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을 달궜던 땡볕 아래 소름 끼치던 떼창들, 그악스럽던 열기가 한 점 남김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사장의 굴삭기 소음에도 까대던 매미들이 갑자기 모르쇠로 발뺌을 한다. 가로수를 정복한 점령군의 여유로운 취기 때문이었는지, 어떤 녀석은 숫제 땅 위에 부랑자처럼 발라당 노숙 중이다.
여름이 벌써 끝난 것일까?
어쩌면 매미는 한여름밤 꿈을 소망하다 애절한 사랑에 제 속을 불사르고, 하얀 잿더미 속으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어수선했던 여름의 뜨거운 소리들이 증발하자, 차갑고 고요한 바람이 산머리를 넘어 서서히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람이 무언갈 찾으려 낮게 부는 것 같았다.
사랑은 내 맘대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찾았다면 일단 해보려 한다. 그러나 사랑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첫눈에 반했다고 해서 이듬해 첫눈이 올 때까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을는지 장담할 순 없다. 그래서 사랑을 지키는 게 시작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누군가를 보고 싶거나 함께 있고 싶을 때 애착이 생긴다. 애착을 통해 끈끈한 사랑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애착이라 생각했던 것이 일방적이거나 불편한 것이라면 더 이상 사랑 범주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집착과 애착은 비슷하게 들러붙어 있는 형태이지만 그 사이엔 지나침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늘 자기감정과 욕구의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아기는 단어나 문법을 사용하지 않고 옹알대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건 헤아림 때문이다. 헤아림은 단번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이뤄진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가슴에 따스이 닿아 기꺼이 품고 돌볼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애착은 헤아림을 통해 삶의 쉼표가 된다.
그러나 집착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과 같다. 정말로 원하는 게 아니면서 억지로 물건처럼 붙잡아 놓으려고만 한다. 그리하여 내 안에서 통제될 때만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 들꽃이 이쁘다며 꺾어놓고선 줄기가 마를 때까지 손아귀에 두는 것, 그래서 집착이 불편하다. 집착은 관계의 마침표다.
사랑은 아기를 달래는 것과 같다. 아기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거나 울 수 있다. 우는 아기 마음을 달래고 원하는 걸 알아차리는 것, 거기엔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올린 존재에 대한 물음과 설렘이 가득하다.
매미는 여름을 달래고서야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여름을 쉼표로 남겨놓고 떠났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