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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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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단발 소녀
해마다 봄이 오면 나의 단발 소녀는 산과 들에서 싱그러움이 가득한 연녹빛 새순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녀는 분간하기 힘든 싹들 중 봄 향취를 가득 머금은 것들만 추슬렀다. 이후 싹에서 누런 떡잎을 걷어냈고, 잔뿌리에서 흙을 털어내 물로 씻었다. 잘 다듬어진 어린싹들은 숙성된 된장, 간장 등에 비벼져 본연의 향긋함과 풋내음을 즐길 수 있는 나물이 되었다.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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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ar 28. 2025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은 맑다
미치도록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팽팽하거나 늘어진 것 없이 달팽이관의 모든 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이 순간을 간과할 수 없고, 아무것도 그대로 흘려버릴 수 없다. 내게 닿았던 것들이 어떤 모습이었든 간에 소중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진통제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기도 때문인지, 훈훈한 기운이 서서히 일면서 나는 잠시나마 통증이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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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Mar 16. 2025
수족관 마리모와 환상적인 쿠키
스타벅스가 있는 병원 로비의 맞은편엔 사실 커다란 수족관이 있다. 이끼가 무성해서 언뜻 보면 유리벽으로 보일 뿐, 수족관을 알아차리긴 힘들다. 하지만 그곳에 수조관이 있다는 걸 호기심 많은 어떤 아이가 발견했었고, 이른 아침 청사방호에 분주한 검정제복의 요원이 알려주었다. 대개 사람들은 조명도 켜지 않아 수족관이 거기에 있는지 별 관심도 없지만, 일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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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Mar 11. 2025
난생처음 아버지가 해준 면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든의 아버지, 고랑 같은 손바닥을 펼쳐 고무 튜브에 엉성하게 가려졌던 내 얼굴 주위를 살피고 매만진다. 봄기운에 덥힌 텃밭을 오물조물했어야 할 아버지 손바닥은 거친 흙 대신 몰랑몰랑 흰 거품을 떠올리고 있다. 아버지는 손가락 반절씩 거품을 덜어내어 번들번들한 내 얼굴을 비비고 계시다.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면도를 받는 기분이라니, 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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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ar 05. 2025
글쓰기 활동 일시 중단
연초부터 일상이 살짝 삐딱거리기 시작하더니 자꾸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다양한 스트레스나 여러가지 부담들이 겹겹이 쌓였나 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몸과 맘을 움직이다 보니 걸국 망가졌네요. 지난 주 응급실로 후송되어 현재 입원 중입니다. 여러가지 난감하고 불행한 생각이 자꾸 떠오르네요. 아무래도 하루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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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1. 2025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너의 이름을 부르면 떠오르는 것
달
이름의 기원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주일에 한 번쯤 달걀을 삶아 찬물에 식힌 후 아침 식사용으로 간단히 챙겨 먹는다. 계란프라이를 하느라 기름을 튀기지 않아도 되니까, 창문을 열어 환기시킬 필요가 없다.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아이들에게 삶은 달걀 좀 먹으라고 했다. 시골에 살았을 때 '겨란'이란 말이 입에 붙어서인지 촌스러운 줄 알면서도 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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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30. 2025
별책부록 부암동
흰 구멍에 빠진 날
양말에 염치없는 구멍이 났다. 겨우 하나 뚫렸을 뿐인데도 민망했다. 구멍 사이로 숨기고 싶은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속살은 꼬물꼬물 애벌레처럼 창백해 보였다. 해가 들지 않는 구멍 속에선 나방일지 바구미일지. 밤벌레가 다 클 때까지 알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저 작은 구멍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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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Jan 28. 2025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진화의 결심
선택
찰스 다윈은 어떤 기발한 상상을 했다. 그는 5년간 긴 항해와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 새 연구를 하면서 자연선택이란 걸 생각해 냈다. 그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처음 발간했을 때, 진화(evloution)라는 명사형 대신 동사형(evolved)을 사용했던 건, 자연선택이 스펜서의 적자생존처럼 강한 자만 살아남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였다. 오히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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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2. 2025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주말에는 역시 계란찜
나는 주말에 뚝배기로 계란찜을 만들었다. 마른 감나무에 걸렸던 붉은 까치밥을 따내듯, 단단한 껍질을 깨서 달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봉긋하게 솟은 폭신한 노른자를 나무젓가락으로 콕콕 터트렸다. 그리곤 흰자와 노른자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까지 골고루 저었다. 곧바로 쨍한 노른 빛이 흰색 물감을 섞은 것처럼 엷은 파스텔톤으로 변했다. 창문 밖에선 아침해를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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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Jan 19. 2025
사소한 일상의 타이포그래피
너의 육수 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순댓국
아무도 만날 일 없는 저녁, 혼자였다. 바람이 칼을 들고 차갑게 춤을 췄다. 하나둘씩 꺼진 영등포시장 골목, 그 끄트머리 순댓집은 아직 불 끄기 전이다. 솥뚜껑을 닫은 무쇠솥이 거진 마감시간이 되었음을 짐작케 했다. 어서 오세요,라고 명랑하게 발음하는 건 분명 식당 주인일 테다. 임박한 영업종료 시간을 모른 척했다. 태연히 순댓국 한 그릇과 소주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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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3. 2025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누구나 몸에 푸른 점을 새긴다
블루스(Bules)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재즈맨 블루스>를 보았다. 영화는 1930년대 미국 남부 조지아주가 배경이었다. 흑백 인종간 금지된 사랑, 블루스와 재즈가 이야기의 중심이었고, 끓임 없이 관계의 반목이 이어졌다. 흑백 문제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유태인과 나치, 부자와 빈민이 대립했다. 주인공 남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백인들에 의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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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Jan 08. 2025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장난감 총만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전쟁 그리고 피카소
어릴 적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나만의 작은 세계가 만들어졌다. 그곳은 밀림이었다가, 우주였다가, 전장이었다. 장난감 하나면 언제든 슈퍼맨도, 변신로봇도, 비행기도 될 수 있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내게 감히 맞설 자는 없었다. 아니다, 악의 세력은 언제나 세상을 전복할 기회를 노렸다. 그러므로 나는 대장이 되어 부하들을 이끌고 세계 평화와 질서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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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5. 2025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난 죽는다면 옥수수가 될 테다
노인과 영계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건강하게 늙어 죽을 것이다. 유족 업무를 하다 보면 숱한 죽음을 볼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에서 추락하고, 음식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갑작스러운 추위나 더위에 쓰러지고, 무거운 공장기계에 깔리는 등 죽음은 늘 우리 곁을 맴돈다. 얼마 전 제주항공의 여객기 사고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사고로 인해 하나뿐인 생명들을 잃었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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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2. 2025
별책부록 부암동
초코 브라우니
스코프(SCOFF)
추운 주말 아침, 빵을 사기 위해 부암동주민센터로 이어진 경사길을 올랐다. 서울미술관 옆을 지나는 동안 찬 바람이 뒷통수를 잡을 것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았다. 노란색 외벽을 가진 엔틱숍 창문으로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내 모습이 투명하게 비쳤다. 계단처럼 통나무를 쌓아 올린 카페 외벽에선 벌목공이 쓰다가 버린 녹슨 외날톱이 묘하게 걸려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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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9. 2024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간장양념처럼 배어들고 싶다
spice
첫눈은 함박눈이었다. 눈이 내릴 때 도시는 온통 하얘졌다. 느닷없이 날린 눈발에 고독이나 절망 같은 낱말들이 쓰러졌다. 익숙했던 도시의 풍경이 낯설고 생소한 곳으로 변했다. 갈 곳을 잃은 눈꽃들이 거리에 난 무수한 발자국들을 따라갔다. 이리저리 흩어진 자국들의 끄트머리에선 검은색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살갗을 비비는 차가운 바람에 상실된 것을 추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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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7. 2024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바나나를 타고 날아가다
하나의 종
바나나를 먹는 건 특별했다. 1991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통과되면서 해외 농산물의 수입이 전면 개방되었다. 그전까지 바나나 같은 열대작물들은 고율관세와 쿼터제한에 걸려 공급량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시장가격이 형성되었다. 당시 바나나 낱개의 가격은 2천 원, 한 송이 가격은 3만 원이었는데,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편도 항공료 2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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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2. 2024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게 있다
알
싸늘한 겨울철, 내 피부는 끔찍해진다. 어릴 적 피부과 의사는 아토피 때문에 정상인보다 피부 노화가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내게 경고했다. 그토록 섬뜩한 말을 들었던 탓에 이제껏 나는 피부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써왔다. 민감성 피부는 까칠한 소나무 껍질처럼 조금만 소홀히 해도 쉽게 건조해졌다. 그래서 바디로션은 사시사철 피부 보습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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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Dec 17. 2024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울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눈물샘
우리는 모두 닭인지 모른다. 닭은 웃을 줄 모른다. 닭은 온종일 울기만 한다. 그렇게 울어도 속이 시원치 않아 또다시 운다. 수평선을 향해 울고 있노라면 어느덧 달걀 같은 해가 떠오른다. 하늘 높이 솟은 해는 삶은 달걀처럼 보인다. 겉은 화려하지만 이미 생기를 잃었다. 닭은 왜 웃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웃음이 일상의 긴장을 늦춘다고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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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Dec 11. 2024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비상한 계엄
계유정난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 높은 횟대에 올라 새벽이 온다고 우는 수탉 소리다. 서울 주택가 한복판, 새벽녘 들리는 닭소리를 아는 사람은 동네에도 드물다. 나는 몇 번이고 소리의 발원지를 찾으려고 했으나, 소리가 너무 짧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소리의 방향으로 짐작컨대 백사실 계곡 쪽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며칠 전에는 바로 집 앞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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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09. 2024
소소한 치킨 위대한 치킨
치킨수프 통조림의 활용법
그림과 기억
주말 아침, 딸은 건조한 날씨 탓인지 마른기침을 했다. 작은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도 약간 있었다. 아무래도 가벼운 감기 증세 같았다. 목이 따가운 아이를 위해 서둘러 죽을 끓였다. 먼저 당근, 양파, 무를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넣고 참기름을 둘렀다. 야채를 살짝 볶다가 다진 소고기도 함께 집어넣었다. 지은 밥을 솥에 넣고 납작하게 주걱으로 눌렀다. 눌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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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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