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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r 18. 2024

죽음을 준비해 보셨나요?

저는 종종 죽음을 준비해 봅니다. 죽었을 때를 대비한 비상연락처라던지, 죽게 되면 아이들이 잠깐동안 어디에 머무를지, 아이들은 누가 키우게 될지,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아이들이 재산을 어떻게 받을지, 시신은 꼭 태워서 강에 뿌려달라고 말하고, 내 이름 적힌 벤치 하나만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봅니다. 주로 제가 죽었을 때 아이들이 크게 혼동에 빠지지 않고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준비하는 그런 일 말입니다.


물론, 죽음에 대한 준비 한다고라고 하면 남은 이들을 위한 준비와 더불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준비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과거 뇌종양 수술을 2번 받았습니다. 감마나이프까지 하면 3번이지만, 개두술, 그러니까 머리를 열어서 하는 수술은 2번 받았습니다. 각각 12시간이 넘는 큰 수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병원에서는 후유증과 최악의 경우에 대해서 설명해 줬었고요. 종양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과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에 하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언제나 두렵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종교가 없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죽음은 잔인하고 냉정합니다.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최고의 권력자라 하더라도 아니면 아무리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죽음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모자라다고,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해도, 기적을 믿든 안 믿든, 희망적인 사람이든 아니든, 죽음은 냉혈한처럼 자기 일을 합니다.


다행히 수술 후 지금은 거의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MRI를 찍어야 하고, 얼굴 한편이 살짝 부자연스럽고, 한쪽귀가 완전히 안 들리지만, 한쪽만 고장 난 이어폰을 쓸 수 있어 경제적이고, 에어팟을 한쪽만 사용하기에 배터리를 더 오래 쓸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으로는 아침에 알람소리를 들을 때 들리는 귀를 베개에 파묻으면 안 들리는 문제가 있고 휘파람이 잘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코로나 때문에 또다시 중환자실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중환자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묻더군요. '너에 대한 의료행위를 결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해', 하지만 저는 그전까지 스스로 모든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저는 계속 저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했지만 의사가 담담히 설명해 줬습니다.  '오늘 저녁까지도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지면 의식을 끊어야 할지도 몰라, 그럼 그때에는 누군가 너 대신 의료행위를 동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라고요. 죽음에 대해 그렇게 무서워했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멀리 도망치지 못했었나 싶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감성적이 됩니다. 슬프다. 억울하다. 후회된다. 하지만 곧 내가 죽음에 이르는 문제보다 내가 죽었을 때 남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더군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계속 감상에만 젖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고, 내가 준비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게 될 테니까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지난날들의 후회로 슬퍼하면서 남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죽을 운명이라면 죽을 운명이 산 운명이 될 수 없고, 준비를 아직 못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저는 살았습니다. 퇴원하는 날 아이들을 봐주셨던 한국인 부부께서 같이 울어 주셨고, 아이들은 아빠의 건강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는 사람처럼 반겨줬습니다. 스캇은 한 2분 정도 반가워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자더군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왔지만, 저는 곧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 안있어 다시 아침에 아이들 학교 늦지 않게 닦달하고 있고, 회사에서는 보스랑 실갱이하고 있고. 청소와 설거지가 밀리면 집이 더러워져 버리니 하기 싫어 죽겠지만 하고, 빨래, 쓰레기 분리수거, 낙엽청소, 이제 곧 잔듸깍기까지. 스캇은 산책 가자고 조르고, 아이들 성적표가 나오면 무서운 아빠가 될지 착한 아빠가 될지 고민합니다.


죽음에 대한 글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고, 우리는 언젠가 죽고, 인생은 짧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인생은 정말 짧고 어느 사이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거나 의미 없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들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그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가장 아껴주고 싶은 사람들. (개도 한 마리) 죽음이 무섭고 슬프다고 마냥 우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무섭고 슬플 것 같다는 뜻은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한 번쯤 죽음을 준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여러분이 죽게 됐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낼지 생각하면서요.


“여러분들은 죽음을 준비해 보셨나요?”


아! 저는 정말 잘 삽니다. 사춘기 딸과 목소리가 조금씩 굵어지는 아들하고 주말에 어디 갈지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과 여자친구가 혼자 한달짜리 유럽여행을 가서 너무너무 보고싶다는 것만 빼면요. 으으으! 아이들한테 옷 갈아입고 밖에 나가자고 벌써 30분 전에 이야기했는데 미동도 없네요! 빨리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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