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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라는 공간 Mar 16. 2024

우울하지 않은데 우울증이래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왜?

난 지금까지 살면서 우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사실, 우울증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신과에 가서 진단받은 게 아니니까.

그저 회사 때문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한 설문조사 내용을 의사가 보고 '우울증'이라고 했을 뿐이니까.

설령, 정신과에서 진단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이 지금의 내 상태를 정확히 대변해 주진 못 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애초에 어떤 틀 안에 정확히 딱 들어맞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지.


아무튼, 우울증이 맞다는 가정하에 말해보자면, 나의 상태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우울증과는 거리가 좀 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뭔가 항상 다운되어 있거나 기분이 계속 안 좋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쉽게 눈물이 나는, 이런 걸 상상했는데,


난 항상 기분이 안 좋아있지는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 감정이 없다?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無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난 왜 살아야 되지?라는 생각은 자주 하긴 하지만,


쉽게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냥 감정이 없다.

재밌는 일도 없고 슬픈 일도 없다.

웃고 있어도 즐겁지는 않다.

그저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는 것뿐.


그냥, 無

공허함.

내가 평소 느끼는 가장 강한 감정이라고 한다면 공허함이 맞겠다.


항상 다운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나도 업되어 있다.

행복함을 느끼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그 행복감의 반동이라도 되는 것 마냥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함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분명 내 삶 속에 행복한 순간도 존재하고

살아갈 이유도 존재하는데,


혼자 있을 때는 '나는 왜 살아있지?'라는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계속 '나에겐 아내와 아이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냥 다 포기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나를 생각하면 꼭 밑 빠진 독 같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있는 순간은 행복 속에 있어서 밑이 빠져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여지없이 다 빠져나간다.  


그래서 의식적인 생각으로 계속 밑 빠진 독에 행복이란 물을 부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나는, 우울증이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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