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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r 06. 2024

제가 사실 본업은 프로그래머랍니다.

근데 잘한다고는 안 했다.

 사실 제 본업은 프로그래머입니다. 대학교 전공이 통계가 전공이기는 한데, 제대 후 “청춘을 이렇게 공부만 할 수 없다” 는 생각에 (공부도 잘 안 했다는 게 함정이지만) 바로 복학하지 않고 남은 군휴학기간 동안 놀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밤낮으로 놀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을 참을 수 없으셨던 어머님께서 친히 "노느니 컴퓨터나 배워라."(계속 놀 거면 집에서 나가라는 말과 함께)라고 하셨고, 그래서 마지못해 컴퓨터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마침 IT 버블이 절정이었고, 컴퓨터학원에서는 취업률을 늘려야 한다고 “빨리 취업해라, 취업 안 하면 우리 다 죽어”라는 말에, 1년 더 휴학계를 내고,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그냥 그렇게 얼렁뚱땅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일을 하면서 이곳 캐나다에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네요.


 그런데 그렇게 얼렁뚱땅 프로그래머가 되었음에도, 저는 남의 프로그램을 구경하는 걸 꽤 좋아합니다. 제가 일을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또 남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구경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잘하거든요. 이 즐거움을 굳이 설명하자면, 축구는 잘 못하지만 축구 경기를 보면서 저 선수는 저래서 안돼 라고 한다던지, 또는 영화는 만들지는 못하지만 남들이 만든 영화를 재미가 있네 없네, 하는 즐거움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끔은 이거 돌리다가는 컴퓨터가 고생 좀 하겠는데 라고 생각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컴퓨터가 사람이었으면 이거 만든 사람 한대치고 싶겠는데 하는, 그런 상상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 학교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다. 다른 학교는 제주도다, 일본이다, 잘만 가는데, 우리 학교는 올해도 경주다. 물론 요즘 같은 시기에 안정적인 일을 하고, 공짜로 여행까지 보내 주는 거니 불평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나는 올해 2학년 1반 부담임을 맡았다. 말이 좋아 부담임이지, 하는 일은 그냥 소사다.(학교, 관청 등에서 시설관리 등의 잡무를 처리하기 위해 고용한 사람) 담임선생님 커피 타주는 것만 빼고 시키는 일은 다하는 것 같다.


 어찌 됐든, 출발날 아침에 부지런히 아이들을 챙겨서 버스를 태워 출발했지만, 왠지 엉성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출발할 때 학생 수를 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하는 생각에 별말은 안 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 보인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반 아이들의 방을 배정해야 하는데, 왠지 이상하다. 방번호가 평범한 숫자가 아니라 알파벳과 숫자가 마구잡이로 섞여 있다. 내 방번호는 A3DF34다. 사실 몇 층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도 1인 1실인데, 우리 반 학생들 방번호를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걱정이다. 


"한 명씩 나와서 방키 가져가라"

담임선생님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학생들한테 소리 지르지만, 아이들은 들은 체 만 체다. 결국 내가 애들을 챙겨서 아이들을 하나씩 담임선생님 앞으로 모이게 했다.


"일단 반장부터 가져가자. B39CE9, 그리고 잠깐 기다려봐, 다음!"

담임이 방키를 반장한테 주고, 잠시 서있으라고 한다. 그 사이 나는 재빨리 반장의 번호를 적는다.


"다음 아무나 나와봐. 그래 너. 너는 DF31A4, 오케이, 반장 이 번호 네가 적어놔. 잊어버리면 안 된다. 네 다음사람 방번호야, 반장은 이제 가봐. 그리고 너도 잠깐 있어봐. 다음!"

담임이 두 번째 아이의 방키를 건네줬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아이의 방번호를 적으려고 재빨리 팬을 들었다.


"어!? 아냐. 성 선생. 이거 적을 필요 없어. 아까 반장이 두 번째 아이 방번호 적었잖아. 괜찮아. 내가 나중에 설명해 줄게"

왠지 의아했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적지 않았다.


"자, 너는 FFC89A … "

담임은 2번째 아이에게 3번째 아이 번호를 적으라고 하고 올려 보낸다. 그리고 3번째 아이는 다시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같은 말을 반복한다.


"자 마지막! 너는 이거. 이거 저 저 기다리고 있는 놈한테 알려주고, 너도 같이 올라가. 네가 마지막이다. 그건 기억해 둬"


왠지 불안한 마음에 담임선생님께 다시 묻는다.

"선생님, 이렇게 하면 저희는 반장 번호 밖에 모르는데요. 그래도 괜찮나요?"


"응 괜찮아. 그거면 돼"


"그럼 만약에 학부형 중 한 분이 전화해서 자기 아이 방번호를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 그럼 당연히 성 선생이 하나하나 다 전화해 봐야지"


"네?"

충격적이었다. 왜 불안한 마음은 틀리지를 않는 걸까?


"예를 들어 만약 우리 반 제일 미남 김영대을 찾는다. 그럼 일단 반장 방에 전화해. 우리가 반장번호는 알잖아? 그리고 반장한테 김영대냐고 물어봐. 당연히 아니겠지. 하지만 그건 페인트야. 반장이 나는 김영대가 아니요. 하면 반장한테 아까 적어놓은  다음사람 방번호를 물어봐, 그리고 그 방번호를 전화를 해서 네가 김영대이십니까? 라고 물어보고. 그리고 아니면 그다음, 아니면 또 다음…"


담임선생님의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한 명 찾는데 반 전체아이들 방에 모두 전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담담하게 말하다니.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만약, 아주 만약에 수학여행에 안 가기로 했던 학생 중에 한 명이 중간에 오면요?"


"아. 그건 쉬어. 새로 온 아이한테 방키 주고 우리가 가진 번호, 그러니까 지금은 반장번호지, 그걸 그 아이한테 다음사람이라고 가르쳐 주고, 그 아이 방번호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돼"

한 명을 더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렇다면..


"아! 그런데, 그게, 우리 학교 정책상 새로 온 아이는 맨 마지막에 넣어야 해. 그래서, 새로운 아이한테는 네가 마지막 애라고 하고, 끝 아이를 찾아서 끝 아이한테 새로 온 아이 방번호를 가르쳐 줘야 해. 마지막 아이 찾는 방법은 잘 알고 있지? 전화 계속하는 거"


”네? 왜요? 왜 마지막에 넣어야 하죠? “


”있어 그런 게. 다 알려고 하지 마 “

억울했다. 왠지 자기가 가진 반장번호를 바꾸고 싶지 않아서 그런 정책이 나온 거 같았지만 일단 꾹 참았다


”아니 그럼 중간에 한 명이 집에 가겠다고 하면요? “


”아 그건 조금 복잡한데, 일단 그 아이가 가진 방번호하고 적어놓은 다음아이 방번호를 물어봐. 그리고 그 아이 방번호를 다음 방으로 적어놓은 아이를 찾아서, 그 번호를 가려고 하는 아이가 가진 다음아이 방번호를 가려고 하는 아이의 다음아이 방번호로 바꾸면 돼. 어렵지? 쉽게 예를 들어 말하자면, 가려는 아이가 3호실, 그 아이가 가진 다음방번호는 4호실이라면, 3호실을 다음 방번호로 가진 아이를 찾아서, 아마 2호실이겠지, 그럼 그 2호실 아이한테 니 다음방번호는 3호실이 아니라 4호실이다. 라고 가르쳐 주면 돼. 그리고 그 3호실 아이는 집에 가면 되고. 그리고 그 아이를 보내는 건 또 성 선생이 하면 되고. 터미널까지 잘 데려줘야 해. 요즘 세상이 무서워"

세상이 무서운게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방번호는 2호실, 3호실 이렇게 생기지 않았고, 반장한테 매번 전화해야 하고 다음번호 묻고,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랴. 처음 선생님이 되었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을 때, 좋아하시던 그 모습과 동네 친구들한테 한턱 쐈던 고깃값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일해야 하는 것을.


"그런데 선생님, 오늘 우리 반 학생들이 몇 명이 온건가요? 아까 교감선생님이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는데, 제가 잘 몰라서요"


"아. 그거? 성 선생이 반장부터 전화 돌리면서 세봐야 하지 않겠어?"


아무래도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친구들아! 내가 간다. 삼겹살은 니들이 쏴라!



제목 : 링크드리스트

성선생 : 컴퓨터

아이들 : 데이타

방번호 : 메모리주소

담임 : 게으른프로그래머

엄마 : 건강하세요.

친구들 : 삼겹살은 니들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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