얼굴도 못 보는데 아침에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아빠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우리 아기는 다른 아기들보다 좀 빠른 편이라 말도 잘하고, 감정도 다 알고, 무엇보다 아빠라는 존재를 확실히 아는데.. 우리 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